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람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은 Apr 11. 2020

뒤늦게 꿈꾸는 작가로서의 삶

사람여행

엄마 경력에서 얻은 게 뭐냐고? 아마도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생각이 커졌다는 점이겠지. 아이들을 기르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진짜 사랑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을지도 몰라. 가슴으로 하는 사랑 같은 거 말야. 나의 유년은 지독히 가난했어. 그 가난이 항상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지. 그런 환경 때문에 원하는 만큼 마음껏 꿈을 펼칠 수도 없었어. 대학에 붙었을 때도 등록금 걱정으로 조마조마 했고.   


내 아이는 안 그렇게 키우고 싶었어. 그래서 기를 쓰고 뒷바라지 했던 거야. 가난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슬픔을 겪지 않게 하려고. 아이들은 언제나 고맙게 인풋만큼 아웃풋을 내주었어. 공부를 잘 하니 점점 신이 났지. 난 동네에서도 유명한 맹모가 되어갔어. 그렇게 공부 잘하던 아들이 승승장구해서 목표하던 대학교에 들어갔지. 그런데 몇 년 지나고 그 아이가 그러는 거야. 지금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수능 공부를 시작해서 원하는 공부를 하겠다고. 이과생이었는데 갑자기 이 아이가 인문학을 공부하겠다지 뭐야. 그날의 충격이라니. 내가 여태 뭐한 거지 싶었어.     


그때부터 방황이 시작되었어. 받아들일 수 없는 갈등에서 헤어나기 위해 서울로 향했지. 그리고 여행을 시작했어. 집 근처에서만 맴맴 돌던 나의 삶에 거대한 파격이 왔지. 늘 동경하던 글 친구 소개로 여행작가 수업을 들으러 서울로 다니게 됐지. 뭔가 탈출이 필요했어. 그때까지는 아이들을 위한 총력 매진이었으니까. 늘 가족 안에서만 맴맴 돌던 내 삶에 환기가 필요했던 거야. 아이들과 가정의 몰입에서 헤어나오는 절차였다고나 할까.    


그 후로 아들이 자기의 선택대로 다시 수능을 보는 동안, 나 또한 나의 길을 찾아 헤맸어. 그렇게 홍역을 치르면서 나를 정리하기 위한 첫 번째 책을 냈어. 평생 책 문화 운동을 벌이면서 언젠가는 작가로 살고 싶다는 꿈이 간절했었거든. 두 번째 책부터는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내보자 싶어서 전자책으로 내고 있어. 잘 팔리냐고. 이제 겨우 첫 발자국을 떼었는데 책이 팔리는 것에 마음을 두긴 아직 이르지. 그보단 내 삶이 작가의 일상으로 변한 게 더 중요해. 그리고 그것에 충분히 만족한다는 거. 아이들 키우며 형편이 안되어 늘 미뤄두기만 했던 꿈이었는데 아이가 자기 길을 찾아가면서 나 역시 용기를 낸 거야.      


사실 우리 때야 요즘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가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었어. 다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지. 어떻게든 자신의 노동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사람 도리를 하며 살아야 했잖아. 결혼할 때는 그 시절 많은 여인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그냥 현모양처가 꿈이었어. 가정을 잘 건사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는 평화로운 집을 만드는 게 나의 일이며 행복이라고 생각해서. 하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서도 돈이라는 게 필요하더라고.      


독립작가 PEN CLUB 과정에서 각자의 이야기로 낸 한  권의 책들


월급쟁이 남편과 살면서 빠듯한 생활비로 교육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그동안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왔어. 공부 잘하는 아들 덕분인지 수업 요청도 계속 들어왔지. 거의 18년이나 했는데 이번 참에 아예 과감하게 싹 다 정리했어. 돈에 연연하지 않고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야겠다 싶어서. 아이들에게 들어갈 교육비도 없어졌고. 아이들도 엄마가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더군. 하긴 나도 이제 그들로부터 분리되어 나 자신의 삶에 책임질 나이가 되었잖아.     


