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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Aug 19. 2021

엄마의 손맛을 얼리다

<그렇게 엄마를 닮아간다> ep.5

  어릴 적엔 배가 살살 아프다가도 엄마가 배를 쓱쓱 문질러주면 배앓이가 쑥 내려가곤 했다. 나는 가끔 배탈이 나거나 속이 더부룩할 땐 엄마 앞에 누워서 배부터 내밀고 봤다. 이젠 서른이 넘은 과년한 딸인데도 몸이 아프면 엄마 무릎을 베고 벌러덩 눕고 본다. 정말 엄마 손엔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발라져 있는 건지 손길 몇 번에 배가 편안해지니 신기할 노릇이다.


  엄마의 손길보다 더 기막힌 특효약은 아마도 엄마의 밥상일 것이다. 엄마의 밥상은 약도 없는 병도 낫게 해주는 마법의 맛이다. 사회초년생 때 집을 떠나 일산 MBC 앞에서 자취한 적이 있었다. 언제나 입맛 좋고 아플수록 잘 챙겨 먹는 내가 끼니때마다 밥을 두 그릇씩 먹어도 자꾸만 배가 고팠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게 신기해서 엄마와 통화를 할 때면 그 말부터 꺼냈다.


  “엄마. 내가 삼겹살 한 근을 혼자 구워 먹었는데도 배가 안 불러. 이상하지?”

  “그거 마음이 허해서 그런 거야. 어린 게 집 나가 회사에선 눈칫밥 먹고 사니 허하지.”


  가을이라 살이 찌려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던 모양이었다. 엄마 말대로 나는 마음이 허한 게 맞았다. 첫 자취생활이라 야무지게 살아보겠노라 혼자 마트에서 장도 보고 일산 호수공원도 씩씩하게 걷곤 했었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고 마음이 헛헛한 건 매일이 좌충우돌인 사회초년생이라 그랬을 터였다. 주말마다 캐리어를 끌고 부모님 집으로 오는 날이면 고속버스에서부터 전화기가 바쁘게 울려댔다. “도착하기 십 분 전에 꼭 엄마한테 전화해라.” 알았단 내 말에도 엄마는 재차 확인 전화를 했다. “불쑥 오지 말고 버스에서 내려서 택시 탈 때 꼭 전화하라고!” 


  내가 캐리어 바퀴를 요란하게 굴리며 현관문을 열어젖히면 식탁에선 된장찌개 끓는 소리가 들렸다. 뚝배기에서 야단스럽게 보글대는 찌개 소리와 비슬이 왔냐는 엄마의 목소리가 겹칠 때면 마음이 뭉클해지곤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뜨끈한 된장찌개를 먹이기 위해서 엄마는 시계를 보며 국을 데웠을 것이다. 우리 딸 밥부터 먹으라는 엄마의 그 한마디. 말 한마디에 살얼음판 같은 회사 생활의 압박감이 한여름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내가 집을 가는 날이면 엄마는 김장김치 말고 새로 담근 겉절이를 밥상에 내놓았다. 두부를 으깨어 간 돼지고기를 섞고 야채를 다져서 수제 동그랑땡을 부쳤다. 전날 밤 미리 만든 잡채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달군 팬에 달달 볶아서 통깨를 뿌려주는 사람. 그러면서도 매번 “차린 게 없어서 어떡하니~”라고 추임새를 넣는 사람. 엄마의 밥상은 늘 온갖 반찬으로 가득하지만 매번 차린 게 하나도 없다는 이상한 밥상이기도 하다.  


  몇 해 전. 이렇게나 엄마 밥상의 힘을 아는 내가 회사 동료 언니의 말을 듣고 엄마의 손맛이 새삼 아리게 다가온 적이 있었다. 인스턴트만 먹는 언니의 건강이 걱정돼서 생선이 구워지는 소리와 함께 잔소리를 한 솥단지만큼 퍼붓던 날이었다. 치익, 치익. 철판 위에서 꽁치와 고등어가 쪼그라들며 흰 살을 드러내니 고소한 향이 한껏 퍼졌다. 나는 동료 언니의 공깃밥 위에 젓가락으로 고등어 한 점을 잘라 올리면서 말했다.


  “언니 고향이 강릉이랬지? 멀어서 엄마 밥은 자주 못 먹더라도 뭐라도 해 먹고살아. 바닷가 음식 그리우면 이렇게 생선이라도 구워 먹으면 좀 좋아? 엄마한테 물 좋은 생선 좀 보내달라고 부탁해도 되잖아.”


  회식 때 맥주 한 잔을 못 마시는 언니가 갑자기 식당 이모를 더니 여기 소주 한 병만을 외쳤다. 소주 뚜껑을 단번에 따더니 한 잔을 따라서 호로록 마신다. 나는 그 와중에도 계속 잔소리를 했다. “언니. 내가 홈쇼핑에서 진공 포장된 자반고등어를 샀거든. 내일 회사에 반절 가져갈 테니깐 냉동실에 넣었다가 하나씩 꺼내서 구워 먹어." 언니는 소주가 쓴 건지 내 말이 쓴 건지 인상을 잔뜩 찡그리더니 꽁치를 한 점 크게 베어 먹는다.


  사실 본인의 엄마가 2년 전 루게릭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고백을 했다. 그래서 엄마의 맛이 가득한 바닷가 재료만 보면 아직도 마음이 내려앉는다면서 또 소주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는 냉동실엔 엄마 김치랑 반찬이 가득 차서 자반고등어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나는 몇 해 전 돌아가셨다는 엄마의 김치랑 반찬이 왜 냉동실에 있냐고 묻기도 전에 언니가 말을 이었다.


  “엄마 김치. 엄마 손맛. 엄마 반찬을 다신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서글퍼지더라? 그래서 엄마가 담근 김장김치랑 엄마 밑반찬들을 무작정 얼려버렸어.”


  그날 밤. 생선구이 집에서 엄마의 마지막 반찬을 냉동실에 얼려버린 언니의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순 없지만 온전히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엄마의 맛을 다시 느낄 수 없다는 건 세상 딸에게 정말 가혹한 일임을 알기에. 나중에 나도 엄마의 반찬이 그리운 날이 오게 된다면 엄마의 손맛이 담뿍 담긴 김치와 반찬을 냉동실에 얼리게 될까? 다시 먹을 수 없다는 건 바뀌지 않는 사실이겠지만 그럼에도 엄마의 손맛을 박제하고 싶은 애틋한 마음일 것이다.


  작년에 우리 집까지 김장 원정을 오신 외할머니가 담근 김치가 조금 싱겁게 된 것 같다고 엄마에게 말한 기억이 난다. 그런 말 할 거면 먹지 말라면서 수육에 싼 외할머니 김치를 아삭 베어 물던 엄마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엄마가 외할머니 손맛을 오래오래 느꼈으면 좋겠다.





※  <그렇게 엄마를 닮아간다>의 연재 글에는 엄마의 짧은 소감이 하단에 실립니다.

- 딸이 쓴 글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엄마가 딸에게 화답을 주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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