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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Sep 23. 2017

고양이 케디 : 고양이가 본, 이스탄불.

[우리 고양이 마리 6편]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고양이 영화.

몇 년 전, 이스탄불을 여행한 적이 있다. 터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아야 소피아 성당에 감탄했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기념품을 사면서 단 한 번도 '고양이'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집사 이전의 나는, 그저 그 나라의 예술과 사람들의 모습에만 시선이 사로잡혀 있었다. 설령 고양이를 보았다 한들 지나가는 풍경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이스탄불에 이렇게도 많은 고양이들이 있었단 사실에 놀랐다. 그들은 버젓이 거리에 시장바닥에 심지어 노점의 자판 위에도 느긋하게 앉아있었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 작은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안타까웠다. 단지 고양이만을 보러 이스탄불에 다시 가도 새로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고양이 영화


이 다큐멘터리는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양이 영화다. 영화는 내내 철저하게 '전지적 고양이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가 그냥 걸어갔던 거리는 고양이의 디딤돌이 되고, 거리에 서 있는 나무는 사다리가 된다.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물건 속 작은 박스는 그들의 쉼터가 되고, 길가에 즐비한 가게들은 고양이가 밥을 얻어먹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사람이라곤 한 명도 나오지 않는 듯한 (실제로 나오지만 보이지 않는) 따지고 보면 아무런 내용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는 내내 가만히 공감하고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짓는다.


영화 속에서 많은 소소한 장면들이 등장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터키 사람들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고양이가 나쁜 것은 가져가고 행운을 준다고 믿고 있다. 자신에게 다가온 고양이를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따뜻하게 맞아준다.


게다가 그들은 고양이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몇 년을 만나고 밥을 주고 마음을 주지만, 나는 저 고양이에게 주연이지만 다른 조연 정도의 사람들도 많다고 이야기한다. 고양이를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서로 어울리는 모습이 좋았다.


영화 중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고양이는 그저 살아가는데 감사하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너무 많이 바라고,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였다. 다시 나른한 고양이들의 몸짓에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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