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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키나 pickina May 12. 2023

연봉 1억을 포기하고 하고 싶었던 것

회사를 그만두고 Next Step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나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회비용과 미래를 생각하니 그것을 실천하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 이유와 결과에 대해 기록하고자 한다.


회사를 떠나고자 한 이유


2021년 27살의 나이에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이미 연봉 1억을 넘겼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일도 만족스러웠다. 다른 회사에 가서 이 정도의 조건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나는 이 회사가 내 인생에 마지막 회사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회사에서 나름 인정받는 인재였다. 영업직으로서 능력을 팀장님과 동료들, 다른 팀 사람들, 지사장님으로부터 인정받았으며, 해외에 있는 리더십도 내 이름을 알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같은 팀은 물론 밀접하게 일하는 타 부서 직원 분들께서 우리 팀에 새로 조인하시는 분께 "OO님(나)에게 일을 배우면 된다. OO님 만큼 하시는 분이 없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아마 일을 할 때 내가 편한 길을 택하지 않고 내가 좀 더 일을 하더라도 고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seamless 하게 handover를 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 달, 분기마다 실적을 100% 이상 overachieve 하였고, 고관여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나와의 신뢰 관계를 통해 계약을 이어나가는 고객사도 몇 개 생겼다. 분기 영업 실적 미팅(Quarterly Business Meeting) 때 GOAT, Shout Out 직원으로 21년 1월, 22년 1분기, 2분기에 선정되었고 22년 마감 미팅에서는 총 계약 금액이 가장 높은 Top 3 직원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고민을 가지는 것이 사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꼭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또한 이 회사에서 일이 익숙해지고 점점 더 인정받을수록 편해지고 내가 잃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욕심이 너무 커져서 떠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가 도전해 볼 만한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호기심도 많고 변덕도 심한 탓에.. 그냥 당장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다가 몇 달 만에 때려치우거나, 나와 맞는 길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버린다면 내가 포기한 것들이 생각나서 자괴감에 빠질 것 같았다. 어떤 분야로 공부를 해야 오래 그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평소 많이 좋아했던 것과 하고 싶었던 것 사이에 내가 고민했던 옵션은 아래와 같다.


국내에 있는 패션 학교에 입학하여 옷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해외 유학(프랑스)을 가서 내 브랜드를 만들기          

인테리어 학원에서 도면부터 실전까지 배우고 자격증을 따서 해당 업계에 전문가가 되기    

     워킹홀리데이 가기 - 스페인   

해외 석사 유학 가기 - 미술          

해외 석사 유학 가기 - 마케팅 / 경영 *별도 포스팅 예정          


그리고 이 계획에 대한 실효성을 알아보기 위해 22년 1분기에 조사 작업에 착수했다. 22년 연말이 되어 몇몇 지인들에게 사실 내가 이런 시기를 겪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혹자는 아홉수 때문이라고 했다. 22년은 내가 한국 나이로 29살이 되었던 해였다. 생일이 12월 말인 탓에 만 나이로는 27이었지만. 뭐.. 굳이 끼워 맞추고 싶다면야 아홉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20년도부터 한 2년간 회사에서 점점 더 인정받았지만 깊은 마음속으로는 이제는 떠나서 나의 것을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커졌던 것 같다. 아무튼, 각 옵션별로 조사했던 내용을 아래 적어본다.



