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안나 Sep 20. 2021

여기 앉아있어(국제결혼 이야기5)

망한 요리를 대하는 남편의 태도

 주말에 닭도리탕을 만들었다. 한번 만들어서 수요일까지 저녁 안 만들고 버틸 심산으로 한솥 가득. 그런데 왠지 맛이 없다. 감자는 너무 익었고, 매운 고춧가루라 조금만 넣었더니 색도 안 예쁘고 맛도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닭도리탕을 아주 좋아하는 남편은 내가 요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아주 들떠있었는데 그다지 맛있다고 않는걸 먹이려니 미안했다. 그래도 남편은 항상 그렇듯이 맛있다며, 그냥 너의 기준치가 너무 높은 것뿐이라는 말을 하며 그릇을 싹싹 비웠다.


 다음날 저녁, 보관 용기에 덜어둔 닭도리탕을 데워먹으라고 꺼내 주고 내 방에 들어왔다. 원래 남편이 밥 먹을 때 같이 식탁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은 할 일이 있기도 해서 내 방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남편이 문 틈으로 얼굴을 빼꼼 내민다.


'닭도리탕 하루 지나니까 더 맛있어!'

그러고는 거실로 다시 돌아간다.

그걸 굳이 밥 먹다 말다 이야기하러 오다니. 나도 거실로 나갔다.


'나 없으니까 외로웠어?'

'응, 여기 앉아 ' 남편은 식탁 맞은편을 두드리며 말했다.


식탁 맞은편에 앉으니 다시 한번 닭도리탕이 너무 맛있다며 나를 추켜세운다.

그리고는 밥을 먹으면서 조잘조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있잖아, 나 오늘 회사에서, 내가 엑셀을 좀 하잖아? 그래서 지금 회사에서 새로 계산식을 만들 게 있는데 어려워.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할 수 있을 것 같긴 해.’


 나는 성공한 요리를 내놓을 때는 꼭 남편 맞은편에 앉아서 자신에 찬 표정으로 남편의 감상을 요구한다. 어쩌면 나는 그냘 실패한 요리에 대해 자신이 없어서 내 방으로 숨어들어있었고, 남편은 그걸 눈치채고 날 불러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남편은 지금 내가 앞에 있어서 행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국제결혼 이야기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