<허슬러>는 미국의 슈퍼스타 제니퍼 로페즈 주연, 스트립 걸들의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한 화끈한 케이퍼 무비(작당해서 사기 치고 강탈하는 그런 영화)로 포장되어 관객을 찾아왔다. 하지만 웬걸? 기대와는 달리 화끈한 것도 별로 없고, 범죄영화 특유의 통쾌한 한탕 같은 것도 없다. 화끈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모자란 시간에 주인공의 내레이션은 계속 이어지고 인터뷰하는 지루한 장면까지 등장하니 ‘스트립 걸의 범죄영화’를 기대했던 관객에겐 결국 재미없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허슬러>는 그저 그런 재미없는 영화로 흘려버리기엔 나름의 독보적인 성취가 있는, 내 기준으로는 조금 ‘불쌍한’ 작품이다. 그래서 내 방식대로 칭찬을 해보려고 한다. 지금부터 그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나보자.
1. 모두가 인정하는 확실한 성취.
제니퍼 로페즈, 그의 관능과 카리스마
제니퍼 로페즈는 2019년 <허슬러>를 통해 그해 거의 모든 영화 관련 시상식의 여우주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지만 수상에는 거의 실패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의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지만 결과적으로 후보에 이름도 올라가지 않았고, 그 결과 백인들의 잔치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허슬러>가 제니퍼 로페즈 인생 최고의 연기라는 극찬엔 평단의 이견이 없었다. 로코퀸, 댄스 가수, 사업가 등 연기자로서의 평가보다 멀티테이너로 더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에 데뷔 24년 만에 처음으로 쏟아진 연기에 대한 극찬은 더 의미가 있다.
등장만으로 좌중을 휘어잡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카리스마와 배우의 성별과 나이를 상관없게 만드는 오직 <허슬러>의 ‘모아나’ 그 자체로 완벽한 아우라, 마치 암사자처럼 무리를 이끌며 포효하는 모습은 강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어떤 느낌인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거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장면인 피오나 애플의 ‘Criminal’에 맞춰 폴댄스를 추는 제니퍼 로페즈의 모습은 20년간 댄스 가수로 정상을 걸어온 그의 장기와 매력이 대폭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니퍼 로페즈는 2020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올라 폴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댄서 출신인 제니퍼 로페즈는 1986년 오디션을 통해 <My little girl>이란 영화의 단역으로 데뷔를 했다. 히스패닉계 여자는 미국 연예계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부모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던 제니퍼 로페즈는 포기하지 않고 연기를 계속했고 자신의 장점을 살려 댄스 가수로도 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현재 전 세계 히스패닉계 여자 배우 중 가장 선한 영향력을 주는 인물이 되었고 당분간 그 아성은 계속될 것이다.
2. 모성애를 다루는 낡은 방식과
거기서 시작된 변화의 조짐
세상 수많은 이야기 속 엄마들에게 필연적으로 부여되는 장애물인 모성애는 여기 <허슬러>의 주인공들에게도 어김없이 작동된다. 그들은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남편 대신에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부양하고, 감옥 간 남자 친구의 변호사비를 대기 위해 사기범이 된다(물론 그렇게 번 돈이 친칠라 모피가 되고 명품 가방과 구두가 되기도 하지만). 그리고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클리셰를 따르며 예상 가능한 결말을 향해 간다. 그런데 모두가 생각하는 그 엔딩씬에 이르러, 이 영화는 오직 대사 한 줄을 통해 지금까지 쌓아온 감정을 뒤흔들어 버리며 이야기를 확장한다.
데스트니 “형량 거래했어.”
모아나 “도대체 왜 그랬어?
나한테 뭘 배운 거야?”
데스트니 “릴리 때문에”
모아나 “젠장, 젠장.......
모성애는 정신병이야!”
영화의 엔딩, 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치고 나온 데스트니(콘스탄스 우)와 모아나가 나누는 대화다. 영화 내내 클리셰로 작동했던 주인공의 모성애는 모아나의 ‘모성애는 정신병’이라는 대사 한 줄로 클리셰를 극복하는 극적 효과를 이뤄낸다. 모성애의 주체가 내뱉은 정신병과 모성애, 이질적인 두 단어의 조합은 낯 섬과 생경함을 무기로 여성에게 강요되어 온 고정관념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다. 그리고 질문한다. 모성애가 여성에게 빼앗아간 것은 무엇인지...
