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무남독녀였다. 혼자 놀 궁리를 하다가, 개미가 지나다니는 길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루는 외할아버지의 명함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시가 아닌 시조를 외우는 세대였고 혼자 놀기에 심심하니 게임을 스스로 만들었다. 엄마는 그 놀이를 ‘시조 백수’라 불렀다. 외할아버지 명함 뒷면 하얀 자리에 초장은 굵게, 중장과 종장은 작게 써서 작은 시조 카드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놀이의 진행자는 시조백수 책에 있는 시조를 잘 읊어야 했다. 누구든 그 명함을 많이 찾는 사람이 우승이다. 자기 앞쪽으로 카드를 돌려놓고 잘 보이도록 하기도 했다. 진행자가 어느 사이 눈치를 채고 확 섞어버렸다. 그러면 소리를 지르면서도 또 자기 앞으로 돌려가며 웃고 떠들었다.
엄마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 아들이 많았으면 아마 이 놀이는 몇 번 하고 자취를 감추었을 것인데 다행히도 무려 4명이나 되는 딸들이 있어 명절 때나 같이 게임을 할 시간이 나면 재미나게 갖고 놀았다. 우리 가족만의 전통 놀이처럼 말이다. 다른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화투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엄마의 수고 덕분으로 우리는 특별한 놀이를 한 것 같다.
언니랑 동생들이 크면서 놀이는 좀 시들했지만, 나중에 결혼하고 친정에 와서는 아이들은 자기들 끼리 놀아라하고, 어른들은 시조 백수 놀이를 했다. 그사이 다 잊었다면서 자기 쪽으로 카드를 당겨놓고 초장을 외우기도 하고 서로 한 장이라도 더 갖겠다고 눈에 불을 켰다. 그 모습도 그 웃음도 여전했다.
아마 그런 놀이가 우리 감성을 키워줬던 걸까. 언니는 대학원 시절, 김춘수 시인으로부터 등단을 추천받았다. 젊을 땐 어려운 시를 많이 쓰더니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동문학가의 삶을 살고 있다. 여동생은 아직 등단하지는 않았지만 제법 글을 잘 쓴다. 또 내가 가장 부족한 거 같다. 언니 동생들은 다 문과다. 혈액형도 같은 A형이고 다 어학 전공자들이다. 이상하게 늘 나만 달랐다. 이과에 혈액형은 AB형이다. 늘 살짝 비껴있는 느낌이다. 나도 글을 써 봐야지 하면서 따라가지만, 턱없이 부족한 것을 나도 느낀다. 그래도 쓰고 싶다.
가끔 모이면 시조 백수 놀이 덕분에 우리가 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된 걸까 하면서 얘기 나누기도 했다. 물론 남동생도 하나 있지만 서울 아가씨와 결혼하고 나서 우리랑 잘 섞이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자매들만 모이게 된다. 더 잘 통하고 어렸을 적 도토리 키재기 시절의 얘기도 나누며 어렸을 때보다 더 끈끈해지는 것 같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여자 다섯 명이 모여서 잘 먹고 잘 놀다 돌아온다. 엄마의 카드도 좋았지만, 이과였던 아버지가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말씀하셔서 두 분의 영향이 적절했던 것 같다. 빛바랜 카드는 언니가 갖고 싶다고 가져갔다. 나도 갖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하진 않았다. 대신 내가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아이들이 결혼하지 않았다. 엄마처럼 재미난 게임을 남겨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커서도 생각날 수 있게 재마 난 게임이 뭐가 있을까, 오일의 향기를 알아맞히는 놀이를 할까 하며 혼자 웃는다. 향기를 기억하는 아이들이, 언젠가 나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