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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의 먼지 Jan 22. 2024

무브가 바닥났어요!


 생각이 많아질 땐 글로 풀어내거나, 온종일 게임을 한다. 글로 풀지 못할 만큼 복잡할 때는 게임을 켠다.  

보통 게임에 빠질 때는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 한다지만, 나는 반대다. 반복적인 손놀림 위에 잡생각을 얹어 오히려 엉킨 실타래를 풀게 해준다. 티비를 보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한길은 왜 티비에 집중을 못 하냐고 하지만 나에게 있어 TV, 게임은 집중을 위한 게 아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나는 게임을 하면서 커피 내리고 TV 보면서 게임을 한다. 그럼 옆에서 묻는다. 

"재미 없어? 다른 거 틀까?" 

"아니, 나 보고 있는데??"

"둘 중 하나만 하면 안 될까?"

"??"


게임을 하면서 게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상한 논리인가..?

-

 새해가 시작하고 몇 주는 계속 침대에만 있었다.

무리한 탓에 코X나와 족저근막염+아킬레스건염+인대염증+힘줄염증까지 동시에 찾아왔다. 발 통증은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심각했고, 급하게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기침을 하면 폐를 짜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목이 아파 밤에 자주 깼다. 깊이 못 자니 나아지는 건 더뎠고, 그럴수록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식후 먹는 약은 물약 1포, 알약 7알. 매일 식 후 3번, 2주 넘게 먹었다. 미각이 마비되어 누룽지를 먹는 건지, 국밥을 먹는 건지 구분조차 안되었고, 입맛도 없었다. 군만두를 먹었는데 플라스틱 맛이 났다. 먹는 것조차 괴로웠다. 결국 3.6.kg이 빠졌다. 신체라는 실체 있는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이 정말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의 단골 소재로 나오는 '뇌'만 컴퓨터에 이식해서 신체적 고통에서 해방되고 더 좋은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내용에 깊이 공감했다. 신체는 고통일 뿐, 누워있는 것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의 소유자였던 나는 이제 거의 양반걸음으로 다닌다. 신호등에서 뛰는 것도 부담스럽고. 나는 또 생각한다. "역시 신체는 고통이야."


-

 회복하는 시간이 많이 들었다. 자꾸 상황이 나를 붙잡았다. 그래서 게임 두 개를 받아서 번갈아가며 했다. 몸도 멘탈도 약한 사람이라 쿨타임이 필요했다. 창의적인 활동보다는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나오는 문구.

[무브가 바닥났어요!]


그치. 무브가 바닥났어. 게임이나 현실이나 '무브'가 바닥난 건 마찬가지였다. 뭔가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남는 건 병원비 영수증과 잡다한 지출이었다. 그래서, 무브를 채우려면 결제하라는 거지? 현실이나 게임이나 무브를 채우려면 결국 돈이 필요했다.



'매우 어려워요'라는 택이 붙어있던, 3일을 괴롭히던 그 판이 갑자기 너무 쉽게 깨져버렸다. 이 정도면 게임에 지능이 있어서 '옜다, 그냥 지나가게 해줄게.' 하고 아이템을 마구 쏴준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한다. 지금 내 상황도 '매우 어려워요'의 연속이지만 지나가던 운명이 '옜다, 쉬운 거 줄게.' 하고 뭔가 도와주지 않을까? 뭐 인생 어려울 때도 있고, 쉬울 때도 있으니까. 저 디스코볼 2개 맞출 때의 쾌감이란!


내 걱정도 상황도 디스코 볼 두개면 싹 사라질텐데!


아무리 어려운 판이라 해도 하트는 계속 차오른다. 그럼 트라이, 트라이하겠지. 하트가 소진때까지, 그리고 다시 차오를 때까지. 개의 디스코 볼을 만나기 전까지! 트라이!


-

 상황은 나빠지기만 하지는 않는다. 불안한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냥 사는건 원래 그래. 어려울 때도 있는거고, 즐거운 때도 있는거야. 하고 받아들여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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