단지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던 라틴계와 아시아계의 두 여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인공이 되어 뉴욕의 밤거리를 허리케인처럼 휘몰아쳤다. '상처 입은 사람은 결국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데스트니의 마지막 대사는 그들이 사기 사건을 벌이게 된 진짜 이유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 뒤, 데스티니의 상처가 시작된 첫 순간으로 관객을 이끈다. 13살 데스트니의 사진을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는 모아나가 사진을 쓰다듬으며 관객을 향해 이야기한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부모가 왜 버렸는지..."
세상은 그들의 질문에 어떤 답을 해줄 수 있을까?
3. 밤무대 스트립 걸과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의 에튀드(Etudes)
<허슬러>의 재미 중 하나는 클럽을 배경으로 나오는 스트립 걸들의 음악과 춤이다. 재닛 잭슨을 비롯해 피오나 애플, 리한나, 크리스 브라운, 빅 션, 직접 출연한 카디 비까지, 심장을 고동치게 만드는 감각적인 음악은 흡사 클럽을 무대로 한 뮤지컬을 보는 듯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런데 여기에 다소 생뚱맞은 선곡이 반복되는데 그게 바로 쇼팽의 에튀드다.
스트립 클럽의 무대의 배경음악인 강렬한 힙합 R&B 댄스 음악과 무대를 내려온 여성들의 일상에 청아하게 울리는 쇼팽의 에튀드는 음악적인 대비만으로도 듣는 즐거움이 있지만, 대비되는 음악이 ‘쇼팽’이라는 점 때문에 장르의 카테고리를 흥미롭게 벗어난다.
물론 스트립걸들의 일상에 쇼팽이 흐르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지금까지 스트립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에서 그들의 일상에 쇼팽이, 한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흐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음악이 장르, 시대, 장소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서정적이고 애잔한 피아노 음악의 대명사격인 쇼팽의 에튀드는 그 선율의 독보적인 서정성으로 인해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사랑받아 왔다.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이나 애끓는 이별의 순간이 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쇼팽의 피아노 음악이 흘렀다. 상투적인 음악으로 치부되어 오히려 회피하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허슬러>는 쇼팽의 피아노 음악에 대한 이런 클리셰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이 완전히 다른 사용법을 보여준다.
영화 <허슬러>에서 쇼팽의 에튀드는 스트립걸들이 폴댄스를 연습하다가 쉬는 장면에 흐르고, 처음으로 사기를 친 후 명품을 쇼핑하는 장면에, 친칠라 모피가 선물로 오가는 사기단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파티 장면에, 스트립걸 복장으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장면에도 흐른다. 특히 크리스마스에 흐르는 이별의 곡(Waltz No9. In A Flat Major Op.69)은 행복의 정점을 보여주는 이미지와 대비되면서 인물의 이중성을 드러내고 결말을 암시하는 중의적인 효과까지 만들어낸다.
그동안 귀족 아가씨들의 전담 배경음악 같았던 클래식, 특히 쇼팽의 에튀드가 스트립걸들의 배경음악이 되면서 가지는 효과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성을 비틀어 21세기 여성 영화의 메시지를 녹여낼 틈을 만들기도 하고, 스트립걸이자 엄마인 주인공 여성들의 고정관념을 비틀어 상투적인 결말에 시대의 질문을 담아낸다. 영화 <허슬러>의 여러 요소들, 인물(백인 주인공이 아니고), 대사(앞서 살펴본) 등도 그렇지만 무심코 흘려들었던 음악에도 바로 그런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4. 가장 미국적인
웰메이드 여성 영화 <허슬러>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나도 설명을 못해요.
하지만 모두가 사기를 치고 있었어요.
이 도시 이 나라 전체가 스트립클럽이에요.
돈 뿌리는 사람 따로 있고,
춤추는 사람 따로 있고.”
모아나(제니퍼 로페즈)가 영화의 엔딩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기범이 된 스트립 걸들은 결국 죗값을 치른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몰아친 미국, 뉴욕이, 천대받고 차별받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에겐 어떤 세상이었는지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저 대사 몇 줄에 그 시대를 살아간 그들의 공허한 사연이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허슬러>는 영화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그 시대의 한 조각을 세심하게 포착하고 있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작품임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