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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Sep 03. 202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승

<그렇게 엄마를 닮아간다> ep.7

  “이거 할머니 쓰면 어떨까?” 내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할 뿐 반응이 없자 엄마는 포장을 뜯지도 않은 파운데이션을 들고 안방 장롱으로 씩씩하게 걸어간다. 원목 장롱 안에서 택배 상자 하나를 꺼내더니 쏙 하고 파운데이션을 넣는다.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보자니 반쯤은 이해 가면서도 나머지 절반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엄마! 외삼촌이랑 숙모가 주말마다 할머니 백화점 데리고 가서 필요한 거 사준다잖아. 그리고 할머니는 화장품 줘봤자 다 썩히는걸 뭐 하러~” 내가 어디 좀 보자며 엄마를 비껴 세우고 택배 상자를 들쳐보자 엄마는 얘는 별 걸 다 본다면서 한소리 한다. 세상에나. 몇 달 전에 목주름을 걱정하는 엄마를 위해 탄력 크림을 사주면서 얻어온 크림 샘플들도 한가득 담겨있었다. 그뿐이랴. 이것저것 내가 엄마 쓰라고 챙겨준 립스틱이며 마스크 팩도 뽁뽁이 비닐로 꼼꼼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내가 택배 상자를 장롱 깊숙이 넣어놓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엄마가 분주하게 이 말 저 말을 늘어놓았다. “야야. 어차피 집에 내버려 두어 봤자 엄마도 다 못써. 내가 직장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화장을 얼마나 한다고.” 나는 이번만큼은 지나칠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도 엄마만큼은 아닐지라도 외할머니를 천사라고 부를 만큼 좋아하는 손녀딸인데. 그런 외할머니를 더 살뜰히 챙기는 엄마가 싫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래도 이렇게나 사소하고 자잘한 물건까지 할머니 몫으로 넘기는 엄마의 모습이 가끔은 보기 싫은 게 딸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다.


  행여나 남이 보면 괜스레 궁색해 보일까 싶기도 하고. 그런 게 아니더라도 내가 엄마에게 필요한 물건을 고심해서 고르고 골라 사준 건데 그게 할머니한테 쏙 가버리니깐 가끔은 서운한 마음이 든다. 이번엔 내 마음이 전달되어서일까. “왜~ 나 쓰라고 준 거 할머니한테 주니깐 서운해서 그래?”하며 엄마가 슬슬 내 눈치를 보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나는 그런 엄마를 등지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참 이상해. 엄마가 늙은 할머니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건데 어쩔 땐 싫더라고?” 말하며 천장을 봤다. 


  정말 그랬다. 얼마 전엔 택배기사님이 집으로 2리터짜리 생수를 잔뜩 내려놓고 간 적이 있었다. 우리 집은 정수기를 쓴 지 십 년이 넘어가는데 생수는 왜 배달시킨 걸까. 아빠와 나는 거실에서 택배기사님이 놓고 간 생수를 멀뚱하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엄마가 부스스한 머리를 급하게 쓸어 올리면서 하는 말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할머니 댁으로 배달시킨다는 게 주소지를 잘못 선택했다는 게 아닌가.…….


  그날 아빠는 그깟 생수 몇 푼이나 한다고 차라리 용돈을 더 챙겨드리라고 한소리를 했지만 나도 안다. 외할머니는 뼛속 깊이 자리 잡은 근검절약정신으로 물은 끓여먹어야 제 맛이고 가스 불에 주전자만 올리면 실컷 마시는 걸 왜 돈 주고 사 먹느냐고 할 분이란 걸 말이다. 절대 물을 사 먹을 우리 할머니가 아니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가 여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꼬부라진 허리를 연신 두들겨가며 가스불 앞에 서 있을 모습이 절로 그려졌을 터였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따라갈 수 없는 건 아마도 외할머니의 딸 사랑일 것이다. 외할머니는 평생 남에게 큰소리조차 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음이 비단결 같아서.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곰 같이 미련하고 착한 사람이라서. 평생 돈 한 푼 벌어온 적 없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좋은 세상 더 보지 못하고 가는 할아버지가 불쌍하다면서 울던 할머니였다. 