맞아. 생각보다 돈을 포기하긴 쉽지 않았지. 얼마나 알게 모르게 쏠쏠한 수입이었는데. 하지만 그 미련을 깨끗하게 버릴 만한 계기가 있었어. 고생만 하다가 근래에 좀 살만해진 동서가 덜컥 병에 걸려버린 거야. 그걸 보면서 다짐했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제부터 나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물론 아이들이 많이 응원해줬지. 내가 평생 글을 쓰면서 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거든. 엄마가 진작부터 글을 썼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자기네들 뒷바라지로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모든 일은 다 시작할 때가 따로 있는 것 같아.     


어디 책에서 봤는데 인간은 어렸을 때 꿈을 죽을 때까지 이루고 싶어 한대. 책은 진작부터 나에게 탈출구이기도, 도피처이기도, 길이기도 했어. 아이를 키우면서도 꾸준히 책 문화 운동을 벌여왔던 것도 그만큼 책이란 게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야. 아이들에게도 원 없이 책을 읽혔지. 내 생각에는 책 많이 읽는 사람 중에 공부 못하는 사람은 있어도 멍청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거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 제 방식대로 살아갈 길을 찾는 거 같았어.      


요즘 온전히 글 쓰는 작업에만 몰입하고 있어. 당장 수입이 없어도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고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아. 아마도 큰아이 일로 마음의 갈등을 많이 겪은 후에 나도 모르게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게 맞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나 봐. 그동안 주위에 꾸준히 함께 책을 읽으며 책 문화 운동을 해오던 또래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그들이 나의 행보를 의미 있게 생각해주고 격려해주기도 해. 나 또한 그들에게 나만의 경험 살려 자기 책을 내려는 친구들을 도와주며 함께 독서와 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어. 

     

누구나 정답을 모르고 겪으면서 세상을 살아가지.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일들을 서로 알려주는 게 책이기도 해. 나는 앞으로 좀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삶을 가지치기하는 방법들, 요샛말로 미니멀한 삶에 대한 요령을 많이 알려주고 싶어. 하지만 후배 엄마들에게는 칭찬의 표현만큼은 가지치기 하지 말라고 말해줄래. 나는 그 시간에 더 나은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해서 칭찬을 절제했던 것 같아. 괜한 자만을 부를까봐! 섣불리 만족할까봐 표현을 잘 안 했던 거지. 아이들이 좀 더 목표치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사랑을 억지로 자제했던 거지. 그런데 사랑만큼은 그런 식으로 미니멀해지면 안되는 거 같아. 나중을 생각하고 그 파장을 염려하기보다 풍성하게 그냥 마음껏 많이 사랑을 해주라고 말해주고 싶어.     


나는 아이들 성적을 더 높이려는 욕심 때문에 한참 공부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편이 되어줘야 하는 십 년을 그냥 말아먹었다는 기분이야. 나중에 보니까 그런 것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많이 상처가 되었더라고. 한번 난 상처는 회복하는데 그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 그러니 함께 있을 때 해줄 수 있을 때 충분하게 사랑을 표현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특히 무엇보다 말로 들려주는 칭찬과 사랑의 언어로.      


어떻게 사랑하는 게 옳은 방법인지도 모른 채 먼 길을 돌아왔어. 이젠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애쓰고 깨달았던 많은 일들을 재료로 글을 쓰고 싶어. 이 얼마나 오래도록 동경해왔던 삶이었는지. 결국 나도 먼 길을 돌아 제자리로 오게 된 거지. 평생 하고 싶었으나 못했던 걸 이제 막 시작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이야. 작은 생활비로 소박하게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 만족해. 얼마나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삶인지.



이 글은 2019 서울시50플러스재단 당사자연구 <엄마경력을 살려 자기 일을 찾은 50+ 선배주부 성공사례> 보고서의 일부로, 대전에서 작가로 전향하여 두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50+선배주부 정순님과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옛날 엄마와 지금 엄마의 징검다리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