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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즈맨 Sep 08. 2020

밤을 달리며 솔직하게 생각한 것들

직선의 태도들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이 있다면 지금처럼 첫 문장을 시작할 때이다. 이는 아마도 중학교 때 다녔던 작문 학원의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된 부담일 것이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건, 첫 문장으로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라는 것이었다. 그 학원에서 배운 것들의 대부분은 기억에 남지 않지만 그 가르침만큼은 확실히 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첫 문장부터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문장을 쓴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내가 충격적이고 역사에 남을만한 문장을 시작한다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엄숙하고 조용한 지하철의 출근길에서 갑자기 소리를 왁! 하고 지르는 것 같을 것이다. 또, 당시의 나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글을 쓸 때 차분히 적어 내려가는 인내심 많은 소년이 아니었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들을 문장으로 만들어 글을 해치워 나가는 급한 성미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글짓기 방법들로 시에서 주최하는 작문 대회에서 상도 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학교 정문 현수막에 이름이 걸리기도 했으니까 사실 그것들은 꽤 유효한 방법이기도 했다.


실제로 작문 학원에 다니면서, 그렇지 않은 또래들에 비해 글 쓰기에 대한 이런저런 요령들을 익힐 수 있었다. 가령 콘솔 게임을 하면 주특기에 대한 커맨드 키가 있고 RPG 게임을 하면 쉽게 레벨업 할 수 있는 공략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면 수천 개의 글 사이에서 튀는 첫 문장으로 '보스몹'인 심사위원들의 '선빵' 치는 법과 같은 읽히는 글을 쓰는 요령. 그렇게 좋은 결과들을 만들었음에도 얼마 안 가 그 학원을 나오게 되었는데, 희미한 기억이지만 헤어짐이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사춘기 남학생이 겪는 질풍의 시기와 어른들의 사정이 적절하게 섞였던 것 같다. 일단 나는 책상에 앉아 침 흘리며 쓰는 글 쓰기보다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축구가 더 좋았다. 그러나 어찌 됐든 26살의 나는 글의 시작에 - 선생님의 가르침을 기억해냈고, 경쟁도 수상자도 없는 이 글에서도 나는 첫 문장에서 부담을 느낀다.




요즘 나는 일주일에 3일은 글을 쓰려고 하고, 일주일에 7일은 동네를 뛴다. 즉, 매일 뛴다는 말이다. NRC(Nike Run Club) 앱에 4월 23일부터 뛴 기록이 있으니까 계산해보면 지금까지 거의 5개월 간 뛴 셈이다. 남들에게 '사실 이렇게까지 오래 뛸 생각은 없었습니다'라는 말을 하기 민망할 정도로 지금까지 착실히 뛰고 있다. 대학교 생활을 하며 기습적으로 몇 번 동네를 뛴 적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꾸준하게 운동을 하는 건 처음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앞으로의 체력을 위해 운동을 꾸준하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어도, 일단 지금의 목표는 확실히 다이어트였기 때문에 나의 몸무게 성취도를 고려하면 2개월 전에 그만두었어도 됐다. (3개월만 달려도 살이 꽤 많이 빠졌었다.) 이 운동에 얼마나 진심이 아니었냐면, 우선 돈을 안 들이기 위해 러닝을 선택했고, 나의 첫 러닝화는 패션 아이템으로 수명이 다해 신발장에 있던 나이키 에어맥스 95였다. (그나마 쿠션이 있기 때문에 선택했다.)  


첫 시작은 집에서 2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시작했다. 일단 집과 가까웠고, 푹신해서 뛰기 좋은 우레탄 포장 트랙이었으며, 한 바퀴를 돌면 딱 200m가 나왔기 때문에 애매한 거리감으로 달릴 필요 없이 계산해가며 뛸 수 있었다. 운동장 10바퀴. 자칫 벌칙 같은 이 단위는 2km를 의미했고, 이 거리 정도면 이전에도 달려본 거리라서 시작하는 거리로써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숱한 음주와 폭식의 경험으로 쌓인 나의 몸은 최악이었다. 형태뿐만 아니라 구성 요소들도 형편없었는데, 2km밖에 달리지 않았으면서 심장은 파열될 것 같았고, 근육 없이 가느다란 나의 다리들은 너 갑자기 왜 이러냐며 집단 항의했다. 아, 하기 싫다. 그러나 아픈 몸보다는 살 오른 몸이 더 싫었기 때문에 매일 2km를 억지로라도 뛰었다. 오늘 안 뛰면 내일 4km 뛰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몸을 부여잡으면서. 일주일 뛰고 보니 2km는 쉬운 거리였다. 가끔 일주일의 중간쯤인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2.5km를 뛰어주며 차차 거리를 늘려나갔고 허리둘레를 줄여나갔다. 식사량까지 조절해주니 체형이 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결과가 눈에 보이니 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반복적인 일상들을 지키며 아, 이대로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던 와중에 대전 지역에 코로나 19가 극심해져 그 간 뛰었던 초등학교 운동장에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고 말았다.


