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을 시키는 건 아동학대가 아닙니다.
나는 남편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냈고, 4학년 때부터 연애를 하기 시작해 꼬박 9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결혼을 결심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남편과 결혼한 가장 큰 이유는 '훌륭한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생활인'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의미의 차이가 있겠지만은 내가 언급하는 '생활인'은 말 그대로 일상생활을 하는 보통의 사람을 말한다.
남편은 일상생활을 성실하고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이다. 매일매일 원칙에 맞게 분리수거를 하고, 집안의 크고 작은 수리할 곳을 스스로 수리하고, 청소를 누가 봐도 깨끗하게 해낸다. 어떤 집안일을 맡겨도 신뢰가 가는 그런 사람이다. 매일 적절한 운동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기상해 자신의 루틴대로 준비해서 출근하며, 주말에는 1주일 동안 입을 자신의 셔츠를 세탁해 준비해 두는 그런 사람이다.
탁월한 개그 감각도 없고, 미래에 대한 거창한 비전도 없지만 일상생활을 큰 변동 없이 잘 해내는 이 사람의 삶의 태도가 맘에 들었다. 이런 사람과 결혼하면, 인생의 화려함은 없겠지만 불안한 삶은 살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오랜 연애 기간 동안 들었다.
우리 아들은 우리 나이 7세 바뀐 나이 정책으로는 6세인 미취학 아동이다. 우리 아들에게 바라는 건 스스로 절제하고 일상을 유지하는 루틴을 지키는 삶을 사는 것이다. 아빠처럼. 남편은 대학 이후, 오랜 기간 자취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일상을 잘 유지하는 법을 스스로 배워온 것 같다. 성실한 부모님의 삶의 태도를 어깨너머로 잘 배웠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이 아동이 부디 스스로의 할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며 안정감을 느끼길 바란다. 우리의 불안은 루틴이 무너지는데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예측가능한 일들을 내가 계획한 시간 안에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면 불안의 많은 부분이 해소된다고 믿는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지만 막상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면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어야겠다는 부담이 있지만, 훌륭한 생활인 1명이 집에 있으니 나는 조금 태만해도 되지 않을까 위안을 삼아 본다. 작은 일이라도 집안일의 일정 부분을 담당하게 하고(이를 테면 집안의 계단을 닦는 것과 같은) 본인의 몫을 실행하지 않았을 때 가족들이 불편을 겪게 된다는 걸 몸소 배우게 해주고 싶다. 자신이 흘린 음식물은 부족하더라도 자기 손으로 닦아 치우게 하고, 갈아입은 잠옷은 제자리에 두어 다시 찾아 입을 수 있게 하는 등의 소소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혼자 사는 삶도 나쁘지 않지만, 혹시 이 아이가 자라 누군가와 함께 삶을 살게 된다면, 함께 사는 이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생활인이 되도록 가르쳐주고 싶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절대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님을 부모님들이여 기억하시라.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만난 거친 세상은 아이에게 더욱 가혹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