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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n 08. 2022

‘내’가 아닌 ‘엄마’

3-1편


‘내’가 아닌 ‘엄마’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봐도 나는 그렇게 실수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걱정이 많은 편이라 미리 준비하고 검토하고 꽤 깊게 생각한 후 행동하기 때문에 실수가 잦지 않았다. 또 잘 못하는 일은 아예 시도하지 않거나 시작했다면 잘해냈다는 마음이 들 때까지 끝장을 봤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특히 나에 대한 나의 평가가 완전히 뒤집혔다. 전편에서 말했듯이 ‘엄마’는 ‘어나더 레벨’이다. 내가 30년간 겪은 일, 맡은 자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차원이 다르게 어렵고 힘들다. 그리고 작은 실수가 몰고오는 후폭풍이 거센 경우도 많았다. 엄마의 일이란 한 생명을 품고, 낳고, 키워내는 어마어마한 일이기에 실수가 용납되기 어려웠다.


첫 아이 임신 때 38주까지 꽉 채워 일하고 출산 휴가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을 합쳐 고작 6개월만 쉴 수 있었기에 아이가 태어난 후 6개월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타고난 조산 체질이었다. 아직 출산 가방도 싸지 않았는데, 수유 방법이나 아이 목욕시키는 법은 찾아보지도 않았는데, 37주가 되기도 전에 아이가 태어났다.



실수해도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조리원에서부터 본격적인 ‘엄마 공부’가 시작되었다. 벼락치기였지만 예습이 아닌 실전이기에 더욱 열심히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가 알아야 하는 것을 익혀 나갔다. 잘하진 못해도 최선을 다했기에 이 정도면 그렇게 못난 엄마는 아닌 것 같다 생각하게 될 즈음, 아이 피부에 작은 동전 크기의 습진이 올라왔다. 별다른 피부 트러블 없이 살아온 나에게는 별 거 아닌 일 같아 보였다. ‘로션 좀 열심히 발라주면 되겠지’ 무심코 지나쳤던 그 습진은 주변으로 퍼졌고 그제서야 유아 아토피가 얼마나 무섭고 심각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습한 어느 날 낮잠 자는 아이의 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조금 나아진 줄 알았던 습진이 온 몸으로 퍼져 있었다. 그 날의 절망감은 6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다짐하고서 대학병원 아토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러 다녔고 아이가 돌이 지날 때까지 매일 5,6회 전신 보습을 하며 아이 피부 치료에 매진했다. 그렇게 케어 하는 동안 맘카페에 올라온 아토피 관련 글을 읽을 때면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우리 아이도 이렇게 되면 어쩌지? 두려움이 커졌다. 작은 동전 크기 습진일 때 신경 써주었다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텐데 나는 왜 이리 무심하고 무지했을까.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또 한번은 아이가 돌 즈음이었을까 손목 안쪽에 살짝 긁힌 자국이 났는데 날카로운 것에 베인 수준이 아니었기에 그냥 두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그 부분이 켈로이드성 흉터로 되어 버렸다. 이게 뭐지? 분명 작은 긁힘 상처였는데 왜 없어지지 않고 왜 붉은 흉터로 된 거지? 뒤늦게 흉터 연고를 발라줘도 소용이 없었다. 부위가 크진 않지만 지금도 가끔 손목을 본 사람들은 아이에게 화상 흉터냐고 묻는다. 작은 흉터 정도는 별 거 아니다 생각하지만 아이에게 굳이 없어도 될 흉터를 내가 만들어 준 것 같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이 바보 멍청이 등신 머저리 


아이를 키우는 데에 있어 ‘적당함’은 미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즈음, 항상 세심하고 조금은 예민하게 아이를 관찰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즈음, 나는 또 한번의 BIG 이벤트로 나의 등신 머저리함과 마주하게 되었다. 


돌까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은 첫째는 돌 잔치 딱 일주일 후 감기+후두염에 걸려 입원을 할 정도로 고생을 했었다. 후두가 부어 열은 높았고 기침을 많이 해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처음으로 아이가 크게 아픈 모습을 보며 난 어쩔 줄 몰랐다. 병원 진료 후 약을 처방해왔고 얼른 약을 먹여 열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그렇게 약을 먹이고 아이가 잠들었는데 열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아이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게 아닌가? 체온을 재어 보니 34도?? 이거 괜찮은 건가? 고열도 아니고 이건 무슨 상황이지? 아이의 체온은 점점 떨어졌고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어 잠든 아이를 안고 급히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 도착한 아이는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고 아무런 처방 없이 집으로 왔다. 저체온증이 왔을 때엔 아이를 이불이나 점퍼로 감싸주면 되는데 응급실에 갈 때 패딩 점퍼를 입혔기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정상체온으로 돌아왔던 거다. 그리고 ‘저체온’의 원인은 바로 해열제 과다 복용이었다. 그 동안 아이가 아픈 적이 없어 약을 먹여본 적도 없던 나는 약사의 복용 방법 설명을 흘려 들었다. 얼른 약을 먹여 열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당연히 처방해준 약을 다 먹이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약을 주었는데 조제한 약에 이미 해열제가 들어있었고 이걸 먹고도 2시간 이상 고열이 유지되면 추가로 해열제를 주라고 처방해준 것이었다. 지금은 이런 처방과 복용 방법이 익숙하지만 그 때의 난 정말 몰랐다. 해열제를 한번에 2배로 먹은 아이는 저체온증이 잠시 왔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저체온증 또한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때의 내 심정은 참담했다. 오롯이 나로 인해, 나의 무지와 실수로 인해, 아이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걸 경험하고 나니 엄마로서의 자존감은 바닥을 찍었다. 


와.. 내가 이렇게 바보 머저리 등신 같은 사람이었구나. 이렇게 부족한 내가 아이를 키우겠다고 하다니. 정신 똑바로 안 차리면 내가 아이를 지키는 게 아니라 해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


살면서 내가 이렇게 바보 같고 한없이 부족해 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이 부족함이 과연 노력으로 메꿔질 수나 있는건지 막막했다. 아이가 건강을 회복을 한 후에도 아이에게 약을 잘못 먹여 아프게 했다는 죄책감은 마음 깊이 남았다. 


이런 일련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겪으면서 나는 더욱 꼼꼼하게 예민하고 세심한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전의 나는 항상 걱정이 앞서는 성격이라 좀 더 여유롭고 느긋한 마음을 갖고 살고 싶다 생각해왔지만, 엄마가 된 후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에 관해서는 더욱 날이 서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다른 나와 마주하다. 


실수할까 긴장하며 나를 다그치던 초보 엄마 시절이 지나고 한없이 부족했던 내가 조금은 보통 엄마처럼 보이는 시기가 되자 나는 또 다른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나의 밑바닥, 악마였다.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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