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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un Kim 김희선 Mar 31. 2020

저학년 어린이와 워킹맘워킹대디의 슬기로운 재택격리생활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전투육아의 새로운 레벨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재택격리생활이 3주차로 접어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에리어는 지난주 월요일부터 쉘터인플레이스 명령을 내려 이 동네 사는 770만 인구를 모두 긴요한 일이 아니면 집에 갇혀 지내도록 했다. 회사들은 다 재택하고, 레스토랑들도 다 닫거나 테이크아웃만 하고, 다른 각종 가게들도 거의 열려있는 게 없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학교들도 처음에는 봄방학을 포함해서 3월 중순부터 4월초까지 3주 휴교를 발표하더니, 엊그제 전화로 안내가 와서 5월 1일까지로 휴교 기간을 4주 더 늘리겠다고 했다.  


처음 휴교 하고서 1주일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집 1학년짜리가 학교를 안 가고 집에 계속 붙어있으면서 엄마 엄마 아빠 아빠를 찾아대니 재택근무를 하는 것인지 재택지옥에 있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일의 능률은 안 오르는데 스트레스 레벨만 오른다. 


1. 아이와 함께 방콕하기에 하루가 너~무 길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가 아이가 하루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거였다. 가만히 두면 종일 팽팽 놀면서 비디오게임이나 넷플릭스를 끼고 하루 종일 있겠다 할 건데, 휴교가 하루이틀도 아니고 초장부터 좀 구조를 짜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건 집에 같이 갇힌지 이틀만에 바로 명확해졌다. 게다가 일하는 엄마아빠를 번갈아서 갈아넣는 것에도 구조가 있어야 해서 일단은 집에 있는 화이트보드에다가 아이의 매일 거의 똑같은 하루 시간표부터 중앙 컬럼에 적어넣고 양 옆으로 엄마 아빠의 그날 그날 바뀌는 미팅시간이며 포커스 시간들을 적어넣게 했다. 이렇게 하면 오전은 엄마, 오후는 아빠라는 큰 틀과 함께 유연하게 그날그날의 육아스케쥴을 나눠맡기 용이하다. 


아이의 시간표를 중심으로 재택하는 엄마아빠가 번갈아 갈려들어간다 ㅠㅠ


보통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이 다 함께 30분 정도 산책을 다녀오고 (쉘터인플레이스라도 건강유지를 위한 가족단위 산책은 허용된다) 아침 먹고 오전 동안은 엄마와 함께 이런저런 공부를 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낮잠을 자고 (꼭 낮잠을 자줘야 엄마아빠가 조용히 일할 시간이 생기는 어른의 사정으로…)  아이가 일어나면 오후는 대부분 아빠가 책을 읽어주거나 일하는 사이 옆에 앉혀두고 뭘 하는 걸 봐주거나 한다. 저녁에 엄마아빠 미팅들이 다 끝나고 나면 오후에도 산책 다녀오고 저녁 먹고 씻고 이닦고 정해진 시간에 자러 가기. 


우리집 스케쥴은 위에 보이는 것처럼 저렇지만 (사진은 쉘터인플레이스 직전이라 그 뒤 몇몇 변형을 거쳤다), 온라인에 여러 좋은 샘플 스케쥴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칸 아카데미의 휴교중 스케쥴 Khan Academy schedules for school closures 


2.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다양하다

하루의 시간표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우리집 일곱살짜리가 집중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15분에서 길어야 30분. 하루에도 여러가지 액티비티를 골고루 해야 지루하지 않게 시킬 수 있는데, 여러가지 액티비티의 옵션들이 있으면 일단 뭘 해야 할지 결정하고 뭘 했는지 뭐가 좀 모자란지 보는 것도 에너지가 많이 빨린다. 매주 이런저런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키워주는 활동들을 골고루 했으면 좋겠는데, 그동안 학교에다가 주로 아웃소싱 하고 방과후와 주말만 집에서 주관하던 것을 다 집에서 하려니 훨씬 많은 활동들을 관장해야 해서 어떻게 하면 골고루가 가능할지가 문제다. 한 주 내내 리딩을 떼고 다음주는 매쓰를 하자 이런 게 가능하지 않으니 트래킹과 관리가 들어가게 된다. 


