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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Oct 23. 2021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날

  그런 날 글을 쓴다. 무언가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내가 만족스러운 날. 이렇다 할 묘안이 떠오르지 않지만 기분이 좋은 날. 어떠한 상황도 생경하지 않은 날.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 가만히 놔두고 싶은 날. 어쩌면 특별하지 않은 순간들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일상은 더없이 글쓰기 좋은 날이다.


  언제부턴가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면 어제보다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 모든 면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는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중독성 강한 습관이 되기 쉬운가 보다. 마음이 빛보다 빠르다는 말이 있다. 글을 쓴다는 건 때때로 내 마음보다 더 앞서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조차도 헤매던 내 마음이 손가락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글로 표현되어 있다.


  어떤 장르의 글이라도 분명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존재해야만 쓰는 맛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쓰는 맛을 가장 먼저 음미하는 게 나였을 때 오랜 글쓰기가 가능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대로 좋음을 만끽하며 글을 쓸 땐 나 자신이 가장 기분이 좋은데, 어느새 둘러보면 누군가도 내 글을 보면서 작은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글을 쓰는 나와 내 글을 읽는 당신의 감정이 적당히 뒤섞이며 서로가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는 것 같다.


  에세이를 쓴다는 건 그 안에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는 일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건 지금 이대로도 좋다는 말이다. 지금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둬도 좋을 만큼 나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을 때 내 글을 읽는 당신도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마음이 자라기 위해 글을 쓴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진한 아메리카노가 담긴 머그잔을 들며 노트북을 두드릴 때. 글을 쓰다가 창에 비친 햇살이 좋아서 커튼을 젖힐 때. 이따금씩 그런 찰나의 순간에 충만함이 스며든다. 날이 좋거나 좋지 않은 날. 컨디션이 유난히 좋거나 나쁜 날. 때로는 글이 이상할 만큼 잘 써지거나 한 문장도 떠오르지 않는 날. 그 순간을 모두 끌어안고 그저 글을 쓴다는 것에 집중한다. 그 순간들이 켜켜이 쌓인 어느 날.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고요한 일상 속에서 기다린다.


  글을 쓰는 일은 주변을 관찰하는 습관을 기르기에 좋다. 관찰이 애정으로 변하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럴 때마다 순간이 작은 글이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은 시선의 단상을 기록하는 일. 이런 것들이 모여 작은 나를 조금 더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준다.


  기록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을 사랑한다. 이것이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행위지만 혼자만의 세계에서 끼적이는 시선과 단상은 오해와 편견 그리고 단단한 고집을 만든다. 그렇기에 섬세한 시선과 단상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라도 당신과 더불어 호흡할 때 내 인생도 글도 빛이 나리라 믿는다. 내 글을 읽어주는 당신의 얼굴을 그리며 언제까지고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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