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도 과학인 걸 왜 모르나
한국이라고 딱 규정짓고 싶지는 않지만
14년도 창업했을 때 멘토가 했던 말이 이제와 또 수긍이 되는 시점이다.
한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디자이너들 수두룩한데 어디 해외 나가서 이름이라도 유명한 데 있어?
한국이나 미국이나 유럽이나 차라리 같은 노력을 할 바에야 이렇게 1,000개 중 1개 살아남을까 말까 하는 한국에서 디자이너 뭣하려 해?
그런데 난 다시
작년부터 패션 사업을 하려 고군분투 중이다.
이번엔 좀 다르길 바라면서.
우리 언니가 맞지 않는 옷이 없어 쇼핑이 재미없다는 말을 듣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허리는 44, 엉덩이는 77
언니가 거울을 보며 매일 긴 옷으로 엉덩이를 가리는 모습을 보면 참 이상하고도 마음이 아파온다.
패션 브랜드 옷들은 죄다 마네킨을 위한 걸까?
다들 저 화보에 있는 연예인들을 위한 옷인가?
이 의문은 항상 있어왔는데..
우리 언니를 보니 더 피부로 느껴졌다.
내 주위만 그런가
키가 작고 하체가 다부져 바지 허리를 수선하거나, 길이를 수선하거나..
허벅지만 맞으면 그래도 감사해서 옷을 산다고?
나도 그렇다.
엉덩이가 매우 불편해서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뒤 허리 주춤을 매번 당겨 허리로 끌어올린다.
벨트가 괜스레 허리를 두껍게 보일까
벨트는 안 하고 바지에 고무줄을 좀 넣어봤다.
전보다 나아졌으니 그냥 입기로 한다.
매일 입는 바지가 불편해도 그냥 입는다.
새로 사놓고도 잘 안 맞으면 또 안 입는다.
사실 여자들은 그렇다.
허리만 맞으면 대충 맞는다는 남자들과 달리
허리부터 발목까지 제법 잘.맞.아.야 한다.
우리 언니가 쇼핑이 어려운 이유,
내가 그러는 이유, 내 친구들도..
그렇게 인생 팬츠를 찾으면 그다음은 또.. 어디서 찾아야 하나, 이와 똑같은 바지는 안 나오는데..
같은 브랜드에서도 조금씩 또 다르게 나오니까..
(제발...ㅜㅠ)
내가 답답해서 사업자를 내버렸다.
나 바쁘니까 지금 이 바지랑 비슷한 거 찾아줘!!!
그리하여 신진 디자이너 아니고 쇼핑몰도 아닌
우리 언니 쓰라고 만든 똑같은 옷 찾기 어플이다.
근데 중요한 건
난 개발자가 아니고 패션을 너~~~ 무 좋아하고
잘하는 것 말고는 자랑할 게 없는데..
정부사업으로 자금 지원이라도 받으려면
패션이 아닌 (패션) 테크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테크 좋아해. 기술! 기술이어야 해..!!
(대신 심사위원들이 모르는 기술은 안됨)
내가 아는 인공지능 가속기 만드는 박사 3명이 창업한 곳도 줄곧 잘 떨어지는데
알고 보니, 심사위원들이 잘 몰라서 질문을 못한다 하더라..
암튼, 여기 팁을 주자면
창업을 위한 정부지원사업으로 #패션 #디자인 #뷰티 #제조를 준비하고 있다면 어중간한 신진 디자이너나 쇼핑몰 개념으로 지원해서는 안된다.
왜냐면, 기술이 빠졌으니까.
그리고 기술을 잘못 넣으면 또 심사위원둥절..
(그들은 패션/뷰티 전문가가 아니다. 그냥 오늘 입고 나온 양복이 전부다.라는 관점으로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발표해야 함..)
또잉? 난 허리만 맞으면 되는데
옷 사는 게 그렇게나 어려움??
(다들 이렇게 질문하더라....)
심사위원 99%는 남자분들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에 거진 50번 이상 사업 발표하면서
발표 스크립트를 이렇게 바꿨다.
자, 셔츠 입을 때 배가 나와서 배 사이즈로 맞추다 보니 어깨가 크거나.
어깨에 맞췄더니 팔 길이가 길거나.
허벅지에 맞췄더니 허리가 크거나.
나한테 맞는 옷 찾기 힘들쥬?
그래서~ 이 어플은 (주저리주저리..)
(심사위원 끄덕끄덕)
근데 이렇게 얘기하지 않아도..
간혹, 있는 그대로 여성의 의류 사이즈 문제 관련해서 패션(의류)을 논하면, 자기 와이프가 잘 안 맞는 옷 때문에 스트레스받아하거나.. 자기 딸들의 고민을 아는 아빠 분들은 100% 공감하더라
사실 공감만 해도 감동이긴 하다.
암튼 그동안 정부지원사업으로
패션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건 이거다.
1. 확실한 "기술 기반 패션 테크" 회사로 재빠르게 시장 테스트해보고 사용자 다운로드 수나 가입자수, 재 방문율을 숫자로 보여주거나!
2. 아예 패션 크리에이터, 신진 디자이너로 옷을 제조하거나!
이 둘의 경계가 확실해야 한다는 것.
왜냐면 심사위원 중,
기술을 아는 패션 디자이너가 별로.. 없고
패션도 과학이라는 걸 잘 아는 심사위원도 별로.. 없기 때문에
한국에선 둘 중 하나만 고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