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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Dec 14. 2022

술의 힘

무작정 걸었다. 시간은 밤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무리에 휩쓸려 들어간지라 술집에서 나오니 방향 감각을 잃고 말았다. 강 건너 지역은 잘 알지도 못했다. 늦은 시간에도 인파가 많은 걸로 홍대 부근이라는 정도만 새삼 확인했을 뿐이었다. 북적댔던 지난 두어 시간 동안 지친 탓에 인파를 피해 비교적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서 손바닥에 침을 놓고 손가락으로 탁 쳐 침이 튀어 나가는 쪽으로 걸은 지 삼십분쯤 됐다.  

   

계획이란 건 보통 한 달 이상으로 잡지 않는다. 그건 지금까지의 내 인생 전반이 의지보단 우연으로 이뤄진 게 더 많아서다. 쓸데없이 계획 세우느라 쓰는 시간이 낭비 같고, 또 한달 이상 같은 패턴으로 살 자신이 없는 이유도 있다. 다만, 일주일정도는 나름 빠듯하게 루틴을 만들고 칼같이 지키며 지내는 편이다. 고독이란 놈이 파고 들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함인데, 무용지물인 듯 툭툭 찾아오는 고독을 아직은 즐기지 못하고 흔들린다. 사람을 만나는 건 좋아하지만 그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 때에 국한된 거라 별 시답잖은 만남은 오히려 피하고 싶으니, 기별 없이 찾아오는 내 고독이 사교나 친목 부재에서 오는 것인지, 사랑이 필요해서 인지, 아직 정체를 몰라 매번 뜬금없이 느껴진다. 그래서 혀에 쌓인 군둥내도 씻을 겸, 친목 만남이 고독을 씻겨줄까 시험 삼아 반년 만에 모임에 참여했다. 의미 없는 말들과 가식이 먼지처럼 부유해서 자꾸 헛기침이 나왔다. 그래서 맥주만 들이켰다. 2차까지 동행했지만 어떤 즐거움도 찾지 못했다. 되도 않는 핑계를 대고 먼저 자리를 떴다. 덕분에 방향을 잃고 무작정 걸은 것이다.      


큰 대로변에 접할 즈음, 어딘가에서 기타소리가 들려왔다. 욍욍대는 차 소리를 뚫고 내 귀로 스민 그 소리에 멈춰 섰다. 대로변 밀집한 낡은 건물 귀퉁이에 불 꺼진 간판 밑, 문틈으로 희미한 불빛과 함께 새어 나오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시골 읍내 다방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서글픈 사연처럼 아련하게 느껴졌다. 술이 들어갔으니 또 감성 만땅이 된 거다. 어느 날 무언가에 유난히 꽂힐 땐 ‘그날의 심리 상태를 따르라’는 게 내 생활신조인지라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열 평쯤 되는 아늑한 공간에 대여섯 명쯤 되는 중년의 남녀가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고 작은 부스 안에서 같은 또래의 중년남자가 기타를 치고 있었다. 과거에 음악다방이었음직한 소박한 분위기였다. 저 부스 안에서 가죽 쟈켓에 긴 머리 젖히며 느끼한 목소리로 멘트를 날리는 DJ를 상상하며 아무 눈치 없이 아무자리에 앉았다. 주인인 듯, 손님인듯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와 ‘너 누구냐?’라는 눈으로 훑어봤다. 불 꺼진 간판과 한 테이블에 모여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들어설 때부터 내가 있을 곳이 아니란 건 촉으로 감지했었다. 역시나 그 분은 친구들 모임이라 영업을 안 한다고 했다. 난 유튜버라고 했다. 그러자 그 분은 다시 한 번 내 행색을 살폈다. 아마 카메라를 찾는 듯 했다. 난 스마트 폰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 과도한 전작으로 酒神이 들어앉았기에 가능한 뻔뻔함과 능청이었다. 순진한 건지 맹한 건지, 그 분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되어 부스로 가셨다. 난 천연덕스럽게 가게 곳곳에 대고 폰찍을 해댔다.       