게다가 갑작스런 휴교인데도 우리 아이의 담임선생님이며 학교 교장선생님이며 스쿨디스트릭트며 다들 온라인 교육 리소스의 링크를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서 보내주셨다. 주변 친구들이나 다른 학부모님들도 온라인 리소스를 많이 공유해주셨다. 그런데 보내주시는 것은 너무 고맙지만, 이게 애가 혼자서 찾아서 할 수 있는 나이(와 성숙도)가 아닌 한은 다 부모가 찾아서 어카운트 만들고 셋업하고 로긴 시키고 나서도 옆에 붙어 앉아서 같이 감독을 해줘야 하는 오버헤드다. 이 괴로움에 대해서 한 이스라엘 엄마가 폭발한 유투브 비디오가 전세계 부모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An Israeli Mom Ranted About Online Learning, and the Internet Replied: ‘Same’ - The New York Times


우리는 결국 수많은 리소스 때문에 뭘 고르고 뭘 시킬지 스트레스를 받느니 대부분 본래하고 있던 적은 수의 간단한 것들을 매일 꾸준히 시키며 좋은 습관 좋은 루틴을 잡아주는 걸로 노선을 잡았다. 저학년 아이랑 같이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을 하다보면 이게 결국은 부모의 의지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침을 시작할때는 "오늘은 정말로 한글 공부 좀 시켜야지" 하다가도 점심때가 다가올 때쯤에는 부모도 지치고 애는 언제나 다른 거 하고 싶어하고 해서 결국은 내 편한 것만 몇개 해주고 말 게 뻔했다. 부모도 부모의 일이 있으니,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아이와 함께 트래킹 하면서 꾸준히 루틴을 만드는 것을 서로 책임감을 가지게 해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엄마 오늘 피아노 새 곡 치면 봐주기로 했잖아?”) 


그래서 우리는 CoDo 앱으로 아이가 일주일동안 했으면 하는 것들을 트래킹 하기로 했다. CoDo에다가 스트레칭, 한글 공부, 영어 읽기, 밖에 나가 운동하기 같은 챌린지를 만들고 일주일에 몇번 하는 것이 목표인지를 정해둔다. 갇혀있는 동안 같이 책을 많이 읽기로 해서 얇은 책 한권씩 읽기는 매일(=일주일에 7번), 피아노 연습은 일주일에 3번, 이런 식이다. 매일 하기 힘들고, 매일 할 필요도 없는 것들도 많으니까. 


그날 그날의 리스트를 보면서 해야 하는 일들의 리스트를 보고 이번 주의 진행 상황이 어떤지를 볼 수 있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 이번주에 피아노 연습은 할만큼 다 했는데 한글 공부는 정말 안하고 있구나.” “비가 와서 밖에 운동 못 나간지 좀 되는구나.” 이런 것들을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한눈에 볼 수 있어서 부모만 관리책임을 떠메고 있는 게 아니라 같이 이야기 하기 좋다. 

아이가 타블렛에서 자기 한 거 체크


부모 폰에서 보는 아이의 한 주 상황


그리고 우린 (어른)계정을 두개 만들어서 하나는 부모의 폰에서 다른 하나는 아이의 타블렛에서 로긴했다. 아이의 타블렛에서 아이가 자기가 그 날 한 것들을 체크 하면, 부모의 폰에 있는 계정에서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칭찬 애니메이션을 보내 같이 기뻐해주면 아이가 무척 좋아하면서 칭찬 애니메이션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돌려보고, 다음 아이템을 하러 간다. 


칭찬 애니메이션 돌려보고 또 돌려보기. 기분이 조크든요.


3. 그래도 릴랙스! 뭐든지 다 괜찮습니다!

물론 우리집 일곱살짜리와 눈밑에 다크서클 생긴 부모가 매일매일 이걸 잘 따라서 생활하느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이 위기 상황에서 사실 가족이 건강하고 먹을 게 있고 안전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걸지도 모른다. 그냥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을 즐기라는 조언도 매우 설득력이 있다. 

Maybe your best today will be cuddle up with  the kids and just be together. Maybe your best today is everyone is fed and you didn’t cry in front of them. Maybe you did cry and your beautiful babies showed their remarkable best by comforting you in their beautiful little strength.
- Homeschooling is NOT the Same as Crisis Schooling: advice during coronavirus COVID -19 shut downs


다만 이제 이게 적어도 4주 더 (혹은 그 뒤로도 더? 흑흑) 가는 새로운 일상이 될 것을 감안해서,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에게는 뭔가 할 일이 필요하고, 시간과 에너지가 딸리는 엄마아빠는 최소노력으로 최대효과를 노려야하는 우리집과 비슷한 가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우리집에서 해본 팁을 써봤다. 


어제 못한 것, 이번주에 못한 것 다 괜찮다. 약간의 스트럭쳐, 약간의 계획만 가지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만 있어도 아이의 하루를 관리하는 스트레스를 훨씬 덜 수 있다. 그리고 아이를 이 관리에 함께 참여시키면 일단 엄마아빠의 짐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도 이렇게 루틴을 만드는 걸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아이있는 집들이 모두 다 이번 위기를 잘 넘길 수 있길… 

힘내십시다!! 애들 학교 보내고 한숨돌리며, 어른들만 모이는 조용~~한 오피스로 출근하여 꿀맛나는 차를 마실 수 있게 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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