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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꿈 Aug 16. 2020

찰떡같이 알아듣기

우리 아이의 말트이기를 내 손으로 직접 해 내겠다고 생각한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에는 '엄마와 아들 사이의 라표형성'도 크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우리 집에 찾아온 전집 관련 영업사원이 우리 아이의 언어능력을 테스트하며 '코끼리'도 모르는 아이 취급을 해서 받았던 그 상처 역시 '우리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알아'와 같은 마음으로 극복해낸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난 지 26개월이 된 우리 둘째는 요즘 부쩍 말을 하고 싶어하는데 꿈이때와 비교하면 그 의지와 성과가 어마어마하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차 번호판을 신나게 읽으며 지나가는 형아를 따라 자기도 마치 글자와 숫자를 아는 것 처럼 뭐라뭐라 열심히 외치기도 하고 형아를 따라 구호를 외치며 스트레칭을 하기도 한다.

말이라는 건 참 신기한 것이, 문자로만 전달되었다면 절대 알아듣지 못했을 말들이지만 크기, 빠르기, 높낮이, 말투 등의 반언어적표현과 함께 하여 의미가 전달되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은 요 근래 부쩍 친해져 하나의 장난감을 갖고 서로 번갈아가며 놀기도 하고 둘이 쉴새 없이 대화를 하기도 하는데 곁에서 지켜보는 어른들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자기네끼리는 소통이 되는지 까르르 웃으며 너무나 행복해한다. 그리고 오늘, 그 비법 중 하나를 알아차렸다.

꿈이는 놀이를 하거나 대화를 할 때 '어떻게 하면 좋지?'라는 식의 질문을 하면 곰곰히 생각하다 꼭 오른손 검지손가락 하나를 곧게 세우고는 '아하, 좋은 생각이 있어'라는 말을 하는 엉뚱한 습관이 있다.

가령, 역할놀이상황에서 '바퀴가 구덩이에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없어. 어떻게 하면 좋지?'라고 상황을 만들고는 등장인물들의 웅성거리는 상황 연출 후 '아하! 좋은 생각이 있어. 구조대를 부르면 되지!'하는 식이다.

오늘은 꿈이와 행복이가 주차타워를 둘러싸고 작은 자동차들을 주차하고 놀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지? 3층 주차장은 자리가 없어. 차들이 너무 많아.'라는 꿈이의 질문에 행복이가 뭐라뭐라 답변을 하니 꿈이는 '그래. 그게 좋겠어.'라는 대답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 일을 스크립트로 정리했다면 행복이의 대사를 정확히 유추하긴 쉽지 않겠지만 우리 부부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저 대사는 분명 '아하!좋은 생각이 있어!'일 것이라는 걸.

행복이는 형아가 늘 그렇듯 검지손가락을 쭉 뻗어내어 같은 억양의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아이들이 말이 트이기 시작할 때 주양육자는 쉽게 알아듣는 말들을 주변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표로 언어치료를 진행하는 장점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이다.

아이의 발화의지가 싹트고 있을 때 그 과정에 개입한 사람들이 그 말을 찰떡같이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아이는 입을 다시 다물어 버릴 수도 있지만 주양육자는 아이의 말을 캐치해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가정에서 부모님이 아이의 언어와 관련해 더 주시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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