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회사에서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우또이’라는 제목의 글을 몇 편 적었다. ‘우리 회사 또라이’의 줄임말이다.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을 글로 대신했지만, 부정적인 생각에 점점 잠식되는 듯해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놓아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퇴직을 앞둔 선배님이 우리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그는 전자담배를 사무실에서 피우곤 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은 향이 담배 냄새인 줄도 몰랐다. 파티션 너머로 은은히 피어오르던 그 향이 전자담배 연기임을 알게 된 후, 마음 한구석이 갑갑해졌다. 간접흡연에 대한 불쾌함과 스트레스는 글 속에 다시 선배님을 등장시킬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또라이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하나
그 선배님은 술도 참 좋아하셨다. 술자리를 쉬이 만들지도 않고, 입바른 소리를 곧잘 하던 나를 그리 그리 좋게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은 조용히 퇴직하셨다.
그런데 문득 생각했다. 저렇게 담배를 뻑뻑 피우고, 주야장천 술을 마셔도 퇴직할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다 가시는 구나. 나는 저럴 수 있을까? 한숨 섞인 물음표가 머릿속에 스며들었지만, 곧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내려 애썼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내게 암이 찾아왔다.
갑상선암. 발병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방사능 노출, 만성 스트레스, 수면 부족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요인들이 원인일 수 있다지만, 무슨 소용인가. 이유를 찾는 것은 허무했다. 나는 이미 암에 걸렸으니까.
사람들은 말한다.
“늙어가는 게 슬프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다르게 말한다.
“없을 줄 알았던 50대가 찾아왔고, 거울 속 흰머리 난 내 모습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라고.
내 주변 사람들은 갑상선암의 생존율이 높다는 통계로 나를 위로했다. “10년 생존율이 거의 100%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크게 위로는 되지 않았다. 10년 후에는 어떨까? 그 이후에도 나는 이렇게 웃을 수 있을까? 글을 쓰는 지금도 울컥할 때가 있다. 하지만 곱씹어 본다.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게 인생이라고. 건강하던 사람이 암에 걸리기도 하고, 평생 건강 관리를 하지 않아도 무탈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유를 묻고 불평하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차분히 마주하며 헤쳐 나가는 게 맞지 않을까. 나는 극복하기로 했고, 혼자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