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유목민 Jul 02. 2024

장다리꽃 2

 이 년 전 겨울, 나는 눈길에 다쳐 골반을 수술한 엄마의 병실을 찾아갔다.

 엄마의 다리는 깁스를 한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머드로 이 먼 곳까장 왔냐. 나 이런 꼴 볼라고 그 먼디서…….
  마른 풀잎처럼 퍼석하게 누워있던 엄마는 나를 보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엄마의 손을 잡았다.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메마른 손이었다. 엄마에게도 풋풋하고 싱그러웠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깡마르고 까칠한 손은 검버섯으로 얼룩져 있었다.
  병원에서는 엄마의 골반에 쇠를 박아 넣고 단단하게 마무리를 했지만, 골다공증으로 자생력을 잃은 엄마의 다리 회복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엄마의 거취 문제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가족회의 끝에 내린 결론은 엄마를 노인 병원으로 모시자는 것이었다. 자식들이 다섯이나 있는데도 노인 병원에 보내야 한다는 현실이 답답했지만 아무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막막했다. 나는 엄마를 노인 병원으로 보낼 순 없다며 내가 모시겠다고 나섰다.

 퇴원 후, 엄마를 집으로 모셔왔던 나는 당장 엄마의 머리카락부터 잘라내자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이를 한사코 거부하는 것이었다.

 -왜 그래요. 엄마. 긴 머리 거추장스럽고 간수하기도 귀찮은데 깔끔하게 잘라내면 좋잖아.

 -싫어야. 머리크락 잘라내뿔믄 남세시러바서.

 나는 싫다고 거부하는 엄마를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은비녀로 틀어 올린 엄마의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기 시작했다. 길게 자란 엄마의 흰 머리카락은 흉물스러워 보였다.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지자 엄마가 훌쩍훌쩍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나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목덜미 부분을 이발기로 다듬어 주었다. 엄마의 앙상한 뒷덜미가 허옇고 까칠하게 드러나 보였다.

 -얼마나 좋아. 이리도 시원하고 간편한걸.

 내 말에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느그 아부지 앞에 요 꼴로 어츠케 간다냐? 추접스러바서.

 거울을 들여다보던 엄마는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생전에 느그 아부지가 나를 여자로 본 줄 아냐? 나라고 꽃단장 흐고 몸치장 흐고 싶은 맘이 없었간디. 새끼들 갈치고 묵고 살랑께 그럴 정신이 어디 있었겄냐. 느그 아부지가 밖으로만 돔시로 나 속을 얼매나 썩혔드냐. 그 많든 재산 계집질에, 허구헌 날 술타령에 노름질로 다 날래뿔고. 한 번은 느그 아부지가 어뜬 년 헌티 미쳐서 딴살림을 차랬단 소릴 듣고 분에 못 이겨 찾아갔었제. 문 앞 댓돌 우에 느그 아부지흐고 그 년 신발이 쌍 나란히 놓여 있는 거슬 봉께로 가슴이 벌벌 떨리드라. 문을 박차고 들어가고 싶은디, 심장이 벌렁거려 당최 들어갈 수가 있어야제. 할 수없이 돌아서 나오는디……. 지금 와서 그런 말 해 뭐 흐겄냐만은, 나넌 악착겉이 새끼들만 갈쳐야 쓰겄다 흐고 이를 악물었제. 새끼들 여봐란 듯 흐게 갈쳐서 느그 아부지 앞에 큰소리 탕탕 침서 살란다 허고 작심을 했제.

 젊은 시절, 가난 속에서 우리를 먹이고 가르치느라 억세게만 살아온 엄마였다. 그것은 어려운 시절을 꿋꿋이 이겨내려 했던 엄마의 겉모습이었을 뿐, 진짜 내면에는 지금까지 여자로서 자존심이 남아 있음을 나는 새삼 느꼈다.

 나는 엄마의 기분을 돌려 드리기 위해 욕조에 더운물을 받았다. 목욕하는 걸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가슴은 탄력을 잃어 축 늘어져 있었고, 아랫배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흐물했다. 자식들에게 자신의 전부를 빼앗긴 엄마는 껍질만 남아 온전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오 남매를 키우느라 정신도 육체도 다 소진해 버린 엄마는 욕조 밖으로 손을 내리고 나에게 몸을 맡긴 채 중얼거렸다.

 -옛날에 우렁이가 살았드란다. 우렁이가 새끼를 낳았는디, 새끼들이 지어미 속을 다 파 묵고 나와서 동동 떠내려가는 우렁이를 보고는 우리 엄마 시집가네. 그러드란다.

 엄마의 말에 가슴속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들어찬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정작 태연한 척 묵묵히 엄마의 몸을 씻겼다. 우리 형제들은 엄마라는 기름진 땅속에 뿌리를 뻗어 내려 이렇듯 울창한 나무가 되었는데, 정작 양분을 다 빼앗긴 엄마의 땅은 이제 쓸모없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나를 쓸쓸하게 했다.                

작가의 이전글 장다리꽃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