오롯이 운동하는 이들을 위해 만든 평탄하고, 푹신한 트랙을 뒤로하고 새로운 루트를 탐색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 운동장은 많았지만 집에서 조금 멀기도 했고,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새로운 코스는 뛰면서 다른 이들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또 내가 다른 이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인적이 드문 길이어야 했고, 횡단보도나 막다른 길 등 러닝의 흐름이 끊어지는 곳을 최소화하여 적당히 이어지는지도 봐야 했다. 그리고 거리가 최소 2km 이상은 될 수 있어야 됐는데, 다행스럽게도 대안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오솔길이 앞서 말한 조건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나가면 가끔 운동을 하시는 어머님들 빼고는 그 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었고 차도로부터 분리되어 안전성도 보장되어 러닝 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다만 내가 짠 새로운 코스엔 시작되는 처음 400m 구간이 약간 경사 있는 오르막길이었는데, 처음 코스를 뛸 때는 이 곳에서 지나치게 힘을 줘서 페이스를 잃고 금방 지쳐버리고 말았다. 이른 아침에 뛰게 되면 잠이 덜 깬 상태이기도 하고 공복으로 임하기 때문에 기록보다는 성취에 초점을 맞추는데, 처음부터 잔뜩 힘을 준 다리는 반환 지점에 가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이 풀려버렸다. 지금은 초반의 오르막에선 다리에 힘을 모아 뛰지 않고 온몸에 약간 힘을 뺀 상태로 뛴다. 흐느적거리며 거친 바닥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연체동물처럼 경사의 중력을 무중력으로 받아낸다. 그러다 보면 시작하는 400m 구간이 더 이상 힘 빠지는 공간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이 곳에서 근육들을 긴장시킨 뒤, 이후에 가볍게 뛸 수 있게 된다.




내가 이른 아침에 러닝을 뛰는 이유는 첫 번째가 기온이다. 내가 러닝을 시작했던 4월 말에만 해도 오후가 되면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초반에는 늦잠을 자느라 10-11시에 나가곤 했는데, 그 시간대의 햇살도 정오의 것과 가깝게 꽤 따갑다는 걸 실감했다. 두 번째로 러닝을 하고 땀을 흘리며 하루를 시작하면 점심과 저녁에 무엇을 먹어도 받아들이는 몸에 대해 죄책감이 없다. 뜀에 대한 보상으로 일종의 '면제권'을 받는 것 같다고나 할까. 마치 '부루마불'에서 통행료가 가장 비싼 '서울'에 걸려도 여유만만하게 통행료 면제의 우대권을 내는 기분이다. 반대로 하면 러닝을 못하는 날에는 무엇을 먹어도 죄책감을 갖게 된다는 말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러닝을 아침에 해버리는 편이지만 간혹 밤에 뛰는 날도 있기는 하다. 가령 오전에 비가 온다거나 하는 날씨 문제나, 늦게 일어나서 때를 놓친 경우, 그리고 몸이 조금 안 좋은 때가 그렇다. 날씨의 영향으로 어쩔 수 없이 미뤄서 뛰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아침이 아닌 밤에 뛰는 것도 꽤 좋아한다. 아무래도 아침과는 다르게 충분한 영양을 섭취한 상태로 뛰기 때문에 몸에 더 힘이 있고, 해도 없어 더없이 뛰기 좋은 기온이기 때문이다 (9월 초인 지금은 아직까지 그렇다). 힘이 남는 몸은 여유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아침보다 개인 기록을 단축 해버 리거나, 고민 중인 생각들을 하면서 뛰기도 한다.


9월 7일의 러닝이 그랬다. 아침부터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오전에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는데, 그 덕에 아침 운동을 거른 나는 죄책감을 품고 떡볶이를 먹었다. 죄책감 소스 때문인지 떡볶이가 유독 더 맛있게 느껴졌다. 다행히 오후에는 비바람의 위세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오후 7시 즈음이 되니까 비가 완전히 멎었다. 채소 위주의 순한 반찬들과 함께 저녁밥을 든든하게 먹고, 음식물이 역류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휴식을 취해준 뒤에 러닝에 나섰다. 9월이 되면서 내가 매일 뛰는 거리는 4km까지 늘어났다. 한동안 이 거리를 착실히 뛰어가며 만족했는데, 7일 러닝의 전전날과 전날엔 몸 컨디션이 좋은 게 느껴져서 그래 힘들 때까지 뛰어보자, 하고 뛰었더니 각각 7.4km/ 8.1km를 냅다 뛰어버렸다. 더 멀리 뛸 수 있다는 걸 확인하니 동기 부여가 돼서 몸에 힘도 있겠다~날씨도 적당하겠다~ 싶은 밤 운동 시간에 매일 뛰는 거리를 늘리겠다고 다짐하며 밤을 달렸다.