잠시 후 부스에 앉은 남자의 노래에 힘이 들어갔다. 기타 소리도 EQ에 맞지 않게 저음에서 과하게 진동했다. 나른하게 감상하던 일행분들도 표정이 진지한 감상 모드가 됐다. 내가 그들만의 분위기를 깬 거 같아 폰을 내려놨다.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 분들께 갔다. 그리고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그냥 지나가다 기타소리 듣고 무작정 들어 온 취객이라고 이실직고 했다. 황당한 표정과 호통을 각오했건만, 그분들은 깔깔대거나 너털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부스를 향해 ‘삼십분 연장!!’ 이라고 외쳤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되가고 있었다. 아마 12시로 모임을 끝낼 계획이었나 보았다. 다시 한 번 인사를 꾸벅하고 자리로 가려는 데 누군가 나를 붙잡아 자기 옆에 앉혔다. 나보다 대 여섯 살 많을까 싶은 그 분은 다짜고짜 맥주를 따라주며 형이라 부르라고 했다. 내가 이런 노래 소리는 이 작은 공간에서 추억으로 소비될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텁텁한 마음을 달래는 청량제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설레발이었다. 역시나 공짜 맥주가 몇 병 더 왔다. 술이 사람의 뻔뻔함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는 마법도 부렸다.   

  

그렇게 이분 저분, 한잔 두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 술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고 시간은 두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가게 셔터가 아예 내려지고 부스에 계셨던 분은 이제 우리 자리에 앉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난 손발 싹싹 빌며 ‘형님, 이곡 한 번만. 누님 이곡 한 번만’을 반복했고 그분들 누구도 마다하지 않고 번갈아 가며 기타를 잡았다. 열정과 순수라는 인간 고유의 감성은 앰프라는 기계를 거치지 않아도 콘서트를 능가하는 감동을 주었다. 내가 그저 그들 노래에 빠져들고 사연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은 위로 받고, 그래서 흥분하셨다. 만나자마자 나와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된 분은 고 김광석과 친구였고 지금은 택시를 하고 계시다고 했다. 그분뿐 아니라 자리에 있는 모두들 비록 무명이었지만, 왕년엔 다들 한가락 했던 분들이었다. 한 때 열정 넘치는 음악청년이었던 이 분들의 ‘공간’은 이제 열 평 남짓한 이곳 밖에 없어 보여서 서글펐다. 그분들이 각자 자신의 사연을 얘기할 땐 착잡함과 아쉬움이 묻어났지만, 서로가 서로를 소개할 때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과거에도 무명이었고 지금도 아등바등 살고 있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난 그들의 견고한 자존감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분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하는 그 모습이,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한없이 부러웠다.      

우리가 일행이 되어 밖으로 나왔을 땐 새벽 네 시가 넘어있었다.     

 

“자네 음악 할 생각 없나?”

“네. 없습니다.” 

“....”

“자주 들를게요, 형. 아프지 마세요.”     


‘택시형님’의 강요에 못 이겨 내가 한 곡 부른 게 화근이었는지 단단히 취한 질문을 받았다. 비록 나는 농처럼 넘겼지만, 몇 시간 전부터 가슴 속 어느 곳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우린 몇 십 년 만난 선후배가 된 듯 서로 꼭 껴안아 주고 헤어졌다. 


계속 꿈틀대는 내 허황된 욕망과 오늘 그 자리의 흥분을 가라앉히느라 또 걸었다. 철없던 시절, 뮤지션이 되고 싶어 잡았던 기타를 놓은 지 십 수 년. 아직 열정이 남아있다는 게 반갑고 한편으론 두려워서 얼른 가라앉히고 싶었다. 남서쪽으로 걷는다고 걸었는데 성산대교가 나왔다. 북동쪽으로 걸은 듯 했다. 한강을 넘어 다시 방향을 잡고 걷다 동작 대교쯤에서 지쳐 주저앉았다. 술이 깨려는지 피곤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날이 밝아 있었다. 택시를 잡아탔다.    

  

다음 날, 택시 형님이 준 명함에 있는 가게 위치부터 내가 걸은 거리를 재 보았다. 대략 25Km나 됐다. 군대 시절과 카메라맨 시절 이후 가장 많이 걸은 거리였다. 술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낼 거리였다. 속은 쓰리고 다리가 쑤셨지만, 따뜻한 얼굴들로 눈을 채웠고, 좋은 음악으로 귀를 씻고, 가을 날 새벽에 깃털처럼 가볍게 영혼 정화한, 완벽하게 꽉 찬 날이었음에 감사하며 전날 노래를 흥얼거리며 라면을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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