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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Jan 09. 2019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여전히 어릴 적 집에 살고 있다

옛집 그리고 어머니 꿈

(*12회 차 ‘고양이는 결코 자기 영혼을 주인에게 팔지 않는다’- M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12회 차의 꿈: 옛날 살던 집 뒤쪽에서 갑자기 뭐가 튀어나와 놀라서 난 화가 난 거 같다. 그것이 새끼 고양이었나 보다. 작은 고양이를 잡아서 안 보이는 작은 포대 자루에 넣고 각목 같은 것으로 막 때려죽이려고 한다. 고양이의 머리가 짓이겨지는 느낌이다. 이제 죽었거니 여기고 앞마당에 묻으려고 삽을 찾는다. 어머니에게 삽 좀 찾아달라고 하니 빨리 못 알아들은 건지 바쁜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포대 자루에서 꿈틀꿈틀 머리가 움직인다. 안 죽은 것 같다. 더는 어떻게 못 하겠고 그냥 빨리 묻어버려야지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꿈에서는 죽어가는 고양이를 ’그냥 빨리 묻어버려야지 마음 편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죽지도 않은 고양이를 빨리 묻어버리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옛날 살던 집, 그리고 어머니를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시 한 편 감상할까요? 

떠나온 지 마흔 해가 넘었는데도 산비알 무허가촌에 산다는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입니다.      


떠나온 지 마흔 해가 넘었어도 

나는 지금도 산비알 무허가촌에서 산다 

수돗물을 받으러 새벽 비탈길을 종종걸음 치는 

가난한 아내와 함께 부엌이 따로 없는 사글셋방에 산다 

문을 열면 봉당이자 바로 골목길이고 

간밤에 취객들이 토해놓은 오물로 신발이 더럽다 

등교하는 학생들 틈에 섞여 화장실 앞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잠에서 깬다 

지금도 꿈속에서는 벼랑에 달린 달개방에 산다 

연탄불에 구운 노가리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는 

골목 끝 잔술집 여주인은 한쪽 눈이 멀고 

삼 분의 일은 검열로 찢겨나간 외국 잡지에서 

체 게바라와 마오를 발견하고 들떠서 

떠들다 보면 그것도 꿈이다 

지금도 밤늦게 술주정 소리가 끊이지 않는 

어수선한 달동네에 산다 

전기도 없이 흐린 촛불 밑에서 

동네 봉제 공장에서 얻어온 옷가지에 단추를 다는 

가난한 아내의 기침 소리 속에 산다 

도시락을 싸며 가난한 자기보다 더 가난한 내가 불쌍해 

눈에 그렁그렁 고인 아내의 눈물과 더불어 산다 

    

세상은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뀌었는데도 

어쩌면 꿈만 아니고 생시에도

번지가 없어 마을 사람들이 멋대로 붙인 

서대문구 홍은동 산 일번지 

떠나온 지 마흔 해가 넘었어도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지금도 이 번지에 산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도 바뀌고 살던 집도 바뀝니다. 지금 우리는 옛날과는 다른 집에서 살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 안에는 옛날의 허름한 무허가촌에서 삽니다. 시인만이 아니라 우리 또한 여전히 어릴 적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자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매일 밤 꾸는 꿈에서요.    

 

M의 꿈에도 자신이 어릴 때 살던 옛날 집이 자주 나옵니다. 우리가 살던 어릴 적 집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자신과 가족이 함께 살아온 역사가 있습니다. 그곳은 우리의 숨결과 손때가 묻은 곳입니다. 그리고 그 집은 부모님의 집이죠. 아이에게 부모님의 집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되고 태어나서 성장할 때까지, 세상 전부였습니다. 아이는 부모와 매일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숨 쉬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부모 삶의 모든 방식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해면처럼 흡수해 버립니다.      


여러분은 어릴 적 살던 집을 떠올려 볼 때, 가장 먼저 드는 느낌은 무엇인가요? 그 집의 주인이었던 부모님은, 한 가정을 어떻게 꾸려왔나요? 부모님의 삶의 태도, 방식, 부모님이 부부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현재 자신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 부모님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휴일도 없이 일하셨습니다. 그러나 늘 가난하게 사셨다고 합시다. 그럼 자신 또한 ’열심히 일해도 돈 벌기 힘들구나!’ 라는 내적 관념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관념은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기도 전에 이미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사신대로 똑같이 열심히 일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사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미 어린 시절 궁핍함을 겪었기에 마음은 결핍으로 가득합니다. 결핍은 더더욱 열심히 일해서 만회하려고 하지만 자신의 보이지 않는 관념대로 되는 것이죠. 즉 열심히 일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돈은 벌지 못하거나, 돈은 아주 잘 버는데 모으지 못하는 구조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와 반대의 모습도 있습니다. 열심히 해도 가난했다면, 열심히 살 필요 없다며 대충 벌어먹고사는 방식으로 살 수 있습니다. 결국은 부모처럼 살게 된다는 겁니다. 

