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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tlude Aug 11. 2023

더보이즈 ‘LIP GLOSS’

아무리 촉촉립이 대세라지만

더보이즈 정규 2집

PHANTASY Pt.1 Christmas In August

발매: 2023. 8. 9





더보이즈는 코어팬의 두께와 별개로 컴백할 때마다 나름대로 화제를 일으키는,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제법 괜찮은 자질을 가졌다. 킹덤 시리즈로 맛 좀 보고 나서, 그걸 다 땡겨 쓰는 바람에 그 이상으로 올라갈 기회는 영영 놓쳐버렸지만 이미 포화 상태인 아이돌판에서는 이 정도 포지션으로도 충분하다.


더보이즈는 극단적인 레드벨벳식 컴백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2020년 더 스틸러 이후부터 청량-섹시를 정확하게 번갈아가면서 보여주고 있는 게 그 방식이다. 이게 어쩔 수가 없는 게 달달한 청량은 취하지가 않고 도수 높은 섹시는 입에 달지가 않다. 아이돌이 가장 예쁠 때는 자고로 웃을 때가 아니겠는가. 정색하고 인상 쓰고 춤추는 걸 지켜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는 있지만,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아무래도 햇빛이니까.



출처: 레드벨벳 공식 트위터


하지만 컨셉 분리의 예시 레드벨벳은 연차가 차고 앨범 수가 늘어나면서 레드/벨벳으로 굳이 나누지 않고 명랑한 무드의 벨벳을 갖고 온다던지, 마냥 쨍하기만 한 레드가 아니라던지, 그 사이 어딘가를 줄타기하는 방식으로 충분한 변화구를 던지고 있다. 근 컴백곡 몇 개 떠올려보면 바로 감이 올 것이다.


2021년 8월 스릴라이드 - 11월 매버릭



하지만 더보이즈는 거의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완전 청량 / 완전 섹시(혹은 다크)로 정확하게 선을 그어 컴백 중이다. 물론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미식의 근본은 단짠이니까. 단맛이 물리는 감이 있지만 다음 음식이 짤 거라는 어떤 확신이 있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다. 더보이즈의 컨셉은 항상 한철 장사의 느낌이 물씬 난다. 이번 계절만 어떻게 잘 비벼서 넘겨보자, 싶은. 사실 이것도 아무렴 어떤가 싶기도 하다. 회사 사이즈보다 큰 세계관이나 감당도 안 되는 무한확장 시스템 같은 거 무턱대고 도입했다가 손 못 쓰고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그룹의 존속 측면에서, 컨셉이나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대한 특별한 고민이 없어 보인다는 게 문제다. 자꾸 의상만 짧아지는 것, 일단 에스테틱한 무드 보여주고 퉁치려고 하는 것 등이 있겠다. 이번 컴백에는 드라마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채택해서 나름의 재미를 주려고 한 것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 어법은 2010년대 중반의 어떤 것이라서 별로 새롭지는 않다.





호평할 것이 있다면 그래도 예쁘다는 것이다. 글의 서두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더보이즈는 컴백할 때마다 나름의 화제를 일으킨다고. 그게 소소할지라도 말이다. 최대로 덜어낸 수영 컨셉이나, 의상의 방향성은 모르겠어도 얼굴은 선명하게, 최대한 예쁘게 찍어놓은 한여름 크리스마스 컨셉까지. 더보이즈의 팬들이 그 티저를 보고 어떤 소리를 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얼굴 일그러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한 티저들이 아닌가. 이럴 때 더보이즈 디렉팀은 얼굴만 교묘하게 피해서 포스터를 접어 주는 것만 같다. 애초부터 포스터를 말아서 줬으면 어떤 불상사도 생기지는 않았겠지만…


그리고 적절한 나이의 멤버들이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걸 보고 있을 때 충족할 수 있는 묘한 감정도 분명히 존재한다. 96-00의 연령대면 더도 덜도 아닌 딱 ‘젊은 남자’ 아닌가. 너무 앳되지도, 너무 성숙하지도 않은 20대 중반의 남성들이 정확히 셀링 포인트만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와 안무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엔터테인먼트이다.