패션


서울에서 패션을 가르치는 학교는 많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명확했다. (세상에는 없는)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패션으로 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다질 수 있게 해주는 학교, 그리고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교두보를 제공해 주는 학교. 내가 지금 다시 대학 관련 학과에 입학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패션전문학교 또는 학원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서 네이버지도에 패션학교, 패션학원을 검색해서 각 기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결국 내가 고려하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에스모드 서울을 선택했고 마침 입학설명회 공지가 올라왔길래 바로 신청을 했다. 생각해 보면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정석의 길을 좋아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그냥 막무가내로 하는 법이 없었고 일단 공부를 해야 했다. 그래야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추진력이 생겼다. 그래서 패션에 대해서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에스모드 서울은 프랑스에 위치한 에스모드 패션스쿨의 서울 분교로 1989년에 문을 열었다. 전 세계에 분교가 있기 때문에 교환학생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 졸업 후 프랑스로 진출하기에도 용이하다. 학기 중에 여러 명품 브랜드들과 협업할 수 있는 대회 등도 있다. 설명회 전에 종이 위에 잡지를 오려서 드레스를 콜라주로 만들어보는 활동이 있었고, 이때 선생님께서 패션에 대한 지식보다는 열정이 중요하다.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고 자신감을 팍팍 심어주셨다. 하지만 부푼 자신감이 무색하게도 입학설명회에는 주로 고등학생이나 20대 초반 학생들이 주를 이루는 듯했다. 관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곳에서 지식과 기술을 고도화시키려는 학생들이나 대학교를 입학해서 공부를 해봤지만 나와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원래 하고 싶었던 패션 쪽으로 다시 한번 관심을 가져 보는 아이들.. 그 와중에 나는 이십 대 후반이었고, 이곳에 모여있는 저 사람들만큼  패션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마지막 선배의 후기 영상까지 알찼던 입학 설명회를 듣고 이후 교수님들과 직접 상담을 해보는 세션이 있었는데, 나도 여기까지 온 김에 한번 이야기 나눠보자 하고 줄을 섰다. 약간의 기다림 끝에 한 교수님과 매칭이 되었고, "나는 지금 외국계 기업에 영업직으로 있는데, 패션을 좋아하고 항상 패션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근데 지금 가진 것을 포기하고 패션 스쿨에 들어가기에는 약간 고민이 된다."라고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했다.. 우유부단한 나에게 선생님은 따끔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여기에 오는 학생들은 '난 패션 아니면 안 되겠다'라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 길이 아니어도 된다는 마음가짐이라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정도로 힘든 과정이다." 어질어질했다. 나는 대안으로 생각했던 길이 다른 사람에게는 유일한 길일 수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꼭 모든 사람이 저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할 필요가 있나? 그냥 한번 시도해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저렇게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 괜히 곤조 부리는 것 아닌가, 역시 꼰대들 많다는 패션계라서 그런 듯.이라는 못된 생각도 들었다. 상담을 마친 후 수업하는 곳에서 직접 학생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길래 올라가 봤다. 옷의 만듦새가 좋았다. 내가 이런 것들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다. 두 여자 교수님이 서있었는데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29살이고 서강대를 나왔고 외국계에서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 분야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했더니, 나이는 많지만 그래도 이런 학생들이 더 열심히 한다고, 고대를 나온 학생이 여기 입학한 경우가 있었는데 열심히 잘했었다며 입을 모으셨다. 설명회에서 상담해 주셨던 나이 많은 교수님보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셨으나 항상 회사에서는 막내였는데... 나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좀 충격이었다. 이제는 나도 무엇을 시작하기에 나이가 제약이 되는 연령대가 되었구나.


얻는 것 : 패션 실무 기술 및 인더스트리 인맥, 파리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 나의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는 첫걸음
잃는 것 : Intensive 과정 기준 2년의 기간 + 매일 9시부터 5시 반까지 시간 투자 + 3,400만 원 정도 학비 + 재료비 등 + 2년간 일을 못하는 데에 대한 기회비용 약 2억 원
깨달음 : 잃는 것이 큰 만큼, 미래와 열정이 확실해야 도전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도전하는 연령대가 낮은 분야의 경우 더욱 심리적 진입장벽이 높다.


건축/인테리어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은 항상 있었지만, 특히 21년도에 독립을 하면서 나의 공간을 예쁘고 효율적으로 꾸미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공간에 대한 집착과 애정이 깊은 사람이다. 항상 스스로를 고양잇과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내 영역 안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알아주는 집순이였다. 순수하게 나의 감각으로 꾸민 내 자취방에 와본 사람들은 모두 감탄했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인테리어 관련된 예능이나 다큐(홈 메이크오버 등)를 보면서 나도 저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건축은 왠지 모르게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들을 보며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도 마찬가지이고.. 무언가 내 내면의 것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에 대한 갈망이 항상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블로그 글을 쓰는 것도 그 창작활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만 또 그 정석병이 나를 괴롭혔다. 기본부터 배우자. 그래서 우선 가장 검색 결과가 많은 (포스팅을 많이 올리는) 세 개의 학원에 찾아갔다.


