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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Ha Sep 06. 2021

희미한 기억으로 사라지는 내 삶의 순간들

내 삶과 기억의 아카이브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지만, 매일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매일매일 내 삶의 흔적을 어딘가에 남겨본다.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 길이 되어, 언젠가 그 발자취를 따라갔을 때, '그때는 그랬구나. 내가 이렇게 생각했었지'라고, 느낄 수 있다면 참으로 감사할 것이다. 


내 생각을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완벽하지 않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쑥스러운 일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군가는 내가 고민하는 문제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를 통해서 그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경험한 것을 내 속에만 가둬둔다면 언제 가는 사라지겠지만, 그 생각과 속내를 글로 옮겨둘 수 있다면  그 내용들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내 경험을 글로 남기는 것. 누군가를 위해 내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 이것이 사람이 사는 것이고,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도 발전해 온 것이라 생각된다.   


매일매일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 스쳐 지나가는 경험들을 모두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매일 조금씩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다면 언제 가는 그 기록들이 모여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삶의 순간순간은 소중하다. 그러한 소중함을 그냥 지나쳐간다면 그것은 나를 스쳐지나가는 빛이 될 수뿐이 없다. 하지만 그 빛을 잡고 어딘가 저장해 둔다면, 그 빛이 모여 나중에 세상을 밝히는 큰 빛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막 40대에 들어섰다. 이제 인생의 반을 산 것이다. 2020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3.3세이다. 여자는 평균수명은 86.3세이고, 남자는 80.3세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6년을  더 산다니, 나보다 5살 어린 아내는 나 없이 11년을 혼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미안해진다. 내가 80세보다는 더 살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서 내 몫만 하고 간다면 크게 후회는 없을 것이다. 모든 물건은 목적과 용도에 맞게 만들어진다. 시계는 시간을 보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해 만들어진다. 이처럼 사람도 태어난 목적이 있고, 이유가 있을 것이다. 80세라는 긴 수명이 주어진 것은 그만큼 우리 삶의 목적을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긴 시간이 주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남은 인생의 반을 어떻게 살 것인가?  지극히 착한 물처럼 그냥 흘러가는 상선약수처럼 살아야 하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굽이쳐 가다가도 평평히 가고, 빨리 가다가도 천천히 가고, 물줄기가 되어 언젠가 바다로 향해 흘러가는 물처럼 내 삶도 시간의 급류를 타고 종착역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언젠가 돌이켜 볼 수 있는 나의 흔적이 있다면 내 삶이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서 그 기록들을 꺼내어 볼 때 그 희열과 감정, 그때의 생각을 다시 한번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루 24시간을 보내며, 주의에 사람들을 보면서, 사물들을 보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생각들을 기록하고 정리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나 자신을 드러내기에는 서툴고 부족하지만, 조금씩 적다 보면 언젠가는 서툼이 능숙으로 바뀌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왔을 때,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를 던져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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