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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l 06. 2022

나는 악마가 되어 가는가

3-2편


나는 악마가 되어 가는가


내가 오래 좋아한 록 밴드 중 하나인 ‘언니네 이발관’ 곡 중에 이런 제목의 노래가 있다.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 이 노래를 한창 듣던 20대엔 상상도 못 했는데, 이 노래 제목은 내가 육아를 하면서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나의 밑바닥

 

엄마가 되고 두 아이가 커가는 동안 나는 ‘엄마 이전의 나’와 ‘엄마인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일이 꽤 잦았다.

‘이전의 나는 절대 그런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아니었는데..’ 엄마가 된 나는 상대에게 비수를 꽂는 못된 말을 목청 높여하는 나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심지어 그 유일한 상대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네다섯 살의 내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악마가 되어 아이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난 밤이면 으레 눈물을 훔쳤다. 연년생 터울의 남자아이 둘과의 치열한 독박 육아가 끝나고 나의 유일한 휴식 시간인 잠자리에 누우면 죄책감과 후회가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 나를 덮쳤다. 나를 흠뻑 적셨다. 괴롭고 슬픈 시간 안에서 나는 나를 더 미워했고 그러다 가도 다시 한번 내일은 다르겠다고 다짐했다.


많은 생각과 후회와 다짐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한 번씩 ‘폭발’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원래 이렇게 화가 많고 나쁜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었나?’ 내가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밑바닥은 과연 어디까지 인지, 얼마나 더 괴물 같이 변할 수 있는지 나도 나를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엄마야 악마야?


내가 보는 나도 참 싫었지만 아이들이 보는 엄마가 어떨지 두려웠다. 세상 따뜻하고 너그러워야 할 엄마가 분노 가득한 얼굴로 소리를 지른다면 아이는 어떤 기분이 들까? 나의 엄마는 어린 나에게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기에 나는 내 아이들의 기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살면서 나의 부모에게도 형제에게도 친구에게도 직장 동료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나다. 그런 내가 작고 여린 내 아이들에게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마구마구 쏟아내는 모습은 참 어리석고 또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항상 변함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다 이해하고 참기란 어려운 일이다. 마음속에 참을 인을 세 번 아니 열 번을 넘게 새겨도 아이들은 마음대로 하기 일쑤이고 한 번의 투정을 받아주면 두 번 세 번 끝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육아 전문가들은 그게 바로 ‘아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하지만 지친 몸과 마음으로 그 많은 ‘마음대로’를 받아주는 것이 버거운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참고 참다가 꼭 아이를 재우기 전, 나도 지쳐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시점에 폭발했다. 내가 폭발했다고 해서 아이가 마음대로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이는 슬픈 마음을 있는 힘껏 온몸으로 표현했다. 목이 쉴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결국 나는, 엄마는 아이를 달래야 했다. 그래야 마무리가 되었다. 아이도 마음에 상처를 입고 나도 내 분노를 꾹꾹 누르고 아이를 달래느라 내 마음을 돌볼 틈이 없었다.


아이와의 이런 이벤트들이 짧은 텀으로 발생하면 더 나은 엄마가 되는 걸 포기하고 그냥 내가 나쁜 엄마라는 걸 인정하고 싶기도 했다. 부족한 나를 다그치는 것도 모두 다 내려놓고 싶다 가도 내려놓아 질 수 없는 일이란 걸 알기에 그럴 때면 육아 전문가의 동영상을 보거나 훈육 서적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어느 날은 두 아이를 키우는 연예인 김나영 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남긴 문구를 보고 위로와 용기를 받기도 했다. “육아는 매일매일 내가 별로인 사람인 걸 확인하게 한다. 보고 싶지 않은 내 끝을 내가 본다.”라는 그녀의 말 그리고 많은 엄마들의 공감.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은 꽤 큰 힘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다짐하고 화내고 후회하고 위로받고 다시 다짐하고.. 내 안의 감정과의 치열한 싸움을 하면서 나는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퇴사


그 노력의 연장선상에 퇴사가 있었다. 남편은 야근이 일상이었고, 나의 일상은 칼퇴 + 독박 육아로 빼곡히 차 있었다. 몸이 지치니 마음도 지치고 그 화가 쌓여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 앞에 참을 인을 새기다 말고 터지는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갑자기 달라질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나를 바꾸고 싶었고 아니 되돌리고 싶었고 아이들에게 악마가 아닌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나는 내가 나쁜 엄마라는  인정하지 않되 몸과 마음나약한 사람이라는  인정했다. 그런 나약한 내가  나은 엄마가 되려면 지금의 생활에서 무언가 덜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퇴사 후 벌써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또 많이 컸고 나는 조금의 여유를 찾았다. 무시무시한 얼굴로 아이들을 대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물론 화를 내고 큰 소리로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10번을 불러도 대답을 안 하면 크게 말해야 하지 않겠나? 나의 최종 목표는 오은영 박사의 말대로 아이를 혼내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욕심내지 말고 하루에 한 번이라도 덜 화 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나니까. 지쳐 떨어질 수 있으니까. 나는 내가 나약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나를 너무 내몰지 않으려 한다.



가장 소중한 가족에게 사랑을-


나는 내 곁의 가장 소중한 가족들에게 왜 나쁜 말을 내뱉는가? 왜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지 못하는가? 건강하게 함께 있어주는 가족들을 후회 없이 사랑하고 아끼자. 감사하자.


항상 마음으로 묻고 다짐했던 말이다. 이 다짐이 민망할 정도로 화를 쏟아내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 그리고 앞으로는 내 밑바닥의 분노가 아닌 여기저기 흩어진 사랑 모두 끄집어내어 내 사랑,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후회 없이 주려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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