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세라핌부터 키키, 스테이씨와 하츠투하츠까지
새학기만큼 가요계도 바쁘다.
짤막하게 모아 본 3월 걸그룹 대전.
발매: 2025. 03. 14
악재가 많았지만 잘 딛고 올라온 성공적인 컴백이라고 본다. 오히려 도움 안 되는 쩌리팬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여성 코어 팬덤이 생긴 것 같아서 멀리 봤을 때는 그룹에게 이득이 될 것. 힘든 시간을 같이 견뎌왔으니 쉽게 서로를 놓을 수 없는 동지애가 생겼기에 더더욱…
곡도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졌고, 챈팅이나 반복되는 랩으로 후렴구를 때우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멜로디를 불러주는 점도 좋다.
다만 다층적인 이야기와 곱씹어볼 만한 컨셉 내지는 가사가 잘 녹아든 곡 자체에 비해 제목이 너무 단순하고 개성이 없어서 아쉽다. 이제껏 르세라핌의 행보로 미루어 보아, ‘HOT’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기대감을 반감시킨다. 차라리 가사에 등장하는 burning, fire 등을 살리는 게 훨씬 잘 맞아들어갔을 듯.
무대에선 은채가 눈에 띈다. 앞으로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이미지도, 퍼포먼스도 수준급.
발매: 2025. 03. 24
‘I DO ME’는 뉴진스를 보는 듯했다. 표현 방식이 분명 다르긴 하나, 뉴진스의 선례가 없었다면 기획되지 않았을 요소들은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어서. 대신 보헤미안 스타일, 조금 더 한국적인 부분 등이 키키를 차별화한다. 선공개 싱글이 너무 좋았던 탓일지, 메인 타이틀이라고 들고 나온 ‘BTG’는 썩 직관적이지 않다.
그래도 일단 스타쉽 내에서 아이브와 전혀 다른 비주얼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듯하니, 조금 더 지켜보면 좋겠다.
발매: 2025. 02. 24
상향평준화된 얼굴들이, 이제껏 SM이 만들어온 다른 그룹들과 대조된다. 그동안의 꽃다발은 여러 종류에서 채택해 왔다면, 이 팀은 한 가지 꽃 종류 안에서 고르고 골라서 준비한 느낌. 처음엔 제법 임팩트가 덜하고 슴슴한 편이지만, 보다 보면 멤버들도 구분되고 음악도 묘하게 중독적이다. 별가루 뿌린 평양냉면 같다던 말이 딱.
이 팀이야말로 멤버들 이미지가 겹쳐서, 유닛 활동이나 레드/벨벳 같은 이분법적 시도를 했을 때 잘 어울릴 것 같다. 워낙 오래, 즐겁게 들어오던 프로덕션의 작업이라, 걸리는 곳 없이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데뷔.
발매: 2025. 03. 17
여자 엔시티를 보는 것 같다. 엔시티 위시나 라이즈, 심지어는 에스파도 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엔믹스가 하고 있다. 127이 했어도 잘했을 것 같은 곡을 가지고 왔다. 뒤돌았을 때 기억엔 남지만, 'Young, Dumb, Stupid'이나 'Love Me Like This'에서 보여준 것 같은, 뾰족하고 비비드한 엔믹스만의 어떤 매력은 좀 옅어진 듯해 아쉽다.
그러나 깨끗이 정돈된 퍼포먼스와 분명한 컨셉은, 그들이 새로운 시도를 전제하고 이곳저곳 방황하다 보면 언젠가는 궤도에 오를 거라는 믿음을 보여준다.
발매: 2025. 03. 18
별로다. 곡이나 컨셉도 올드하고, 의상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 말 하려고 이 글 썼다.
스테이씨의 제작진은 2010년대 중반의 히트곡을 견인하던 프로듀서다. 그런 그가 급격하게 전환되고 있는 2020년대에 무사히 안착한 것 같진 않다. 스테이씨가 데뷔한 지 좀 되었으니,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봐도 될 듯.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의 데뷔곡과 초반 몇 개는 어찌저찌 시류에 올라탔으나, ‘색안경’부터는 이것이 신곡이라고 좋게 봐주기가 힘들다. 나는 ‘색안경’부터 이 팀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다. 뜬금없는 프랑스어 가사와 와닿지 않는 랩도 이제는 뻔하다.
프로듀서진이 팀 색깔을 결정하는 위치인 데다 만듦새 있는 곡을 쓰는 사람인 것은 맞으니 좀 더 연구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이렇게 헛물만 켜다 보면 결국은 그룹의 수명을 깎아먹을 수밖에.
분위기 반전을 원한다면, 다른 프로듀서와의 협업도 돌파구가 될 듯. 실력순 파트 분배를 떠나, 이미지 자체가 많이 소비됐으니 이제껏 주목받지 못했거나 파트가 적은 멤버들을 발굴할 필요도 있다.
발매: 2025. 03. 10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사실 가사가 조금 유치하다. 분명 가수에게 잘 어울리는 가사는 맞지만, 남에게 의탁한 자아가 얼마나 편협하게 관찰될 수 있는지도 눈여겨볼 타이밍. 목소리가 성숙해서 그런가, 더욱 이질감이 든다. 예나가 불렀다면 유치하게 들리지 않았을 듯… 물론 데뷔 10년차의 완성된 보컬과 퍼포먼스는 눈부시다.
발매: 2025. 03. 10
유치하지 않으려 했는데 유치하게 보이는 것과, 촌스럽고 유치하게 만들어서 오히려 귀여운 것은 다르다. 이 팀은 후자이고, 거기서 묘한 개성이 발생한다.
‘올드함'과 '노스텔지어'의 다른 점이 있다. 올드함은 2010년대의 문법을 가지고 2020년대에 맞추려 해서 문제가 된다. 그러나 아일릿은 지극히 2020년대적인 어떤 것들이 조화됐을 때, 예상치 못하게 2010년대를 떠올리게 하기에 긍정적이다.
잠재력이 많은 팀이라기보단, 틈새시장을 정확히 공략해서 한 자리 차지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 될 듯.
발매: 2025. 03. 03
제니는 야망이 있다. 그것이 시대를 풍미한 수많은 디바, 여러 그룹의 센터들과 제니가 차별화되는 점이다. 동경의 대상이 된, 능력 있는 톱스타가 본질을 포기했을 때만큼 슬픈 손실은 없지만, 제니의 첫 정규 앨범에서 그런 아쉬움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타이틀에 보란 듯이 박아 넣은 한국어 가사, 지루할 만큼 반복되는 이름조차 제니의 시도가 근거 없는 멋부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앞으로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순조로운 홀로서기. 'Starlight' 초반부의 한국어 내레이션을 왜 넣었는지는 알겠으나, 뺐으면 더 좋았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