출처: 벅스



음악에 큰 탈이 있지는 않다. 그냥 있을 법한 후크, 있을 법한 싸비 등이 지나면 있을 법한 랩이 있을 법한 자리에 있다. 대단한 퍼포먼스도, 대단한 보컬도, 대단한 랩도 보여주지 못하고 무난하게 지나가는 점이 아쉽기는 하다. 파트 1이라고 나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정규 2집 타이틀곡이라고 들고 나온 곡인데, 흥망을 떠나 그 정도의 울림이 있냐고 한다면 글쎄다. 정규라는 이름 밑에서 특별히 챙기는 게 있어 보이진 않는다. 만약 이게 정규 2집 pt.1의 선공개곡이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든다. 물론 그러기엔 너무 후크송이긴 하지만.


재미있는 포인트를 찾자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끌어온 듯한 안무. 이 부분은 음방마다 다른 제스처를 한다든가 하는 성의를 보여주면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인원 그룹이라 사실상 수납을 없애기가 불가능하긴 한데, 이번에는 독특한 멤버가 수납된 느낌이다. 그걸 보면 골고루 차별받나 싶다가도, 아닌 경우도 존재하는 것 같기도.


개인적으로 '네 립글로스 맛을 보고 싶다'는 가사가 썩 섹슈얼하게 들리진 않고… 그냥 직관적으로 그걸 왜 먹어, 싶다. 만약 이 대사를 그렇게 풀어가고 싶었다면 뭔가 더한 장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최소한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는 뮤비에서라도 그렇게 했어야 했지만, 뮤비는 그런 플롯을 이야기하고 있진 않다. 그렇기에 이 색소 넣은 막대사탕 같은 음악의 무드 안에서 그 대사가 대단하게 읽힐 리 만무하다.



왼: 스릴라이드 ㅣ 오: 립글로스


가사에서도 그렇고 티저 사진에서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전작이자 최근의 대표작인 스릴라이드를 오마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팬들에겐 반가운 요소일 수도 있으나, 스릴라이드가 웬 5-6년 전 DDD처럼 추억팔이용도 아니고 당장 불려나간 잼버리 콘서트에서도 대표곡으로 쓰는 마당에 오마주하기에는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다. 그걸 받아들이는 팬들에게도 이미 단물 다 빨린 스릴라이드를 다시 착즙하는 꼴이다. 그래서 고민이 부족해 보이는 거다. ‘한여름 너에게 빠져든 사랑’을 논하는 데 스릴라이드의 매개는 롤러코스터였고, 이번에는 그게 립글로스로 바뀐 것일 뿐 다른 유의미한 시도가 없으니까. 당당하게 외치는 ‘Watermelon Strawberry Sugar’에서는 여러 팝스타의 구절이 스쳐간다. 우리의 서핑 실력은 아직 거기까지가 아닌데 말이다. 내가 한철 청량 썸머송에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그런 마인드로 덧붙이자면, 그래도 컴백 쿼터제로 충분한 청량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팀은 더보이즈뿐이다.


그러니까 더보이즈는 오렌지주스 / 빨간뚜껑 같은 강한 대비도 좋지만, 그 사이를 섞어낸 과일 소주라든지 여러 가지 맛의 칵테일을 만든다든지와 같은 고민을 해볼 필요는 있겠다. 아예 색다른 안주를 내오던가. 다양한 시도는 분명 멤버들 개개인에게도, 팬들에게도, 그룹에게도 선명한 업적으로 남을 것이 자명하다. 프로그램 시절, 사람들이 더보이즈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준수한 멤버들이 A부터 Z까지 놀라운 스펙트럼의 볼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이 아닌가. 어차피 계속 결과물을 내야 하는 입장이라면, 어떠한 유기성을 찾는다거나 조금 더 체계적인 고민을 하는 쪽이 일하기에, 받아들이기에, 즐기기에 더욱 신나고 명료할 것이다.





티저 이미지 출처: 더보이즈 공식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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