심리학에도 이런 예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었습니다. 두 아들은 자라면서 ‘나는 절대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한 아들은 아빠와 똑같이 알코올 중독자가 됩니다. 또 다른 아들은 결심한 대로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고 산다는 것이죠. 겉으로는 아빠와는 정반대의 삶을 산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환경은 자신의 아버지처럼 황폐하게 살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M의 꿈에는 어머니가 나왔습니다. 꿈에 나오는 어머니는 실제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어떠하다’라는 자신이 살아오며 경험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말합니다. 어머니는 꿈이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주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제대로 자신을 알게 되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자신이 어떤 면에서 어머니처럼 살고 있는지 찾아봐야 합니다. 


간단하게 해 볼 수 있는 <거울 작업>을 소개하겠습니다. (‘며느리 사표’ 4장, 거울 작업)       

1. ‘어머니는 어떠한 분이다’라는 어머니의 특징을 적어봅니다. (세 가지 정도) 

2. 주어를 ‘어머니’에서 ‘나’로 바꿉니다.

3. 나는 언제 이런 모습이 나오는지 찾아봅니다. 


(거울 작업, 연습해볼까요? 여러분은 꿈에 어머니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어머니로 해보실 수 있습니다. 혹은 꿈에 나온 사람으로 해보셔도 좋고요)


M은 어머니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참고 희생적인 분이다’라고 하셨습니다.

1. 어머니는 참고 희생적이다. 

2. 나는 참고 희생적이다.

3. 현실에서 나는 언제, 누구에게, 참고 희생적인 모습으로 행동하는가?    

      



M의 어머니는 맏며느리로서 시부모님과 시가 형제들 그리고 자식들에게까지 헌신하며 평생을 사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늘 가슴에 응어리를 갖고 계셨으며 가끔 가슴속에서 주먹만 한 덩어리가 돌아다닌다고 표현하셨답니다. 말 그대로 ‘한’을 품고 사셨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응어리는 앞마당에 묻으려고 했던 가슴속의 무덤이 아닐까요? 이 무덤은 어머니뿐 아니라 M 자신의 무덤이기도 합니다. 또한, 참고 희생하며 살아온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의 무덤이기도 합니다.    

  

M은 자신 안에 올라오는 건강한 화를 때려죽이고 빨리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괴롭기 때문입니다. 화를 내는 것은 ’좋은 사람‘이란 기준에 맞지 않으니까요. 화날 때마다 빨리 그 화를 죽여서 묻고 나면 편안해질 거라 여기는 것입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좋은 며느리, 좋은 어머니, 좋은 아내는 어떠해야 한다는 신념이 더 중요한 가치였을 겁니다. 그 가치를 위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자신의 본능(고양이)을 죽이고 가슴에 묻었습니다. 처음엔 힘들고 아프지만, 점차 둔감해져서 웬만한 일에도 그다지 괴롭지 않게 됩니다. 그렇지만 몸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게 되는 것이죠.  (M의 어머니는 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M은 꿈에 나오는 옛집과 어머니를 통해서 현재의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은 어머니와는 전혀 다르게 산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자신도 '좋은 어머니', '사랑스러운 아내'로 사는 것이 중요한 가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도 어머니처럼 가슴속의 무덤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거죠. 또한 M은 자신이 화가 났을 때, 어떤 방식으로 화를 처리하는지 보게 되었습니다. 빨리 죽여 묻어버리려고 하는 것, 그것은 자신의 방식이 아닌 옛집에 살던 어머니의 방식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너무 잔인합니다. 이제는 어머니의 방법인 아닌 자신만의 방법, 서로에게 평화적인 방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앞글에서) 좋은 사람으로 사는 것은 자신에게는 잔인한 사람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싹수없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좋은 사람이라 여기는 내가, 진짜 나인가?’ 

'좋은 사람으로 살 때, 내가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

‘딸과의 관계에서 진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들을 해 본다면 자신에게 맞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화를 평화적으로 표현하는 방법 (비폭력 대화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M이 힘들어했던 딸 행동 중, '엄마가 말을 걸고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아' 화가 났던 상황입니다.


1. 관찰 (관찰은 본 것은 본 대로 들은 것은 들은 대로, 즉 있는 그대로 상황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엄마가 너에게 말을 걸고 물어보는데 대답하지 않을 때.”

2. 느낌 (딸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즉 관찰로 봤을 때 엄마 자신의 느낌): 

서운해

3. 욕구 (위의 상황에서 엄마가 딸에게 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엄마는 너에게 말을 걸거나 물어볼 때 대답을 듣고 싶거든넌 어떻게 생각해?”     


-> 엄마가 너에게 물어보는데 대답하지 않을 때서운해엄마가 물어볼 때 너의 대답이 듣고 싶거든...... 넌 어떻게 생각해?”     


이런 표현은 자신에게 잔인하지 않고 딸에게도 비난이나 공격하지 않으면서 대화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엄마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또 딸의 처지에서 표현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이런 평화적인 표현이 어쩌면 서로의 마음이 다시 연결되거나 어떤 오해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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