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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May 06. 2020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오십에 작가가 되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쓴다면 아마 몇 권은 될 게다”     

9남매의 맏며느리로 살아오신 시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몇 번의 시도가 있었던 것 같다. 오래전 문갑 속 깊이 숨겨놓은 옛 노트에서 시어머니가 쓰다만 글을 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머니는 왜 한 권도 채우지 못하셨을까?      


사람들은 한 번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결혼하고 20년이 넘어가면서 어느덧 나도 시어머니처럼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은 예술가들처럼 타고나는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글을 쓰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했다. 어떤 이유로든 글 쓰는 삶은 나와는 먼 세상 이야기였다.      


사실 고백하자면 부모교육 강사로 활동했을 때 동료 선생님들과 부모 교육서를 낸 적이 있었다. 당시 책을 내고 느낀 것은 ‘다시는 쓰지 말자’였다.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고 여겼다.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쓴다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가장 힘든 것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그것을 글로 표현해내는 것이었다. 말과 글이 다름을 그때 알았다.      


그로부터 2년 후 마치 지상과제처럼 글을 써야 한다는 강한 울림을 받게 된다. 2012년 여름 꿈 워크숍이었다. 꿈 선생님이신 제러미는 나의 꿈을 듣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이야기를 글로 쓰라” 

강한 저항과 동시에 강한 흥분으로 심장이 심하게 쿵쾅거렸다.      


이후 내 이야기를 써 보았지만 역시 글쓰기는 어려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안 쓰고 있자니 해야 할 숙제를 미루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냥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시간만 보내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글쓰기를 배워야 제대로 쓸 것 같아 문화센터를 기웃거렸다. 그러나 글을 쓰려고 갔는데 오히려 쓸 의욕이 꺾였다. 난 생짜 초보인데 오랫동안 써왔던 사람들이 많았고 10년 넘게 글을 써온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내가 본 그들은 수준급의 글을 쓰고 있었지만, 아직 책 한 권 낸 적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완성도를 갖춰야 글로서의 자격을 갖추는 건지 어렵고도 멀게만 느껴졌다. 글쓰기를 배우러 다닐수록 한없이 초라해지는 나의 글은 꺼내 볼 용기를 잃고 그만두었다. 다시 혼자 쓰기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 두세 꼭지를 쓰는 데 3년이 걸렸다. 하마터면 나도 노트 한 권 채워보지 못하고 장롱 속 깊은 곳에 내 이야기는 잠자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 이야기를 글로 기록하고 싶다’라는 열망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보잘것없어 보이는 내 글을 두 눈 뜨고 보면서 견뎌내는 시간이 필요했다. 곰이 사람으로 재탄생하려면 100일의 마늘과 쑥만 먹어야 하듯 글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100일의 오글거리는 글을 견뎌내야 했다. 


마침 한 문화센터에서 백일 글쓰기가 있었다. 헬스장에서 근육을 단련하듯 사람들과 함께 글쓰기 근육 만들기 100일을 견뎌낼 수 있었다. 특별한 주제 없이 무엇이든 ‘매일 쓰기’가 중요했다. 중간에 몇 번 빠지기는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매일 글을 써보는 연습이 되었다. 


100일 쓰기는 나의 배설 작업과 같다. 그래서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한다. 나는 견뎌내는 시기의 글을 ‘종잣글’ ‘마중 글’이라 하고 싶다. 아무것도 없는 빈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은 처음엔 공포와 같다.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써 놓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통해 글로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 과정은 내 똥을 황금으로 만드는 연금술 작업이라고 본다. 처음부터 황금 같은 글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100일 쓰기를 끝냈지만 나는 두 번을 더 해서 300일을 쓰고 나서야 겨우 A4 용지 한 장을 쓸 수 있었다. 글쓰기를 배운다며 여기저기 기웃거릴 때는 글 한 줄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세 차례의 100일 쓰기 덕에 글쓰기 기본 근육이 만들어졌다.     


그즈음 나는 집을 나와 1년 정도 혼자 살아보게 된 일이 있었다. 나에게 온전히 글을 쓸 시간이 주어졌다. 나의 결혼생활에 국한해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27년의 결혼생활이 잘 기억나지 않아 생각나는 대로 썼다.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순서 없이 쓰다 보니 이야기들이 감자 캐듯 올라오며 점차 세밀해졌다. 초고를 2달 만에 완성했다. 순서와 흐름을 배치하고 목차를 만들고 부족한 내용과 불필요한 것들 넣고 빼서 어느 정도 한 권 분량의 얼개를 만들었다. 완성도 높은 세 꼭지를 출판사에 투고할 수 있었다. 


나의 첫 책 <며느리 사표>가 출간된 것은 나이 오십이 넘어서였다. 사람들은 나를 작가라고 부른다. 아직은 내게 어색한 옷이지만 오십 너머 난 작가가 되었다. 최근 두 번째 책 <결혼 뒤에 오는 것들>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글을 쓰고 나니 알게 된 것은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단 꾸준히 견뎌주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글쓰기는 능력보다 습관이었다. 수영이나 자전거를 배우듯 매일 꾸준한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오십은 작가가 되기에 이보다 좋을 때는 없다. 오십이 되면 시간 부자, 경험 부자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구든 책 한 권 분량의 자신만의 이야기들이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살아온 경험은 삶 전체를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연륜도 생긴다. 이제는 모든 역할에서 벗어나 글을 쓰기에 어떤 장애도 없다.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서 담담히 마음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나는 두 번째 인생 기를 시작하며 어떤 이야기들이 또 내 안에서 나오게 될지 궁금해진다. 글 쓰는 나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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