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과 파즈, 하울, 하쿠, 아시타카 ...
하야오는 도쿄 태생이지만, 미군의 공습이 잦아지면서 가족 모두가 도쿄에서 다소 떨어진 우쓰노미야라는 소도시에서 머물게 된다. 가족이 운영하는 공장의 원청업체와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군수산업으로 돈을 번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저택이 있었다.
일본이 항복하기 한 달 전, 우쓰노미야는 폭격을 맞아 도시 절반이 폐허가 되었다. 하야오의 가족은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다시 있을지 모를 폭격을 피해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큰아버지가 회사트럭을 몰고 왔는데, 요즘의 트럭보다는 훨씬 작아서 사람을 태울 공간이 비좁았다. 폭격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 도로 가장자리에 몰려 있었다. 유년의 하야오는,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저희 좀 태워주세요!’라는 여자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었던 것 같다. 자신이 직접 들은 것인지, 아니면 부모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들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조차 분명하진 않다. 그러나 평생 트라우마로 지고 살게 된 죄책감이다.
한 여자가 어린 소녀를 안고 우리에게 뛰어와 ‘저희 좀 태워주세요!’라고 외쳤다. 하지만 하야오 가족을 실은 트럭은 그대로 가버렸고, 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형의 기억으로는 트럭이 작아서 가족 이외에는 더 이상 사람을 태울 공간이 없었다. 그러나 하야오의 죄책감을 털어낼 변명은 되지 못했다.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이는 동안 군수산업에 기대 부자가 됐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동안 그 귀한 휘발유를 써가며 트럭을 몰아 탈출했고, 태워달라고 애걸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외면했다는 사실은 네 살짜리 자아에 중요한 부분이 됐다.”
자신이 부모였고, 내 아이가 차를 세우라고 했다면 자신은 세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4살의 하야오는 차를 세우라는 말도 못 했다. 만약 그런 아이가 존재해 차를 세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뒤돌아선 가정을 해보기도 한다.
이 뿌리 깊은 죄책감이 그의 작품들에 투영된다. 그가 그때 할 수 없었던 걸 할 수 있는 소년. 소녀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와 지켜주는 코난과 파즈, 하울, 하쿠, 아시타카 등은 그런 ‘타자’였다.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나오지 못하는, 거장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 민이언, <이해되지 않는 삶은 없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