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는 역사 속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하지만, 가서 살아본 감상은 ‘그럴리가요. 누가 그래요?’ 정도로 표현하면 적절하지 싶다.
아이 어린이집을 알아보던 때, 로컬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딴에는 유명하다는 곳들 위주로 알아보다 보니 이런 메일을 받아본 적도 있었다.
Dear Mrs. ooo,
Could you please confirm your child's date of birth, current school and parents educational background? Please also share your contact details.
Thank you.
Regards,
Admissions Committee,
000님께,
아이 생년월일,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 그리고 아이 부모님 학력을 송부해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도 함께 송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입학 위원회 배상
부모 학력을 너무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패기 넘치는 학교의 메일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인도 생활을 막 시작하던 때라 더욱이 그랬다. 인도에서 이른바 괜찮은 학교를 보내려면 입학 신청서를 제출하고 부모가 학교에서 요청하는 인터뷰를 무난히 잘 통과(라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한 후에라야 아이가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기본적인 정보도 알지 못 하던 때였으니까.
후에 알게 되었지만,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인도까지 날아가 결혼식에 참석한 바람에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화제가 되었던 ‘암바니(Ambani)’ 일가가 운영하는 ‘Ambani school’의 경우는 인터뷰 시에 조부모 학력은 물론이고 업적까지도 상세하게 물어본다고 했다.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가 손에 꼽히는 고급 아파트이고, 아이의 부모 직업이 둘 다 변호사인 경우에도 입학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하니 타고난 조건이 보통 좋지 않고서는 그들의 틈에 비집고 들어설 재간이 없다.
그러고 보면, 거주를 위한 비자 신청 뿐만 아니라 단순히 여행을 위한 인도 비자 (인도는 무려 189개국을 무비자 입국할 수 있는 ‘대한민국’ 여권의 파워도 무력화 시키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신청서 양식에도 다 큰 성인에게 부모님 학력, 직업과 같은 너무나도 사적인 정보들을 태연히 요구하고 있는데 그들의 삶 전반에서 ‘타고난 신분’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있는지 눈치챘어야 했던 대목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인도에서는 더 이상 ‘카스트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맞고 덕분에 ‘개천에서 난 용’의 사례가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카스트의 개념이 다소 변형 및 완화되어 때로는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대우를 받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결혼’만큼은 동일한 카스트끼리 한다는 그네들을 보면 ‘신분’이라는 무거운 분류 기준을 그들의 삶에서 떼어놓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생각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인도에서의 삶이라는 것이 그렇다.
나 같은 외국인은 카스트 제도 어디쯤에 속할 수 있을까? 뭄바이의 그야말로 미친 고(高) 물가 대비 짜디짠 인건비 수준 덕분에 우리는 그 곳에서 꽤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고 여겼으므로, 인도 사람들은 과연 우리를 어느 정도의 위치로 간주할는지 몹시나 궁금증이 일었다.
“우리??? 뭘 물어. 불가촉천민이지.”라고 시니컬하게 답하는 남편의 대답이 나를 웃기고 싶은 욕심에 하는 농담인 줄로 믿고 구글에 카스트 제도에서 외국인의 위치를 검색했다.
우리는 둘 다 어찌되었건 대학을 나왔고, 남편은 법인장(으로 불리우는 직장인)으로 일 하고 있고,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으며 (부채까지 포함한 개념의 자산으로 보면 우리 부부의 자산은 실로 상당하다)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은 우리에게 예의를 깍듯이 갖추어 준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보건대 중간은 가겠지 하는 기대감을 담아 굳이 찾아 본 결과는 신랄했다.
출 처 : 핀터레스트 / 카스트제도에 속하지도 못 하는 불가촉천민, Untouchables
According to orthodox rules any one who does not belong to the four Varnas, meaning foreigners, are untouchables. Religiously anyone who does not belong to the four Varnas is an outcast and untouchable. It means, all foreigners and non-Hindus are all supposed to be untouchables.
네개의 카스트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불가촉천민’으로 본다.
그렇다. 그냥 돈 잘 쓰는 불가촉천민에 불과했다.
주제 파악의 결과 한번 신박하다.
그 이후로 자조섞인 농담을 입에 달고 다녔다.
'내가 뭔지 알아? 돈 많은 불가촉천민이잖아 ㅋㅋㅋㅋㅋ'
언젠가 리아가 나이가 되면 독일 학교, 미국 학교 같은 국제 학교로 보낼까 한다고 했더니, '그런데는 돈만 주면 아무나 다 가는데잖아?' 라고 대꾸하던 인도 엄마가 갑자기 떠올라 뒤늦게 다시 한번 속이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