한양건축평생교육원 :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교육훈련기관으로 학점은행제 건축 토목 학위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건축토목기사 자격증을 따는 것을 목표로 대학과 유사하게 빡빡하게 수업을 듣는 것이다. 전화로 간단하게 상담을 하고 찾아갔는데, 당구장이 있는 허름한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공용부에 있는 화장실에서는 지릿한 냄새가 났다. 상담실에 들어가니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분께서 학위과정을 이모저모 설명해 주셨다. 친절하셨다. 하지만 이 컨디션에서 하루종일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고 집에서 왔다 갔다 하기에도 애매한 거리였다.

현대건축디자인학원 : 종로3가역 바로 앞 골목에 위치한 학원이었고, 건축뿐만 아니라 디자인까지 수업 과정을 갖춘 학원이었다. 이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학원인 것 같았고 자체 제작 교재도 마련되어 있었으며 상담해 주시는 시장 분도 꽤나 체계적이었다. 학원 입구 쪽 리셉션에서 상담을 받는 내내 학원생들이 왔다 갔다 했다. 다만 비용이 생각보다 비쌌고, 회사와의 병행은 절대 불가능한 스케줄이었다.

가야디자인학원 :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강남역 근처에 위치한 가야디자인학원. 일단 위치 면에서 집과 멀기 때문에 절대 선택할리 없다고 생각했던 학원이지만 디자인 쪽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던 학원이었기 때문에 방문해 봤다. 로비에서 약간 기다린 끝에 원장님과 상담을 할 수 있었고, 원장님은 내 생각보다 굉장히 방대하게 교과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수강생들의 포트폴리오도 보여주면서 우리 학원에 다니면 이렇게 포트폴리오도 금방 만들어서 구직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다만 굉장히 상업적인 냄새가 났다.. 오늘 당장 등록을 하면 할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며 바로 결제를 하도록 유도하였다. 


이렇게 학원을 알아보고 난 후에 약간 현타가 왔다. 이 정도 금액을 들여서 좋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학원에 들어가서 아예 모르는 분야를 입시생처럼 배운다고? 도저히 내키지가 않았다. 그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이겠지만 흥미로 시작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퇴사 후에 그냥 일개 학원 수강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학점은행제 사이트에 들어가서 건축 혹은 인테리어 쪽으로 대학에서 평생교육과정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열심히 검색을 한 끝에 한양대학교를 발견하게 되었다.


한양대학교 미래인재교육원은 한양대 캠퍼스 안에 위치하였고, 여러 평생교육과정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 관심이 갔던 과정은 건축공학과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이었다. 건축공학은 앞서 방문했던 한양건축평생교육원과 유사하게 건축과 토목 쪽 분야를 깊게 배우는 전공이고, 성별구성도 남성이 더 많은 듯하였다.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은 광고 쪽 분야 중에 디자인을 더 부각하여 배우는 전공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두 전공 모두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분야이고, 이를 통해 스스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은 분명하였다.

