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허물을 벗는다.
몇 번째 허물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른들은 틈만 나면 날 혼냈고,
지금 내 앞에 서서 날 내려보는 여자는 내가 생긴 형태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것 같다.
혹시 내가 당신을 성가시게 했나요.
요구받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다 해주지는 않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양파도 좋아한다, 사랑한다 해야 쑥쑥 잘 자란다.
냄새나서 싫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썩는다.
그래서 내 안이 썩은 걸까.
사과를 먹은 적이 있다.
반쪽을 쪼개었는데
벌레가 그 달달한 사과 깊게까지 갉아먹었더라.
내 마음이 딱 그 꼴인 거야.
연하고 부드러울수록 벌레들이 기어들어오기 쉬운 환경인 것이다.
애석하게도 사과 따위에 백혈구 같은 보호막은 없는 것이다.
앞에서는 나를 보호하려고 그들의 말엔 하나도 타격을 받지 않는 듯하였지만
사실 그 뒤로 나는 그들이 말해준 말을 꼬깃꼬깃 접어 마음속에 버리곤 하였다.
그리고 적당한 시기가 되면 허물을 벗어
그들이 성가시지 않도록 새로운 내가 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말해주면
그저 숨어버렸다. 몇 달씩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숨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동물들이 자신을 보호하듯이.
그 말을 할 때쯤 나는 그의 한쪽 팔을 내 두 팔로 감싸 안고 가슴이 그의 팔에 닿게 몸을 밀착시켰다.
"매미야?"
매미. 그러고 보니 참 매미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땅 속에서 7년 정도를 보내다가 2주 정도만 사는 매미.
그 찬란한 빛을 2주라도 볼 수 있다면,
모든 허물을 벗고 과거도 없이, 미래도 없이
가벼운 홀홀한 몸으로 14일만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낼 수 있다면,
내 안은 충만함으로 가득 찰 텐데 말이야. 생각했었는데.
내 안에 오랫동안 물이 고여
습하고 햇볕도 잘 들지 않아 곰팡이가 피기 직전이었던
그럴 때가 분명 있었는데.
그렇지만 그는 이런 내 과거를 전혀 모른다.
살아오며 수도 없이 허물을 벗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