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단 Dec 04. 2021

오해

<5> 세상을 닮은 기술, 기술을 닮은 세상

 얼마 전 일이다.

"아침부터 긴장하고 왔더니 너무 피곤하다"

"우리 사이에 무슨 긴장을 하고 그래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아침에 김장하고 왔다니까 뭔 소리야"


어느 날은 라디오 치킨 광고를 듣는데 내용이 좀 수상쩍다.

이사하다 생긴 마루 치킨 ~ 걱정 없죠

아이들이 장난치다 생긴 마루 치킨도 케어해준데요~

얘기치 못 한 치킨 문맥에 당황했지만 곧 '마루 찍힘'을 케어해준다는 광고임을 깨닫고 실소.


 인생 원박 투데이 사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랴. 때론 의도와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메시지가 전달되곤 한다. 오해는 언제, 왜 생길까. 필연적으로 한 명 이상의 화자, 청가 존재할 때  발생한다. 입술 끝을 떠난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기까지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만큼 공기라는 매질을 거쳐야 하며 무사히 도착하더라도 청자의 스키마 필터를 거쳐 최종 텍스트가 생성된다. 이 과정에서 정보가 훼손, 재가공되며 오해가 생긴다. 그러니 "우유 사 와, 계란 있으면 6개 사 오고"라는 말에 우유 6개 사온 프로그래머를 무작정 탓해선 안된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이 말은 계란 유무에 따라 우유 개수가 달라지는 명령일 테니.


 두 사람 간에도 오해가 생기는데 수천만, 수억 개 단말기간 통신에서는 이러한 오해(데이터 훼손)가 발생하지 않을까? 당연히 발생한다. 제아무리 강력한 신호라도 수백~수만 km를  날아가는 동안 어떤 간섭을 받을지 모른다. 넷플릭스 스트리밍 중이라면 bit- flip (0이었던 데이터가 1로 또는 그 반대로 뒤바뀌는 현상)은 그저 화소 몇 개 깨지고 말겠지만 금융 데이터 라면 수십억 이상의 돈이 증발할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욘 없다. 실제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통신 간 데이터 훼손이 발생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End-to-End data protection (E2E) 기술 덕분이다.


 E2E가 데이터 무결성을 보장해주는 원리, 즉 송신된 정보가 한 비트도 훼손되지 않고 수신 측에 전달되도록 하는 기술의 핵심은 패리티 정보라고 하는 메타 데이터 (데이터의 데이터)다. 데이터 전송 시 함께 실리는 이 메타 데이터를 통해 수신 측은 송신된 데이터의 훼손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28 byte data 전송 시 송신부는 미리 약속된 알고리즘으로 생성된 패리티 정보를 포함 한 130 byte (128 byte data + 2 byte parity )를  생성한다. 수신 측은 130 byte를 전달받아 128 byte data에 대한 2 byte parity  생성 후 수신된 parity와 비교한다. 만약 두 값이 한 비트라도 다르면 통신 중 데이터가 훼손되었다고 판단하여 송신부에 데이터 재전송을 요청한다.


 E2E 덕분에 우리는 계좌 잔고가 엉뚱하게 바뀔 거라는 걱정 없이 온라인 금융 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전자 통신 단말 사이에서는 오해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기술을 개발한 우리 인간들은 여전히 오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또 오해영처럼 오해로부터 로맨스가 시작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정 반대. 오해로 비롯된 감정은 이를 풀고자 하는 의지마저 꺾어버리며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도 E2E 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방법을 알고 있다. 내가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의도한 것인지 한 번 더 확인해보는 것이다. 그저 한 번의 질문이지만 그 효과는 이미 기술적으로 입증되었다. 알아도 하지 못하는 게 사람 일이라지만 편안함을 버리고 노력해 보자. 오해와 이해는 한 끗 차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벌써 한 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