  기나긴 세월. 할아버지의 당뇨 후유증으로 수족이 되어주면서도 할아버지에게 좋은 소리 한 번 못 들었어도 괜찮다던 사람. 그러고도 때마다 네 남매에게 더 좋은 옷. 좋은 음식 먹이며 키우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그런 외할머니가 언짢아서 내게 버럭 하신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마저도 크게 내색하신 건 아닐지라도 말이다. 본인 딴에는 아마 엄청 성을 내신 걸지도 모르겠다.


  재작년에 엄마가 자궁근종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 할머니가 고향집에서 올라와서 엄마의 병실을 지켰는데 그날은 엄마가 두어 시간 넘게 수술을 했다. “야야, 너희 엄마 수술실에서 안 나온다.” 두 시간 오 분이 되어도 두 시간 십오 분이 되어도 엄마가 수술실 밖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게 할머니의 얘기였다. “할머니! 괜찮을 거야. 수술하다 보면 조금 늦어질 수도 있어요. 제가 이따 전화드릴게요.” 회사에서 회의 중이었던지라 나는 할머니의 말에 조금은 건성으로 대답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다급하게 전화를 끊어야 했다.


  부랴부랴 퇴근을 하고 엄마가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향하는 길. 아까 회의시간에 걸려왔던 할머니의 전화 목소리가 떠올랐다. 워낙 침착하신 분이지만 목소리에서 약간의 떨림을 느꼈던 게 내심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할머니. 아까 회의 중이라서 정신없었어요. 엄마랑 저녁은 드셨어?” 하는데 전화기 너머로 할머니가 별안간 뿔난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나는 너희 엄마 잘못될까 봐 손발이 달달 떨리고 밤새 기도하고 한숨도 못 잤는데. 그랬는데.…….” 할머니는 약속된 수술시간에서 일 분 씩 지날 때마다 사지가 떨리고 침이 바짝바짝 말랐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먹고사는 게 바빠서 엄마의 수술이 잘 되길 바랄 뿐 별다르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달랐다. 병실에서도 연신 본인이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아파줄 수도 없고 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때 할머니의 표정은 정말 대신 아파줄 수 있었다면 엄마의 아픔이 모두 자신에게 오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 같았다. 


  명절 때마다 외할머니 집에 가면 할머니는 자꾸 치약이나 설탕, 간장 같은 걸 베란다 창고에서 꺼내와서 엄마에게 건네준다. 그런 사소한 생필품은 우리 집에도 가득하지만 엄마는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준 치약으로 이를 닦으면 더 개운하다면서 너스레를 떤다. 서로의 기념일에 현금 봉투를 주고받는 모녀지간이지만 그보다는 생필품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도 같다. 만날 때마다 치약이나 비누 심지어 인스턴트 라면 같은 것도 나눠 가진다. 


https://bit.ly/3gRviaA


  심지어 할머니는 명절 때 손자 손녀까지 온 가족이 모여도 홀로 주방에 쪼그리고 앉아 기어코 앞마당에서 기른 대파를 전부 다듬어서 집에 갈 때 엄마에게 주곤 하셨다. 고작 대파 다듬은 거 값어치로 따지자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지라도 자신의 딸이 하나라도 살림에 손이 덜 갔으면 하는 할머니의 마음이겠지 싶다.  오늘도 주방 식탁에 앉아 할머니와 통화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 그래야지 내가 엄마~하고 부르면서 살지. 나이 드니깐 살면 살수록 힘들 땐 엄마뿐이더라.”


  어느새 나도 그런 엄마의 모습을 점점 닮아간다. 엄마 딸 사이에 사소하게 물건을 나눠 갖는 건 정을 주고받는 일이다. 이렇게 살뜰하게 엄마를 챙겨주는 딸. 이렇게 나를 만년 어린아이를 보듯 걱정해주는 엄마가 있노라고. 그래서 세상살이가 참 든든하다고 서로에게 확인시켜주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집에 쌓이고 쌓인 치약일지라도 치약 하나라도 딸에게 주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 화장품 샘플까지도 할머니에게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그건 아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승이지 않을까.





※  <그렇게 엄마를 닮아간다>의 연재 글에는 엄마의 짧은 소감이 하단에 실립니다.

- 딸이 쓴 글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엄마가 딸에게 화답을 주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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