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은 아침, 해는 동쪽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겠지. 어디서 뜨는 것이 뭐 중요할까. 이미 엄마의 해는 높이 떠서 부엌엔 짙은 안개가 떠있다. 안개가 걷히니 하늘 아래 식탁에는 뻘건 태양 같은 음식이 차려져 있다. 우걱우걱 집어넣고 대충 씻고는 느긋하게 버스에 몸을 담는다. 가끔 주위를 둘러보면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 같은 곳에서 하차를 하고 그의 누적버스요금과 동일함을 확인하고는 그의 생활패턴이 그려진다. 별 희한한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가까이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잡히지 않고 올라가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잡혔다. 알고리즘을 상상하며 왜 그럴지 짐작만 한다.
사무실 문을 열었다. 며칠 묵은 침묵이 쌓여있다. 자리에 앉았고, 어제 하던 일을 마저 생각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침묵을 더해간다. 많은 직원들의 반입반출로 인해 내 의자는 많이 꺼져있다. 7년이란 무게가 꽤나 무거워졌다는 증거고, 또 실제로도 무거워졌다. 그래서인지 일은 늘 더해지고 있지만, 고도의 선입선출법을 활용해서 일이 1을 유지하고 있다. 메신저가 울린다. 오전 회의를 깜빡했다. 아니 사실 회의라고 해서 준비 따위 하지 않는다. 그것마저도 일이라면 너무나 바쁠 것이다. 회의실에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화면 속에도 사람들이 들어있었다. "들리시나요?" 침묵을 깨는 소리로 스크린 속에 사람들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가만히 듣다 보면 가끔 산속에 혼자 갇혀있는 사람도, 길을 모르는 사람도 있어 그 사람들을 구출해 준다. 약간의 드리블로 살짝 제치고 밥 숟가락 위에 오징어 젓갈을 올려준다.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김도 올려준다. 그렇게 끝나고 나면 입이 마른다. 커피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아이스 담배를 마시면서 오후엔 뭘 할지 머릿속에 악보를 그린다. 악보대로 연주하며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감겨흘러가고 부족한 화음을 군데군데 집어넣는다. 저녁시간이 다되었고, 내일도 이와 같은 하루가 되겠지 생각하며 바쁜 나를 위해 나는 미리미리 내일의 준비를 해둔다. 이미 해는 사라진 지 오래. 다시 지하철에 나를 담고서는 집으로 돌아간다.
어느 날 아침, 조금 다른 하루였다. 해가 서쪽에서 떠도 그래도 떴자나 하며 다를 게 없었는데, 브런치에 새로운 알람이 울렸다. 보자마자 약간 미묘한 기분이었지만, 뭔가 다르게 즐거웠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주문을 한다. "같은 걸로 주세요." 늘 똑같은 주문으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하루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고, 같은 일상, 같은 하루 그래도 버텨나가며 가끔은 조금은 다른 하루인양 시간을 보냈다. 일에 있어서도 뭔가 기다려지는 기분이 드니 시간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헤매이던 마음이 미래엔 좋은 시너지가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적극적인 자세로 임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서 생각은 일과 독립이 되었고, 기분 좋은 일과 반복적인 루틴으로 완벽하게 구분이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이 더 좋았다. 휘파람이 절로 나오며 하루하루가 완벽하게 구분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은 움켜쥘 수 없어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분의 변화는 적었고, 그마저도 반복적인 루틴이 되지도 못했다. 그냥 없는 일이 돼버린 것 같았고, 오히려 더해지니 하루가 더 힘들었다. 억지로 접고 접어 없는 일로 만들고나니,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탓할 수 없는 감정은 결국 반복적인 루틴의 탓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일이 지겨워졌다. 제 아무리 답답해도 밥숟가락 떠주고 오징어 젓갈도 올려주며 김도 싸주고 일을 해도, 드리블을 하며 발 앞에 공을 가져다주면서 답답한 마음도 내가 잘했으니까 위안 삼으며 버텨내 왔는데, 모든 게 무너졌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가장 즐거운 게 일하는 것이 돼버린 나에게 완벽한 지침 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가려진 시간속에 사는 코난에게는 번아웃이 올까?
아니 기분이 좋지 않은 여름날, 고난에게는 번아웃이 찾아오더라.
코난의 시간은 멈춰 있으니까, 내 시간은 멈춰지질 않으니, 나는 당연하게도 지금 심각한 번아웃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