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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테살 May 28. 2019

캐러밴 소녀

베를리너의 삶

애니씨를 처음 만난 곳은 학원이었다. 발코니에서 담배를 태우는 그녀를 보고 단번에 한국인임을 알아봤으나 눈썹까지 가린 앞머리와 커다란 은 귀걸이에 느껴지는 이국적인 분위기에 선뜻 말 걸기를 주저했다. 그보다 그녀의 옆에 있던 프로판 가스통이 눈에 들어왔다. 어학원에 웬 프로판 가스통. 나는 그녀가 학원생이 아니라 가스를 교체하는 회사 직원쯤 될 것이라고 여겼다. 가스통을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내리기엔 그녀의 몸에 두른 액세서리가 너무 고고해 보였지만 여기는 베를린이니까.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애니씨는 초등학생 저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이다. 며칠을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그런데 저 한국말할 줄 알아요.’라며 그녀는 장난스레 웃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세계 여기저기를 여행하다 베를린에 온 지도 벌써 1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생활비를 벌며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베를린을 조금만 벗어나면 고즈넉한 숲과 전원주택이 모인 마을이 있다. 애니씨는 그곳에서 캐러밴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의문의 프로판 가스통은 부엌에 불을 놓기 위해 산 것이라고 했다. 버튼만 누르면 불이 나오는 세상에서 애니씨의 대답은 공상 과학 영화의 나오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애니씨의 초대를 받고 작은 캐래밴에 타보았다. 그곳에서 내가 누려보지 못한 삶, 어쩌면 동경하고 있는 삶을 조금은 경험해볼 수 있었다.



베를린에 도착한 그녀는 집을 구하지 못해 이곳저곳을 전전했었다. 그러다 문득 ‘주어진 대로 살지 말고 내가 삶을 개척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오랜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이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생활비로 모아뒀던 돈을 털어 중고 캐러밴을 구입했다. 큰 나무에 적당히 그늘진 곳.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숲인 곳. 아침이면 새들이 날아다니는 곳이 그녀의 집이었다. 삐그덕 거리는 녹슨 철제문을 열고 먼지가 쌓인 바닥에 앉자 하나씩 고쳐나갈 생각에 그녀는 설렜다고 했다.



도심까지 두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살게 된 그녀는 매트리스부터 각종 생활용품을 사러 매일 자전거를 타고 도심으로 향했다. 숲이 우거진 도로를 지날 때면 캐러밴에서 산다는 게 실감 났다고 했다. 어느 날은 밤늦게까지 쇼핑을 하고 집으로 오던 길이었다. 빗방울은 조금씩 떨어지고 급한 마음에 자전거 페달을 더 밟았다. 그러다 코트 끝자락이 체인에 걸렸고, 중심을 잃은 그녀는 자전거와 함께 털석 넘어졌다. 이케아에 구매한 나무 선반과 커피포트가 길 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그녀는 자신을 챙길 겨를도 없이 새 제품에 묻은 흙탕물을 닦아냈다. 그녀는 그 모습이 웃겼다고 한다. 자연 속에 살면서 아직도 문명에 의지하는 모습이.


그녀는 그날부터 직접 가구를 만들었다. 나무를 자르고 망치질을 하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마을 주인들과 물물교환했다. 이웃들에게 장비를 빌리고, 벼룩시장에 가 낡은 물건들을 사고. 서툰 솜씨로 만든 선반과 발판, 침대 틀이지만 그녀에겐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제품이었다. 그녀의 손길이 낳은 물건들로 채워진 캐러밴을 보고 그녀는 그 공간이 자신의 친한 친구 같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그녀처럼 하나밖에 없는 캐러밴.



집을 꾸미기 시작하면서 베를린에 대해 알아갔다고 그녀는 말했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던 그녀조차 베를린이 특별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익명 간의 존중과 믿음이었다. 하루는 옷을 사기 위해 시내를 둘러보았다. 정장이 잔뜩 걸려있는 가게에 들어섰고, 마치 세탁소 같은 분위기에 흥미를 느꼈다. 유학생과 스타트업을 하는 젊은 청년들이 많은 베를린에는 정장을 빌려주는 옷 가게가 있었다. 가게 안엔 주인이 신문을 보고 있었고, 사람들은 줄지어 있는 정장을 하나씩 걸쳐보았다. 재밌는 점은 옷을 고른 손님이 주인에게 값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님은 인적 사항을 적고 기부함에 자신이 낼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내고 가게를 나섰다. 옷을 고른 그녀는 주인이 신문을 다 볼 때까지 기다렸다. 돈을 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은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사람을 믿어온 태연한 태도였다. 그 가게 안에선 모든 것이 자율적으로 이뤄졌고, 손님들은 믿음을 배우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캐러밴 앞 포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햇살은 정답게 그녀를 비추고, 따뜻한 커피에 손을 녹인다. 화분에 물을 주고 나면 숲을 한 바퀴 돈다. 숲에는 사과와 배, 그리고 이름 모름 과일들이 떨어져 있었다. 필요한 만큼만 광주리에 담는 것이 그녀의 원칙이다. 남은 과일은 숲 속의 동물들이 먹는다는 그녀의 말은 동화 속 주인공의 대사같이 들렸다.


그녀의 삶은 자신이 누군지를 찾아내는 여정이었다. 미국에서 청년기를 보내며 보이지 않은 인종 차별에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무너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들렀던 한국에서 몇 달도 쉽진 않았다. 한국인에게 그녀는 단지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세계 여행을 하며 자신을 찾았다. 내가 누구인지. 나란 사람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지. 언제가 그녀에게 물었던 적 있다. 왜 처음부터 한국인임을 내게 밝히지 않았냐고. 그녀는 이제 자신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상관없다고. 그저 사람대 사람으로 서로를 조심스레 읽어가는 것이라고. 그 대답을 통해 그녀의 여행이 어땠는지 감히 짐작할 수 있었다.



공간은 때론 사람을 대신하기도 한다. 무슨 가구가 있는지, 어떤 톤으로 꾸몄는지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조금은 엿볼 수 있다. 미국인도,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닌 그 중간을 살아왔던 그녀는 도심과 자연의 중간에서 살고 있다. 그녀가 스스로 정체성의 기원을 찾아갔던 것처럼 캐러밴의 놓인 대부분의 가구와 소품은 그녀가 직접 만들었다. 삶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 그녀의 캐러밴을 보며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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