열심히 발을 구르고 팔을 휘젓는다. 기온이 많이 떨어진 탓에, 낮에 뛰는 것에 비해 땀은 많이 흐르지 않는다. 러닝을 하는 동안 꼭 쓰는 마스크도 평소보다 가볍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는 '밤 운동 효과'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이럴 때 나는 열중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사실 글쓰기는 언젠가 다시 해야지, 하며 미뤄놓던 일이었다. 앞서 언급한 중학생 때 다닌 작문 학원뿐만 아니라 더 어린 시절부터 글 짓기를 배우는 학원에 다녔었고,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시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삼촌을 동경하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글을 통해 스스로 이루고 인정받은 것들이 많았다. 고등학생 때도 교내 백일장에 나가 좋은 결과들을 받았고, 스무 살 때는 '정음'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서 (도저히 시라고 하기는 민망한) 짧은 글들을 사진과 함께 포스팅하기도 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는 이메일로 사람들의 글감을 받고, 그에 대한 생각을 글을 쓰고 서로 나누기도 했다. 이는 나의 또 다른 매거진인 '티끌모아 에세이'의 원형이 기도 하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글쓰기'의 능력적 요소에 회의적이게 됐고,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 한동안 글을 멀리 했었다. 나중에 회사에서 경험을 더 쌓아서 더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더 괜찮은 사람이 되면 다시 한번 글을 써야겠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회사라는 조직은 나를 괜찮은 사람보다는 편견에 고착된 사람이 되게 만들었다. 그래서 '괜찮은 사람'이 되는 시점은 자꾸만 뒤로 밀렸고, 글을 쓴다는 것 자체에 더욱더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돼서 다시 돌아갈 엄두조차 못 내는 지경까지 갔었다. 그때가 스스로를 잃어간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대전에 내려와 이런저런 핑계를 끝내고 마침내 짧은 생각들부터 일기로 적기 시작했고, 그 글들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무사히 통과하여 이렇듯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운동은 어떠한가? 나는 축구를 좋아하는 소년이었지만 스무 살 이후로는 운동하고 벽을 쌓고 살아왔다. 가끔 느슨하게 동네 몇 바퀴 뛰는 게 전부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처음 시작했을 때는 2km만 뛰어도 온 몸이 아픈 저질 체력이었지만, 이제는 8km를 뛰고도 다음 날 바로 7.2km를 뛸 수 있는 체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거리를 더 늘려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운동을 마친 뒤, 나는 생각한 것들을 이렇게 글로 적어가고 있다. 시작하기 참 어려웠던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고 있다. 열중하려고 노력 중인 나의 운동과 나의 글쓰기. 두 가지엔 공통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처음이라는 시기에 완벽한 태도를 만들려고 했다기보다는 일단 행동을 해버렸다는 점이다. 괜찮은 사람이 된 다음에 쓰기로 했던 글은 아무래도 괜찮지 않은 시기에 시작했고, '살을 빼겠다'는 일념으로 러닝화 비슷해 보이는 신발을 대충 신고 일단 뛰었다. 그 후로 시작된 것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려는 스스로의 태도를 만들었다. 이 악문 태도들이 행동을 지탱하게 되면서 아직 부족하지만 러닝 거리 기록은 점차 늘어가는 중이고, 나의 문장들도 이렇게 전개시켜 나갈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공교롭게도 나의 첫 러닝화가 되어준 나이키의 'Just Do It'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을 마치고 핸드폰 화면에 나타난 향상된 기록을 보면 기분이 한껏 고양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깨는 것 같아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의 '미지의 모습'들을 마주하는 것 같아서다. 아무도 관심 없는 일이긴 하지만, 내가 8km를 뛸 수 있을 거라는 걸 나도 몰랐다. 운동을 시작했을 때, 초등학교 트랙의 문이 닫혔을 때, 기록이 4km를 넘어가기 시작할 때 그 지점에서 이어지는 첫 발을 내딛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도, 이를 유지하려는 뜨거운 열정도 없이 없었을 것이다.


완벽한 내가 없듯이, 내가 하는 완벽한 시작은 없는 것이다. 글쓰기로 돌아와서, 첫 문장에 망설이는 내 모습은 과거로부터 오는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에세이의 호흡은 충분히 길다. 능력(能力)도 결국엔 힘(力)이 필요한 일. 힘의 원천인 근육은 차분히 키워나가야 하는 것처럼, 문장을 지탱하는 생각들도 착실히 키워나가야 함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새로움을 발견하고 체득하기 위해서는 결국 시작한 이 시점에서 주저 없이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내 안에 생각들을 마주하며 솔직해지는 밤에 달리면서 오늘은 자신 있게 내딛고, 내일도 그 태도를 유지하며 착실히 배워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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