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핫한 대호84와 동갑인 84년생 현 40세지만, 6월에 39세가 되는 15년차 영어교사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니 여기 저기서 '교사'를 특집으로 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학교 관둘까”… 교사 87% 사직 고민(동아일보 5.11 기사)
맞다. 나도 저 87%에 속한다. 13%에 속하지 못한다.
그럼 학교 나가면 난 뭐하지? 배운 게 도둑질이라 영어학원이나 차려야겠다로 귀결된다. 학원하는 친구들은 학교가 나을 거라며 말하지만, 소득은 그들이 훨씬 높다. 솔직히 부럽다.
그럼, 난 왜 선생님이 되었을까?
오랜만에 초심으로 돌아가보았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의 영향으로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선생님은 물심양면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퍼부으셨다. 학업에 찌들어있던 우리에게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과 말씀은 가뭄의 단비 같았으며, '나도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진로 상담 중에 선생님은 나에게 '너도 교사가 되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언하셨고, 그 때부터 직업으로서 고민해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부모님께도 사범대 진학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당연히 좋아하셨다.
84년생은 중학교 시절 IMF를 겪었다. 그 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안정성'이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대학의 학과들의 점수가 막 올라갔다. 교대, 사범대도 그랬다.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갖고 모두들 교사가 되기 위해 교대, 사범대에 입학했다. 나도 그랬다. 그것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영어'교육과에 입학했다. 당시, 임용고시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소수를 채용하는 사회교과를 전공하기보다 전략적으로 많이 채용하는 '영어' 교과를 선택한 것이다. 나중에 알았다. '영어' 임용고사는 전국의 '영문과' 학생들이 교육대학원을 나오거나 교직이수를 하면 모두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임용고사 준비할 때 태어나서 제일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다행히 길지 않은 수험생활을 하고 합격해서 첫 발령을 받았다.
잊을 수 없다. 첫 발령받고 학교에 가던 날. 그날의 풍경.
쏟아지는 햇살, 푸릇푸릇한 나뭇잎, 인사하는 아이들......이 있을 줄 알았으나,
흙 날리는 공사장 같은 교정, 교내에 들어서면서 나는 담배 냄새, '넌 또 뭐냐?' 하는 것 같은 아이들의 눈빛.
뭔가 잘못됐다. 크게 잘못됐다.
내가 꿈꾸던 그런 곳이 아니다. 이곳은...
그러나 너무 늦었다. 임용고사는 고시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다시 붙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버텨야했다.
첫 시간 수업의 나의 미숙했던 모습과 내가 어떤 인간인지 간보려는 아이들이 눈빛 사이에 묘한 긴장이 흘렀다. 그렇다. 나의 첫 발령지는 지금은 특성화 고등학교라 불리는 전문계 고등학교였다. 요즘 교권 침해의 현장으로 뉴스에 등장하는 그런 아이들 나는 그 시절에 다 겪었다.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고마운 아이들이었다. 선생님이 있건 없건 야한 이야기를 마구 하는 아이들, 욕을 빼면 조사만 남는 아이들, 술냄새 풍기며 등교하는 아이들... 총체적 난국이었다.
나는 곱게 자랐다. 부유하게 자라진 않았지만, 거친 환경에서 자라진 않았다. 우리 아빠는 담배도 안피우고, 우리 엄마는 사랑으로 나를 키웠다. 친구들은 순진했고, 중간 기말 고사 성적이 인생 최대 고민인 그런 애들이었다. 그런 내가 저 친구들이랑 어떻게 수업을 하지?
아이들만 문제가 아니었다. 새벽 3시에 전화하시는 학부모님, 아침마다 학교 찾아오시는 학부모님.... 나는 이 모든 환경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정말 몰랐다.
위염, 장염을 달고 살았고, 발령받고 혼자 살던 집에 해코지하러 누가 찾아오지 않을지 노심초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함께 신규 발령을 받았던 다섯 명의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정말 그 때 '의원면직'했을 수도 있다. 지금도 나의 절친들인데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그 시절 함께 시간을 보내줘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 학교에서 꼬박 3년을 보내고, 인문계 학교로 이동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첫 발령지에서 3년을 버틴 내공으로 모든 어려움을 의연하게 극복해낼 수 있었다.
오지에도 선생님은 필요하고, 거친 아이들이 많은 학교에도 선생님은 필요하다.
다만, 21세기에 '교사'의 '헌신'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연한 것은 없다. 누군가 험지에서 고생하고 있다면, 내 일이 아니니 외면하지 말고, 함께 고민해주고, 위로해주고, 물질적으로도 그에 알맞은 '댓가'를 지불해줬으면 좋겠다.
'교사'들이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아이의 교육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전문가'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고 내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스승의 날에는 고2 때, 담임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야겠다. 왜 나한테 교사가 되라고 하셨는지 떼 좀 부려봐야겠다. 아마 내 마음을 제일 잘 아실테니..
*이 글을 쓴 시점은 지난 스승의 날을 앞두었을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쉽사리 발행 버튼이 눌러지지 않더군요. 배부른 소리하고 있다는 시선과 어떤 식으로든 못마땅하게 볼 시선이 두려웠습니다. 정치적 발언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고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교사들은 어느 새 내 의견 말하는 것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이제 할 말은 좀 해볼까하고 늦었지만 발행 버튼을 눌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