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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Feb 07. 2020

음식 치유로 다시 시작하는 삶

사람여행

   스무 살 철모르던 시절에 남편을 만났어. 첫사랑이었지. 나는 딸 부잣집 셋째야. 어렸을 때부터 음식 만들기를 무지 좋아했어. TV에서 이종임 선생님 요리프로그램 보는 걸 즐겼지. 요리선생님이 하는 음식은 만들기도 어렵고 식재료도 조리도구도 구하기 힘든 것들이어서 마냥 신기하기만 했어. 언젠가는 저런 음식을 나도 만들어봐야지 하는 꿈을 꾸면서 참 재미있게 보았어.      


   엄마가 장사를 하셔서 6학년이 된 뒤부터 본격적으로 음식을 만들었어. 요즘도 엄마는 가끔 그러셔. 정금이는 500원만 주면 반찬 서너 가지를 뚝딱 만들어놨다고 말야. 음식이라고 크게 차린 건 없었어. 연탄불에 밥하고, 석유곤로 불에 콩나물 익혀서 반은 건져서 무치고, 반은 국으로 먹는 식이었지. 오이 사다 무치고, 계란프라이도 하고. 언젠가 동생들도 그러더군. 초등학교 때 내가 해준 김치볶음밥을 난생처음 먹어봤는데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고. 이렇게 음식에 대한 추억은 오래도록 남는 것 같아.    


양배추 깻잎말이 김치

  

   음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것은 41세쯤이었어. 처음에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퓨전요리와 제과를 배우기 시작했지. 그러다 우연히 코엑스 음식 전시회에서 약선 음식으로 연잎밥 만들기 강의를 보게 되었지. 관심이 생겨 안내문을 들고 와서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한 후 겨우 연락이 닿아 분당에서 안양까지 오가면서 배웠어. 약선 음식을 배우려고 했는데 전통음식 1년 과정을 마친 사람에게만 약선 음식을 가르쳐 주신다고 하더군. 그래서 먼저 전통음식과정을 배웠어. 배워보니 그 또한 정말 재미가 있더라고. 처음으로 떡도 만들고 술도 빚고, 육포도 만들고 약과도 만드니 마냥 신기했지.      


   뭔가 더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어서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 다시 등록했어. 처음에는 당시 유행하던 ‘떡 카페나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배우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결국 연구소의 모든 과정을 다 공부하게 되었어. 1주일에 4일씩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말이야. 떡, 한과, 폐백, 이바지 음식부터 전통주 빚기, 전통음식, 발효음식, 약선 음식, 사찰음식, 궁중음식 등을 모두 배워 나간 거지.      


   실기를 배우다 보니 이론 공부도 하고 싶었어. 영양학이나 식품학  책을 사서 혼자 공부하려니 잘 안되더라고. 연구소 부설기관인 평생교육원 조리학과에 편입하여 공부하기 시작했지. 2년 동안 1주일에 세 번은 수업이 밤 열 시에 끝났어.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수업하는 날도 있었지. 이론 수업뿐만 아니라 양식, 일식 등 실습과목도 다양했어. 학점은행제로 조리학과 학사과정을 이수하고 장학금도 탔어. 되돌아보면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어. 그만큼 음식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거 같아. 일찍 결혼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못했는데 뒤늦게 학사 학위가 어느덧 두 개나 된 거지.      


   그런데 배우면 배울수록, 음식을 만들면 만들수록, 어떤 음식을 먹어야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더라고.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이 없다는데, 뭘 어떻게 먹어야 할까 궁금증이 커지더라고. 약이 아니라 음식으로 병을 고치고 싶었던 거지. 의문과 궁금증을 풀기 위해 여기저기 배우러 다니고 책도 찾아 보았지만 그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어. 남편이 한의사였기 때문에 그런 관심이 더 생겼을지도 몰라.      


더덕잣무침


   우리 가정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면서 취미로만 배우러 다녔던 음식 솜씨를 발휘할 기회가 오더군. 서울 생활을 접고 남편 고향인 이곳에서 한방자연치유센터를 맡게 되었어. 자연치유가 뭔지 궁금했어. 자연치유가 되는 음식은 무엇이 있을까 싶어 찾아보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오리무중에 빠져들더군. 책이나 다른 자료를 찾아보면 정말로 각종 요법이 많이 나와. ‘생식만 먹어라, 채식만 먹어라, 현미밥을 먹어라. 노니를 먹어라, 고단백 고지방식을 해라, 모두 익혀서 먹어라, 익혀서 갈아서 먹어라’ 등등. 저마다 모두 효과를 봤다는데 도대체 뭐가 맞는지 헷갈리고 혼돈의 바다 깊이 빠져드는 기분이었지.      


   궁금한 김에 다시 사이버대학으로 편입을 했어.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으나 여기 센터를 정기적으로 비우는 것이 어려워서 온라인으로 공부할 수 있는 디지털 대학교를 선택한 거야. 2년을 공부하고 났더니 어느덧 세 번째 학사를 받게 되었지. 음식치유를 공부하면서 정작 내 체험이 선행되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을까 싶어서 나를 대상으로 실험에 돌입하기로 했어. 그러면서 새로운 걸 깨달았지 뭐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음식에는 그토록 평생 열정을 보이면서 정작 내 몸은 전혀 돌보지 않고 있었다는 걸 말야.    

  

   스스로 체험을 거치면서 이젠 내 몸의 변화를 즐겁게 누리며 돌보는 걸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그 과정을 거쳐 나만의 일이 생겨난 거 같아. 이제부터는 ‘음식으로 치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으로 살아야겠다고. 그래서 아예 ‘음치쌤’이라는 별칭도 만들었어. 여태껏 배우고 경험한 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기도 하고, 그렇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도 싶어. 음식을 통해서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말이야.      


   음식에서 시작한 열정이 남편과 함께 있다 보니 치유의 방향으로  기울어진 거지. 너무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뭐든 가족 테두리 안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는데 어느새 아이들도 다 독립했고 이젠 꼭 남편이 아니어도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이젠 그걸 ‘음치쌤’이라는 별칭으로 해나가야겠다 싶어. 어쨌거나 남편과도 서로 보완하면서 나갈 수 있겠지만 말야.     


   내 삶의 이력이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나는 아이들에게 대학까지 다니라고 강요하지 않은 편이야. 우리 애들은 저희 마음대로 학업을 결정하게 했더니 대학을 안 간 애도 있어. 사람은 평생 배우는 거잖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저절로 나처럼 배우려는 열정이 생길 거야. 그럴 때 배워서 뭔가 또 이뤄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 그저 건강하게 살면서 서로 응원해주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나는 그저 그 아이들이 각자 행복해지기만 하면 좋겠어. 그 방법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자기들이 찾아야지. 나는 다만 그들에게 몸에 좋은 음식을 실컷 먹이려고 애쓴 거밖에 없어. 그런 경력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기도 했지만.



2019 서울시50플러스재단 당사자연구 <엄마경력을 살려 자기 일을 찾은 50+ 선배주부 성공사례> 보고서의 일부로, 음식 치유로 자기 일을 찾은 50+선배주부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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