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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난달 Aug 08. 2020

‘아니면 말고’의 방정식

해보자, 아니면 말고

얼마 전 MBTI 성격 검사를 했다. 요즘 유행이기도 했고, 내 성격은 언제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 안다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가끔은 이런 성격 검사를 하면 나보다 더 나를 잘 글로 써주는 결과가 놀랍다. 신비로운 점은 몇 년 전 했던 결과와 지금의 결과가 달랐다는 거다. 그때도 나고, 지금도 나인데 왜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나는 불과 몇 년 만에 다른 사람이 된 걸까? 내가 내린 한 가지 결과는 과거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라는 사실이다. 과거 한강이라고 불린 강이 지금도 한강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에 따라 흘러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더해져도 같은 이름으로 머무는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나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된듯한 기분을 느꼈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선생님에겐 조용한, 그래서 착한 아이였다. 발표는 나서서 한 적이 없고 이따금 책을 읽어도 큰 소리를 내진 않았다.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하고 골을 넣으면 언제나 이런저런 세리머니를 즐겼다. 마치 세리머니를 위해 축구를 하는 사람처럼 다른 모든 걸 잊어가며 그 순간을 만끽했다. 친구들과 학종이나 딱지를 가지고 늘 때면 어디선가 승부욕이 발동했다. 지는 걸 너무 싫어해서 남몰래 연습하거나 편법을 쓰기도 했다. 나는 한 사람이었지만 매번 다른 사람 같았다. 영화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봤을 땐, “내가 세 명으로 이뤄졌나?”하고 되묻곤 했다.     


한 땐 이런 내 모습이 정말 싫었다. 평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불완전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항상 일관되고 완벽해 보이는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소위 다 잘하는 사람들 말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데, 착한 성격에 외모도 빛나는 소위 ‘엄친아’라 불렸던 그런 존재들. 나는 어딘가 이상하고 모자란 내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롤모델을 정하고 그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의식적인 행동은 내 무의식 속에도 깊이 자리 잡았다.     


대학교 3학년, 학과 학생회장이 되고 “다른 사람을 따라 한다”라는 이야기를 무척 많이 들었다. 대상은 실제 내 롤모델이기도 했던 전임 학생회장 선배였다. 선배는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많은 사람에게 인기도 많았고, 공부도 잘했으며, 운동도 잘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가 되지 못했다. 많은 학생에게 인기도 없었고, 학점도 그리 잘 못 땄다. 나는 그때 특별한 사람을 따라 한다고 해서 내가 그가 될 수 없고, 특별해지려면 나다움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다움을 찾는 여정을 위해 나는 인생철학을 세워야만 했다. 북극성 없이 인생이란 긴 여행에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에 걸맞은 사람을 만났다. 스물네 살이란 다소 늦은 나이에 간 군대엔 나보다 형인 선임이 있었다. 같은 소대 분대장이었는데, 대대의 유일한 일병 분대장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맞선임과 군번 차이가 크게 나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계급이 낮은데 책임 크면 자연스레 일이 많이 생긴다. 그때마다 그 선임은 불평보단 “일단 해보자, 아니면 말고” 또는 “밑져야 본전이다”라며 문제들에 맞섰다. 그런 마음가짐은 내가 처음 그 선임을 봤을 때도, 또 전역쯤에도 중대에서 가장 인정받는 사람이었던 이유였다.    

 

나는 그 철학을 받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닮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좋은 생각이나 행동을 ‘내 것으로 만들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연애나 취업 같은 도전들을 만나면 ‘해보자, 아니면 말고’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여자 친구도 그렇게 만났다. 소개팅으로 만난 그녀와 대화는 재밌었고 좋았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대시했다. ‘아니면 말고’의 후회는 ‘해보자’ 뒤에 오는 것이기에 용기가 났다. 우린 몇 번의 만남을 이어갔고 지금은 연인 관계가 됐다. 그 첫 만남에서 다음에도 만나자고 말한 건, 올해 가장 잘한 일이었다.  

    

취업도 마찬가지였다. 축구선수에서, 역사학자, 역사 선생님, 축구기자, 게임 개발자같이 바라는 직업이 계속 바뀌면서 새로운 곳에 이력서를 쓰거나 면접을 볼 때도 ‘아니면 말고’라고 항상 생각했다. 설사 그곳이 내가 가기 어려워 보이는 회사라도 지원 자체를 안 하지 않았다. 덕분에 열 곳의 서류 면접이 떨어져도 두어 번의 면접 기회를 잡았다. 물론 합격한 곳은 지금의 회사지만 만족하면서 다니고 있다.      


나의 ‘해보자, 아니면 말고’의 마음은 결과보단 과정이 중심에 있다. 시도엔 노력이 따르지만, 성공은 노력만으로 안 되기 때문이다. ‘아니면 말고’엔 진인사대천명의 메시지가 있다. 성공엔 노력뿐 아니라 운도 있어야 한다. 다만, 실패는 노력으로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태도는 성공했다고 자만하지 않게 되며, 실패했다고 책임을 피하지 않게 된다. 좋은 태도는 결과보단 과정을 목표로 삼을 때 나온다.      


나는 항상 결과에 대한 부담과 강박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오늘도 되새긴다. “해보자,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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