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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윤 변호사 Sep 26. 2023

저런 할머니가 되고 싶어

우리동네 아파트 health 장

아파트 헬스장에 가는 시간대는 주로 아침 9시 30분 경이다. 


특별히 사무실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나는 초라하게 시작한 영세 지식노동자이므로 사무실에 안나가도 되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다)에는 어린이집 등원 미션을 마친 뒤 운동화를 갈아신고 헬스장으로 간다. 순조로운 등원길이었다면 9시 10분 경 도착. 매운맛 등원길이었다면 9시 40분이 되어서야 도착.


헬스장 비밀번호를 열고 들어가면 이 시간대에는 항상 흰머리의 할머니가 계신다.


흰 단발머리를 하시고, 키는 155cm 전후, 군살이 없어 보이는 몸.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신 뒤 랫 풀 다운, 레그 프레스, 케이블 프레스다운을 주로 하시는 할머니. 

할머니는 말씀은 많이 없으시지만 아는 얼굴들이 오면 항상 먼저 인사를 하시고 또 인사를 받아주신다. 


헬스장에 조금 젊은 나이대(40대 중후반)의 운동을 굉장히 열심히 하시고 잘하시는 A라는 분과의 대화를 엿들어보니 (그런데 엿듣는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앞서 말햇듯이 헬스장이 굉장히 협소하기 때문에 상체 운동을 하고 있으면 같이 상체 운동ZONE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가 다 들린다. 에어팟을 끼고 음악을 크게 틀어도 들린다. 마치 내 귓가에 소곤거리는 것처럼!! 마치 나도 그들의 스쿼드인 것처럼!!!!) 예전에는 스쿼트도 많이 하셨는데 부상을 입은 뒤로 머신을 이용한 운동에 집중하시는 것 같았다.


요즘 '~~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 라는 말이 책 제목으로 쓰이면서 유행어처럼 쓰이는데,

나는 저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라고 생각한 최초의 할머니. 


슬렁슬렁운동인으로서 30년 간 슬렁슬렁 하다보면 언젠가 저런 할머니가 되어 있지 않을까?

비록 중량을 절대 늘리지 않고 빈도수만 늘리고 거기다가 하기 싫은 날은 깨작거리다가 가는 슬렁슬렁운동인이지만, 이렇게 30년을 하면 할머니처럼 매일매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평생의 습관으로 헬스장에 와서 운동을 하겠지!


나이가 들어 노화는 막을 수 없겠지만 머리가 하얘지는 것도 막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내 몸 하나는 내가 단련하고 돌본다는 자신감과 우아함이 내 몸과 정신에 박혀 있겠지! 


슬렁슬렁운동인,

오늘부터 내 꿈은... 저 할머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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