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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Jin May 13. 2020

달변에 대한 생각

- 수업 녹화를 하다 문득

 나는 달변가였다. 어려서부터 말을 잘한다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었고, 모둠 활동에서도 발표는 언제나  몫이었다.  청중 앞에서 말하는 것도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명을 상대하는 소규모 설명회부터  백명이 가득한 대규모 설명회까지, 입학 설명회를 담당하는 것이 나의 주업무였다. 위트와 유머가 넘치거나 쇼맨십이 강하지는 않지만 듣고 있으면 재밌어진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학기  교원평가에서 아이들이 가장 많이  말도 "썰을  푼다", "목소리가 좋으시다", "듣고 있으면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리고 "옷을  입으신다"(옷이 나의 모든 것이 었던 한때가 있긴 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이런 긍정적인 평가를 종합해보면, 나름  차려입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냥하고 논리정연하게 말을  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된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더 이상 잘 차려 입지도 않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하던 가락이 있어서 그런지 수업 녹화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은 않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모션을 취하면서 이리저리 막힘없이 술술 말을 한다(물론 중간 중간 버벅거리지만). 개학이 예정되어 있던 오늘도 아침 햇살이 고요히 들어오는 3학년 1반 교실에 홀로 앉아 촬영을 했다. 목소리를 높이고, 최대한 또박또박, 정확히. 아이들이 지겹지 않게 빠르게 술술. 생각보다 잘한다.


달변은 유전된 것이다. 호기심 많고, 박학다식한 부모로부터 달변의 생물학적, 문화적 DNA를 물려받았다. 동네 사람 신변에 관한 것부터 역사, 정치, 사회, 문화, 과학 등등 온갖 이야기들을 하느라 밥을 먹고 나도 밥상을 치울 시간이 없었다. 요즘은 고향 마을의 속사정부터 트로트의 역사와 전망, 코로나 이후의 사회변화로 이야기가 흘러가다가, 담보도 없이 모엔터테이먼트에게 거액을 빌려준 어떤 은행의 속사정과 능력은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출세한 국무총리와 정치인에 대한 인물평까지 밥상에 오르내린다. 시작도 없고 끝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거침없이 쏟아져나오는 이야기와 거침없는 말하기는 달변을 만든 동력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같이 자란 남동생 역시 스스로 면접불패라고 자랑할 만큼 달변가다.


거침없이 말하는 것은 함부로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근거없는 주장을 하고, 전략적으로 상대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거나, 거친 욕설로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는 것을 '함부로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의 위치와 청자의 평가를 고려하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거침없는 말하기'라고 투박하게 정의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거침없이 말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성향, 무식, 편견을 까발려도 상대가 나를 혐오하거나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와 안정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내가 부모와 가족들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은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관계와 그 안에서 거침없이 말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말을 해도, 일단은 참고 들어주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되 강제하지 않는 말하기는 당장은 가시적인 성과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말하는 사람도 오기가 있는지라, 상대의 말이 좀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그 앞에서는 끝끝내  생각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론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까지 한다. 그래도 다시 씩씩대면서 다시 한 번 내가 쏟아낸 말과 타인들의 말을 생각한다. 그렇게 그렇게 반복된 말하기의 경험은 생각과 말을 좀 섬세하고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나는 그렇게 달변가로 만들어졌다.


