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이 공간을 채우고
어떤 곳에 머물고 싶을까 / 일기
날씨가 좋다. 어디 놀러 갈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날씨다. 근 몇 년 사이에 자기 의지로 나간 적이 있었나? 이 시국 전에 동네 카페에 가는 정도였다. 도보로 300m가 참 멀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며칠에 한 번은 나가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맛있는 커피가 있으니까. 잠시 앉아 있어도 커피 향이 온몸에 배는 곳이다. 돌아오면 집안에도 커피 향이 난다. 향이 옮아오는 것과 옮아갈 정도로 강한 것이 참 좋다. 이렇게 쓰니 조만간 가고 싶다. 못/안 간 지 꽤 됐다.
향이 옮아온다고 하니 피시방이 떠오른다. 무슨 게임을 했더라. 매일 피시방에 가서 밤을 새우던 때가 있었다. 향은 아니고 냄새지만, 피시방에 갔다 오면 온몸과 옷이 담배 냄새로 찌들었다. 몸 냄새가 그대로 담배 냄새로 바뀌는 것 같았다. 실내 흡연이 전면 금지되기 전이었다. 피시방은 흡연석과 금연석을 분리하는 형태로 운영했다. 그나마 방을 분리해놓은 곳이면 좀 나았다. 그래도 담배 연기를 직접 안 맡는다 뿐이지, 벽과 공간에 찌들 대로 찌든 냄새가 몸에 스미는 것을 막아 주진 못했다. 동네 피시방을 순회하며 전 좌석 금연인 곳을 찾아야 했다. 결국 찾았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엄청 스몄던 것만 기억난다.
그랬던 주제에 지금은 담배를 피운다. 끊어야 할 텐데… 전자담배를 사고 싶다…
최애 카페는 커피가 참 맛있지만 편히 쉬기에 아주 좋은 공간은 아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게도 인테리어 취향이 있는 것 같다. 최애 카페는 흰색 위주에 도로변으로 전면 창이 나 있으며 직사각형 구조다. 나는 좀 더 아늑한 느낌에, 바깥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이 있는 편이 좋다. 어떻게 하면 아늑해지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나무색이 섞이고 어두운 편이면 좋을까. 후미진 구석을 원하는 것은 확실하다. 조도는 어떨까? 쨍한 것은 별로지만 또 너무 어두우면 글자를 읽기 어려울 것 같다. 너무 모오던한 느낌도 아니면 좋겠다.
살다 보면, 이거다, 싶은 공간이 나타날까. 아니면 내가 만들게 될까. 둘 다 좋다. 그치만 직접 만들 때는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것 같다. 나는 감각이 좀 별로다. 원하는 대로 만드는 방법을 모르는 걸까, 원하는 것을 모르는 걸까. 지금은 둘 다에다가, 그럴 여유도 없다는 쪽이겠다. 시간을 좀 들이면 취향을 알게 될까. 아닌가. 취향은 만들어지는 것인가. 그럼 시간이 지나면 취향이 충분히 만들어질까. 어느 쪽이든 많이 경험해보면서 아늑하고 즐거운 나의 방을 만들어 보고 싶다. 언젠가.
생각해 보면 영 없지도 않다. 넉넉한 책장이 있으면 좋겠고, 전등을 폰으로 켜고 끌 수 있으면 좋겠고, 자고 앉는 위치에 맞게 간접 조명이 있으면 좋겠고, 허리를 잘 받쳐줄 의자나 소파가 있으면 좋겠고, 홈 바가 있으면 좋겠고, 화구가 여러 개면 좋겠고, 도마를 두 개 놓을 정도로 싱크대 공간이 충분하면 좋겠고, 햇볕과 커튼이 있으면 좋겠고, 베란다가 있으면 좋겠고, 쓰다 보니 인테리어랑 상관없는 것 같지만, 그렇네. 주로 색 배치를 모르겠다. 벽지와 가구의 색을 어떻게 맞추지. 적절하면 좋겠다. 적절한, 취향의 색과 채도를 알아가고 싶다.
그리고 향도 있으면 좋겠다. 무슨 향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때로는 채우고 때로는 비우면 좋겠다. 소리도 있으면 좋겠다. 빛과 소리와 향과 내가 있으면 공간이 채워지고 비워지고 할까. 재밌겠다.
상상하니 즐겁다. 저만한 공간을 통제할 경제력을 갖추는 게 우선이겠지만, 사람이 뭐 상상은 할 수 있으니까.
2021년 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