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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Sep 22. 2017

고양이와의 동거.

[우리 고양이 마리 5편] 입양된 성묘냥과 다 큰 어른의 적응기

고양이와 나의 첫 만남이 성공적 일리가 없었다.


마리는 이미 3명의 주인을 거쳐 4번째로 우리 집에 온 터였고, 한 달 뒤면 세 살이 되는 성묘 고양이었기 때문이다.


나로 말할 거 같으면 고양이와의 동거는 생전 처음인 초초초보 집사 아니었던가.

이미 몇 달간 '인터넷 지식'을 섭렵했다. 하지만 지식과 현실의 거리는 멀고도 멀 것이라는 건 앞서 겪었던 육아의 부딪힘을 통해 익히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다. 자기가 익숙한 영역에서 생활한다는 말인데, 이는 곧 새로운 공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단 뜻이다.


입양 담당자도 한 며칠은 밖으로 안 나올 수도 있다며, 그냥 모른 척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첫날. 마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단번에 최적의 자리를 발견했다. 바로 침대 밑. 그리곤 단 한 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마음이 초조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준비한 밥과 물, 그리고 화장실을 배치해 두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우리 똑똑한 마리는(!)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 우리가 자는 틈을 타서 오독오독 사료를 씹어먹고 화장실에 배변까지 완료했다. (!!!)


오구오구 우리 새끼. 똑똑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날도 마리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고작 이틀인데... 마음이 초조해졌다. 마리 얼굴을 보고 싶어서 주위를 배회했다. 모른 척하랬는데, 자꾸만 눈길이 침대 아래로 갔다. 밥 먹고 한 번 들여다 보고, 화장실 갔다 한 번 들여다보고 온 통 신경은 마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혹여나 놀랄까 봐 티브이 소리도 줄인 채 까치발로 집안을 배회했다. 마리야 난 무서운 사람아 니야 (날 좀 그만 들여다봐!!) 난 착한 니 주인이란다 (집사 주제에! 저리가!!)


소리 없는 전쟁


그날 이후로 한 발씩 두 발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마리는 나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시작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들도 어린이집을 간 오전. 마리는 주변이 조용해지자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정말 발자국 소리도 들이지 않는 슬로모션이었다. 나오는 기척이 들이면 나는 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숨도 크게 들이쉬지 않고 방부석처럼 굳어있었다.


마리는 슬~~~~ 금 슬~~~~ 금 나오다 내가 쳐다보면 후다닥 도망갔다. 안쳐다 볼걸!! 후회로 땅을 치며 또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면 마리는 더욱더 신중하게 슬~~~~~~~~금 슬금 밖으로 나왔다. 이번엔 쳐다보지 않으리. 시선은 핸드폰으로 고정한 채 눈동자만 마리 쪽으로 돌려 가자미눈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숨 막히는 접전이었다. 쳐다보면 도망하고 모른척하면 다가오는 진정한 밀땅의 고수!


슬슬 화가 났다. 쪼잔한 집사는 삐져서 절대로 마리를 쳐다보지 않으리 다짐에 다짐을 했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보니 어랏, 언제 왔는지 고새 내 옆에 와서 가만히 앉아있는 게 아닌가.


축지법을 능가하는 비상한 능력이었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 동물이라니. 그리고는 내 무릎에 고개를 쓰윽하고 비볐다. 오! 감동이 찌르르르 온몸을 휘감는 순간, 마리는 옆에 책상에도 고개를 쓱 비비고 떠났다.


서로에게 물들듯 한 걸음 한 걸음씩 서로에게 익숙해져 갔다. 지금은 온갖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보이는 '프로참견러'다. 물론 상냥하게 무릎에 앉아있다가도 이빨로 쓰다듬는 손을 물어버리는 건 여전하다.


누가 거기 만지라고 했어? 엉?


알다가도 모를 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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