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을 돌아보면 나는 실패가 잦은 편이었다. 남들이 대학에서 신학기를 즐길 때 재수했고, 원했던 회사도 면접에서 낙방했다. 모든 불행이 어깨동무하고 달려왔다. 당시에는 원망도 많이 했다. 하늘이시여. 저한테 왜 이러시나요.
야구의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친구가 늘 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볼 때마다 짜증 내면서 기어코 시합을 보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선수들이 타석에 열 번 들어서면 최소 7번 이상은 실패를 하기 때문이다. 경쟁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아니 그걸 못 쳐? 거기서 방망이를 왜 휘두르고 그래’ 사람들은 밥만 먹고 야구만 하는 선수들이라면 날아오는 공을 뻥뻥 쳐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패배란 없다. 준우승을 차지해도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승부의 세계다.
비단 야구 경기만이 아니다. 우리 삶에도 성공보다 실패하는 일이 많다. 하나의 성공을 이룰 때까지 쌓여간 실패는 넘쳐난다. 최선을 다했더라도 실패하고 나면 좌절의 무게는 꽤 무겁다. 포기할 수도 없다. 인생은 멈추지 않는 시합이다. 2군, 3군 경기로 내려가더라도 시합은 계속된다. 반대로 연전연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는 이들도 있다. 놀라운 재능을 지녔거나, 주변의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다. 인생은 승리에 익숙한 이에게 비교적 높은 승률을 보여준다. 공평한 세상이 아닌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야구를 통계의 스포츠라고 한다. 타자의 가치를 ‘몇 할’, ‘몇 푼’ ‘몇 리’라는 확률로 평가한다. 사회 역시 사람의 가치를 등수로 매긴다. 사회구성원에게 순위를 부여하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야구는 종종 인생에 비유된다. 야구경기에서 타자가 안타를 쳐낼 확률은 굉장히 낮다. 통산 최다 홈런 보유자인 이승엽 선수조차 통산 타율은 3할을 넘지 못했다. 홈런왕을 휩쓸던 선수였지만 10번의 타석 중 7번 이상은 실패를 경험한 것이다. 야구가 아닌 실제 현실의 우리도 무한경쟁 속에서 계속된 실패를 경험한다. 우리는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와 같다. 그런데 야구와 인생이 과연 이런 좌절만으로 점철된 것일까.
어릴 땐 몰랐던 사실이 조금 커보니 눈에 보일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감. 갓 입학한 대학교를 휴학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선택하며 느꼈던 불안감까지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행복'을 위한 선택을 했지만, 실패의 두려움이 더 컸다.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고 대학 강의실에 남아있던 인원은 나 포함 5명이었다. 노력에 배신당한 상처는 컸다. 패배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불행은 영원할 것 같아도 어느 한순간에 지나간다.
야구에서 3할이 넘는 타자는 특급타자로 평가받는다. 10번 중 3번의 기회만 잡아도 잘한다고 칭찬을 받는 것이다. 한 번 타석에 올라 안타를 치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떠한가. 나의 타율은 몇 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아직 우리는 제대로 타석에 오르지 않았다. 타석에 올라서도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실패해도 괜찮다. 인생에서 3할만 쳐도 우리는 특급타자니까. 한 번, 두 번 찬스를 놓치더라도 우리에게는 다시금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명 해설가 하일성 씨가 종종 하던 말이 있다. “아, 야구 몰라요” 야구는 쉽게 예측이 불가하다. 패색이 짙은 경기가 누군가의 홈런 한 방으로 뒤집어지고, 시합 내내 헛스윙만 휘두르다가 몸에 맞는 공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열 번을 도전해서 계속 실패할 수도 있다. 우리의 인생에 패색이 짙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은 모른다. 야구는 '9회 말 2아웃부터'라는 말이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 인생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