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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Dec 10. 2021

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 박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정호승 <햇살에게> 중간 어디쯤

  안녕하세요. 누군가에겐 작은 숫자일지 모르겠지만 제겐 너무 귀한 구독자 여러분. 혹은 제 브런치를 구독해놨지만 저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그래도 고마운 저의 구독자 여러분.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브런치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씁니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반년쯤 되었네요. 2021년이 저물어 가는 요즘입니다. 한 때 박준 시인을 좋아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준 시인의 작품 중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을 사랑했죠. 몇 해 전 우울증으로 삶이 전반적으로 음울할 때 자주 꺼내어 읽었는데 왠지 제목부터 큰 위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슬픔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폭삭한 베개처럼 포근한 위로였는지요.


  그런데 매일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를 읽고 나면, 때때로 자기 연민이 더 강해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왠지 내 슬픔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으니 영원히 슬퍼해도 괜찮을 것 같은 지나친 위안 같은 것이었죠. 불행한 마음에는 중독성이 있는 것처럼요. 그 후 몇 년 간 슬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저 나름 많은 노력을 하며 지냈고, 시간이 흘러 흘러 저는 훨씬 더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회복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요) 인지심리 종합검사에서  depressive trait  (우울함을 나타내는 특성) 정도가 아닌  "disorder" 진단을 받았었지만 지금은 종종 불안하거나 센티해질 때는 있어도 삶이 우울하다고 느끼지 않고 살아가고 있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대학 은사와 절친한 선후배이자 제가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의 <햇살에게>라는 시를 읽었고, 아무래도 마음이 조금 더 밝아진 덕분일까요? 저는 그 후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라는 시보다   <햇살에게>를 훨씬 더 자주 읊게 되었습니다.


<햇살에게> 

              정호승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달 전쯤이었을까요. 우울증을 극복한 한 잡지사 대표의 인터뷰 자료를 보았습니다. "우울과 슬픔은 사회 속에서 분명 환대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우울과 슬픔을 타인과 연대하며 함께 성장하길 바라는 순간 힘들었던 경험은 더 이상 약점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울증은 극복하였지만 최근엔 모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한 제 자신을 숨기고 싶은 날도 많았습니다. 과거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고 싶지만 생각보다 뿌리 깊은 상처나 기억이 완벽하게 상쾌한 느낌을 갖지는 못했던 것이죠. 부단한 노력 끝에도 아직 말끔하게 과거와 안녕하지 못함이 간간히 저 스스로에게 서운함으로 다가왔죠. 그래서 제2022년의 목표는 '슬픔을 연대하며 더 높게 확실하게 성장해보자'라고 정하면서 왠지 제가 나아가야 할 발걸음이 명확해진 것 같아 마음이 들뜨고 지금보다 더 고차원적인 희망이 생깁니다.


   아픔을 나눈다는 것은, 더 이상 아픔이 약점이 아니기 위해 극복하려는 의지겠죠. 많은 사람들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하는 바예요. 그러나 사람은 노력하면 결국 언젠가는 변합니다. 기질과 성향은 천성이기에 절대 변하지 않는다지만 그 기질과 성향이라는 것도 동전의 앞 뒷면처럼 사용하기 나름이고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조건 좋은 성향과 기질은 없어요. 장, 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나쁜 기질과 나쁜 성향은 없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승화시키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고 살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류의 슬픔을 경험했는데 언젠가 이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갖게 한다면 나의 슬픔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겠구나,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이제는 그 경험들을 저와 같은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나누고 연대하기 위해서라도 더 크게 성장하고 불안과 두려움에서 한층 더 깨어나리라 다짐해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 와타나베가 사랑, 상실, 상처를 겪으며 성장하기 위해 웅크리고 있던 모습, 그리고 희망으로 나아가기 전 횡단보도에서 두리번거리는 소설 속 장면이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앞으로는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아직 알지 못해서 불안해하는 당신의 눈동자를 지나치지 않고 함께 연대하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저 또한 더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천하는 속에서 느끼는 솔직한 글들을 통해 당신과 함께 성장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과 함께 연대하여 슬픔이 행복으로 가는 방법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글들을 쓰기 위한 정비의 시간으로 연말을 보내려고 합니다.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그런 글을 기대하고 있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하니깐요. 2022년에는 저를 비롯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으로 나아가길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만 줄일게요.



 

- 루이스 헤이 저, <치유>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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