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일일 확진자보다 더 적은 수의 표차로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역대 대통령 선거 중 가장 적은 표차다. 투표 결과를 확인한 건 선거 이튿날 새벽 4시. 우울한 소식이 있다는 남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퍼뜩 깨서 다시 잠들지 못했다. 아침이 오기까지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추론하고, 위로를 건네다 걱정과 분노를 쏟아냈다. 4시간을 채 못 잔 데다 어두운 방에서 몇 번이고 뉴스를 확인하느라 눈이 퀭했다. 조금이라도 잠을 자려고 결국 아침에 반반차를 냈다.
바로 이전 글(“어머니 제가 바로 그 종북 좌파 빨갱이입니다”)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내용은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이겼을 때를 전제로 하고 쓴 게 분명하다. 다짐과는 다르게 전혀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노동자이고, 서민이고, 약자인 사람이 훨씬 더 많을 텐데 대체 왜?’ 생각이 계속 맴돌아 오전 반반차를 쓰고서도 잠이 잘 들지 않았다.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일 수 없다는 답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입이 썼다. 아마 대한민국의 절반은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패배 요인을 분석할 필요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어디서 표심을 덜 보탰는지, 어떤 전략이 부족했는지, 누가 어깃장을 놓았는지 아무리 말해도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시간이다. 또 굳이 원인을 찾자면 언론과 포털에게 있지 후보나 지지자,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9대 대선 때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의 득표수를 합친 것(15,441,258표)보다 이번 선거에서 진 이재명 후보의 득표수(16,147,738표)가 훨씬 많은 것만 봐도 당과 지지자 모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재에서 벗어난 지 30년이 넘어가는 대한민국은 이제 누가 대통령이 됐느냐로 당장 나라가 망하거나 흥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적 재화와 세금이 어떻게 쓰일지, 절차와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그 향방이 달라질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 드러나는 양상과 봉합이 쟁점이 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된 상황에서 주 120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이하인 삶의 당위를 이야기하고, 성별 갈등의 목소리가 팽팽한 지점에서 한쪽 성별의 목소리만 듣는 후보가 당선이 되었으니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눈에 보인다.
어쩌면 검언유착과 성별갈등, 노동문제는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개혁이 아니라 적당한 선에서 개선되었을지 모른다. 분열로 터져 나오는 여러 이슈들을 열심히 막아내고 대처해서 오히려 근본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들은 단지 행정부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썩고 썩어서 도려내지 않고는, 판 전체를 뒤집지 않고는 도저히 방법이 없다는 걸 온 국민이 알게 되기까지 충분히 더 부패할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 시간이 윤석열 대통령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렇게 되어야 할 일이 안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애써 합리화하면서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다.
아침에 반반차를 쓰긴 했지만 출근 이후의 일상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나보다 더 선거에 몰입한 사람들은 과장을 조금 더 보태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겠지만 오늘이 지나가듯 또 내일이 온다. 점점 충격이 가라앉고, 부정하고 싶은 현실은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렇게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금 덜 끔찍한 날들이 오기를, 고작 24만 표로 다른 미래를 맞닥뜨린 사람들이 지나치게 좌절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