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립시다 쫌
난 청소엔 소질이 없다.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해서다. 친구가 써준 편지부터 대학 시절 노트 필기까지. 가만히 방안을 가득 채운 물건들을 보고 있자니, 내 소중한 추억이 깃든 건데, 언젠간 쓸모가 있지 않을까. 이상한 집착에 빠진다. 정작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도 손 한 번 대지 않는 물건들인데 말이다.
말뿐인 미니멀리스트로 살아오다 문득 답답함이 솟구쳤다. 책장을 뒤져가며 이것저것 물건을 솎아냈다. 재정학, 세계경제학을 비롯해 다시는 안 볼 것 같은 전공 서적 몇 권을 버렸고, 토익책, HSK 학원 교재를 버렸다. 수많은 씨디 중에 절대 듣지 않을 것 같은 씨디도 (꼴랑)열장은 버렸다. 영화는 광적으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모아둔 영화 잡지와 포스터는 비교적 손쉽게 버릴 수 있었다.
핫펠트가 지난 봄에 낸 책을 읽으며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했다. 경미한 저장강박증(혹은 호더스 증후군)이 있다는 점. 이 증상에 대해 찾아보니 유아기 시절 주변 관계인들로부터 충분란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했을 경우 보상 심리로 물건에 과도한 애착을 가지며 비롯된다고 한다. 그래서 저장 행위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 이 내용을 읽고 나니 더 물건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을 소중히 여긴 행위들이 어쩌면 결핍을 채우기 위한 행동들일 수도 있었다는 걸.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어젯 밤에는 엄마와 함께 내 방을 청소하며 큰 봉투로 한 가득 물건을 버렸다. 또 이 새벽에 갑자기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며 한숨이 튀어나와 홀로 큰 봉투 두 개 가득 버릴 물건을 집어넣었다.
부디 내일 다시 방을 한 번 더 뒤적였을 때 저것보다 더 많은 물건을 버릴 수 있는 나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