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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JUBE Sep 03. 2020

타지에서 보내는 생일이란

호주에서 보내는 두번째 생일


음 학창 시절 땐 '생일'이라는 날이 정말 특별했다. 1년에 한 번 부모님에게 갖고 싶던 비싼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이기도 했고, 얕고 넓던 인간관계를 어찌 보면 과시하며 관계 속에서 위안 받는 날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알바를 해서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고, 오히려 비싼 물건을 부모님한테 받으면 불편하기까지 한 상태이다. 깊고 좁은 인간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나에겐 '생일'이란 나에겐 누군가의 마음을 선물이나 축하로 확인할 필요도, 선물로 사람의 마음을 판단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날이 지날수록 생일이란 날이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느껴졌다. 내가 태어난 날은 이제 내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기 보단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날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태어난 생일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준 사람들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그들이 기쁜 날에도 나도 함께 축하하고 싶단 생각을 한다. 또 무엇보다 내 존재가 이 세상에 있음에 이 세상이 특별해졌다고 믿어주는 부모님에게 감사함을 전할 수 있는 날이라 뜻깊다.



내가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타지에서 보내는 생일은 항상 느낌이 오묘하다. 20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미역국을 끓여주던 가족이 있는 집이 아니라 외국에서 나 홀로 생일을 맞이한다는 것이 새롭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락다운 속에서 초도 불고소소하고도 행복하게 보냈는데 어딘가 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래도 내년엔 올해 생일을 같이 보낸 사람들이호주에 없을 것이고 남아 있는 건 나뿐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축하받고, 언니 오빠 생일 땐 옆에서 축하해 주지 못할 걸 아니까 속상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부터 이별을 생각하면서 이 관계에 대해 걱정할 시간에, 이별할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그저 지금 내가 받은 것에 감사하고 줄 수 있는 것을 나누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멜버른에 오자마자 락다운이 터졌고, 학교는 가보지도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듣게 됐다. 아무래도 주변엔 같이 사는 워홀 친구들 밖에 없어서 너무 많이 이별했고, 앞으로도 더 많이 떠나보낼 예정이다. 여러 사람이랑 친구하기보단 좁게 오래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나의 성향인지라 이런 반복되는 이별이 더 힘들고 지친다. 한국에선 보통 생일엔 가족들이나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이랑 시간을 보냈었다. 작년에도 그들이랑 시간을 보냈고 올해도 그대로 작년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내년에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안정감을 줬고 그 관계에 감사함을 느꼈다.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특히 완전히 적응하기 전에,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같다.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하고행복한 생일날이지만 괜히 가족들이 더 보고 싶은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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