 말하는 것을 즐기지 않을 수도 있고, 모두가 말을 술술 잘하는 달변가일 필요도 없다. 언제나 조용하고 차분하게 한 두마디만 해도 깊은 사유를 드러내는 친구가 늘 부러웠고, 말 없는 남자들과만 연애를 했다. 그들은 언제나 닿을 수 없이 신비롭고 멋졌다. 그러나 그런 신비롭고 멋진 아우라를 만들기에 나는 너무 즐거운 사람이라, 그냥 말 잘하는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말을 잘하고 싶다면, 말을 해야 한다. "해야 는다". 만고의 진리다. 그런데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할 때에는 그럴 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타인(청자)의 평가가 두려워 자신의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없거나 혹은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신나게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이전 말의 복사판일 때의 허탈함이 그 이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전자의 조건, 그러니까 평가에 신경쓰지 않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관계가 확보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자기복제의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복제된 말만 내뱉으면 허탈하고, 즐겁지가 않다. 지금 내 수업이 그렇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이들이 나를 믿어줄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가 없다. 유튜브 영상이 남기 때문에 정확하고, 검증된 말만 해야 한다. 교사로서 하기에 조금 위험한 말들, 그러니까 학벌 팔아 먹고 사는 연예인들 뒷담화부터 한 시간 내내 이어지는 영화 얘기 등등, 녹음되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 안 되는 말들은 내뱉지 않는다. 대신 잘 짜여진 쇼를 한 판한다. 이미 끝을 가진 쇼를 하고 나면 털석, 주저 않게 된다. 나는 거침없이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어떤 자극도, 반응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말을 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학생들은 입시공부에 도움을 받았을지 몰라도 나는?) 말하고 싶지가 않아진다. 왜 말을 하겠는가?


이제 3학년 1반 교실에선 저것들이 내 수업의 동반자다.  탭, 털복숭이 마이크, 커피,


내가 좋아했던 3학년 1반 아이들이 물었다.

 "선생님 꿈이 뭐에요?"

 "음, 내 꿈?, 음 졸혼"

여기저기 웅성웅성, "남편과 애들이 불쌍하다, 졸혼이란 게 뭐냐, 그럴 거면 왜 결혼을 했냐, 괜찮은 것 같다, 우리 엄마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내가 남편이라면 너무 슬프겠다. 요즘 트렌드다"  온갖 말들이 터져나왔다. 그 말 하나, 하나, 하나, 오래 두고 생각했다. 쉽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왜 남편이 불쌍하고 생각하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보았다. 나처럼 그 교실에 있던 몇몇 아이들도 한참 후에 졸혼이 꿈이라고 했던 어떤 아줌마 선생님의 상황을 헤아려볼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거침없이 말하는 대화, 수업이자, 달변가가 되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내 말을 어떤 여선생이 지껄인 정신 나간 말로 혐오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나 역시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아이들의 말도 챙겼다. 시덥지 않은 잡담같아 보이지만 이 말들은 높임법의 종류보다 더 복잡하고 깊은 사유로 우리를 이끌고 들어간다. 그 이끌림에서 우리는 말하기의 희열을 느낀다. 달변이 되려면 이런 말하기의 희열을 느껴야 한다. 거침없되 머뭇거리고, 유보하며, 달라지는 말하기야말로 희열을 주는 말하기다. 그러니 그저 화장지 풀리듯 혼자 술술 풀려나가는 말이 달변이 아니라 두려움 없이 내 생각을 열어 타인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고, 내 말과 타인의 말이 두루두루 섞일 수 있도록 유연하게 풀어진 말이 달변인 것이다.(이렇게 재정의하고 보니, 앞에 쓴 말을 수정해야겠다. 나는 달변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지 달변가는 아니다)


여전히 툭툭 내뱉는 거친 말과 상황과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 나와 타인을 할퀴어 대지만 적어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말하기로 인한 손해가 없고, 말을 나누는 희열을 알고 있으니, 이것만으로 스스로 달변가라 자부될 것 같긴 한데, 요즘은 말하기가 싫다. 거칠고 섬세하지 않은 말들, 빨리 단정짓고 퉁치려는 말들, 스스로 복제하는 하는 말들, 이 말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거침없지만 머뭇거리며 들여다 볼 줄 아는 말들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글도 그렇다. 동일성의 반복, 내가 쓰는 질척거리는 똑같은 글들이역겹지만, '해야 는다'가 만고의 진리라고 내가 말했으니, 그저 믿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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