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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May 25. 2020

책 <결혼 뒤에 오는 것들>을 내며

결혼한 여성들을 위한 이야기

  

옛날의 왕자와 같이

유리관 속에 춤추면 살 줄 믿고

일하고 공부하고 사랑하면

재미나게 살 수 있다기에

미덥지 않는 세상에 살아왔었다.

지금 이 뵈는 듯 마는 듯한 설움 속에

생장(生葬)되는 이 답답함을 어찌하랴

미련한 나! 미련한 나!” 

 - 김명순 (1896-1951), <유리관 속에> 중에서     



결혼하면 재미나고 행복하게 살 줄 알았던 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이란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시의 표현처럼 ‘생장(生葬)되는 이 답답함’을 어찌할 줄 몰랐으니까요. 

‘며느리 사표’를 내고 많은 며느리를 만나면서 놀랍게도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여성들이 결혼 전에는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왔지만 결혼하는 순간 삶은 소외되고 아주 개별적인 존재가 됩니다. 결혼 뒤의 불합리한 삶은 공론화되기보다는 개인의 행불행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여성들은 각자의 가정에서 나만 힘들게 사는 것 같지만 답답함을 호소할 수 없었습니다. <며느리 사표>는 제목 자체만으로도 며느리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용기를 낼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며느리는 <며느리 사표>를 마치 금서처럼 남편 몰래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 읽었을 때는 용기를 내어 남편과 시어머니가 보이는데 책을 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며느리 사표는 엄두도 안 나지만, 그런 마음을 흘리기만 하는 것도 용기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이고도 부끄러운 나의 개인사가 누구에게는 작은 용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두 번째 이야기를 펴낼 수 있었습니다. 나는 결혼의 희망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선택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을 선택했듯이 며느리도 아내 역할도 선택할 수 있고 엄마 역할도 어느 시점이 되면 졸업할 수 있습니다. 모든 역할에 대한 시작과 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랑이 남편을 따르고 시부모를 따르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랑이 아닌 의존이었고 내 삶의 운전대를 넘겨준 격이었습니다. 이제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여자에게만 들이대는 희생을 접고 내 삶의 운전대를 잡아야 합니다. 자기 삶의 운전을 다시 시작하며 스스로의 힘을 일깨우고 원하는 길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진정 자신이 바라는 결혼 생활은 무엇인지 질문하며 나답게 사는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나 한 개인이 잘 사는 길이 모두가 잘 사는 것임을 잊지 않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책은 결혼한 여성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와 예비시부모가 읽기를 바랍니다. 결혼이란 지극히 현실 속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삶에서 조금의 시행착오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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