다만 고민되었던 것은 과연 직장을 다니면서 이 공부를 할 수 있을지, 어떤 분들이 이 전공을 듣는지, 그리고 What next였다. 나와 비슷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오시는 분들이 많다면 좋을 것 같은데 20대 초반의 학생들이나 퇴직 이후 학문을 이어가시려는 분들이 주를 이룬다면 시너지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참 고민한 결과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얻는 것 : 건축 및 인테리어 기술과 학위 + 추후 해외에서 관련하여 석사를 할 수 있는 발판, 나중에 내 집을 짓거나 내 인테리어 사업을 론칭할 수 있는 첫걸음
잃는 것 : 1년 6개월의 학위 과정 + 직장 다니는 시간 외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공부에 투자 + 학비 
깨달음 : 과연 내가 이 일을 정말 하고 싶은가?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하려면 정말 힘들 텐데 그 정도의 열정이 없다면 이겨내기 힘들 것이다. 직장에서 더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건축공학을 공부할까라는 마음도 있었는데, 과연 이 직장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 
그리고 이 학위를 땄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난 현장에서 일할 자신이 있나? 아니면 박봉의 인테리어 현장에서 바닥부터 올라갈 자신이 있나? 그렇지 않다면 내가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은 무엇일까?
비고 : 한양대 건축공학과 등록까지 거의 결정했으나.. 해당 학기에는 등록이 불가했다. 다음 학기까지 기다렸어야 했는데 그새 다른 옵션을 고민하게 되었다.


워킹홀리데이


워킹홀리데이는 만 30세 미만 청년들에게 협정 국가에 장기간 체류하며 일과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이다. 


아무래도 만 30세라는 나이 제한이 있다 보니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면서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을 위한 준비 단계인 NIE (우리나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외국인등록번호) 발급까지 대사관을 통해 마쳤으나, 기회비용을 생각하니 별다른 Job이 없는 상태에서 잘 다니고 있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가기에는 마음이 서지 않았다. 


16년도 만 21살일 때 오스트리아에서 워킹홀리데이를 6개월간 했을 때는 이런 고민이 없었다.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었겠지.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고 그 경험이 나를 더 성숙하게 하는 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불확실성이 설렘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연차와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뭔가 도전을 한다면 적어도 나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고 그래서 석사로 자연스레 생각이 이어지게 되었다.


얻는 것 : 불확실함, 단 기대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할 수도 있고 그게 내 인생관을 바꿔놓을 수도 있음 + 안식년
잃는 것 : 2년간 일을 못하는 데에 대한 기회비용 약 2억 원 + 이후 재취업을 할 때에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고 하면 꽂힐 시선 (한심함 + MZ세대라서 다르네 + 우리 회사도 그냥 조금 다니다가 그만두겠네)
깨달음 : 이제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무작정 그만둘 수는 없는 지점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도 나 스스로가 너무 불안할 것 같다.


해외 석사 유학 - 미술


패션과 인테리어 쪽을 알아보면서 스스로에 대해 많이 돌아보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 그래. 나는 예술적인 것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어디까지 생각이 뻗어가게 되었냐면..? 꿈에도 없던 순수미술이다. 미술은 어렸을 때부터 배운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취미로만 해야겠지라고 생각했었지만, 인생에 늦은 시기는 없다는데 지금 시작하면 어때? 하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강남 쪽과 홍대 쪽의 유럽 미술 입시 학원을 하나씩 다녀왔는데, 홍대 쪽이 아무래도 집도 가깝고 원장님의 진심이 많이 느껴졌다.


클럽깰끄쇼즈라는 꽤 특이한 이름을 가진 곳이었는데, 원장 선생님께서 프랑스에서 미술을 배우고 그곳에서 취업을 하여 꽤 오랜 기간 계시다가 한국으로 들어오신 분이었다. 그래서 프랑스와 미술 입시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으신 분이었고, 내가 한 번도 미술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셨다. 백지상태이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도 상기를 시켜주셨다. 정말 좋은 환경이었지만 막상 가보니 비용도 비용인데 내가 이 나이에 시작해서 잘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컸고, 거기에 언어까지 마스터를 해야 하니 그것에 대한 막막함도 들었다.


얻는 것 : 프랑스어와, 예술가로서 새로운 길을 개척 + 영어와 프랑스어를 하는 외국계 세일즈 경험이 있는 예술가로서 포지셔닝
잃는 것 : 2년간 일을 못하는 데에 대한 기회비용 약 2억 원 + 이후 어떻게 될지 모름, 예술가의 삶은 고되다.
깨달음 : 할라치면 뭐든 못하겠냐만, 굳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결론


나이는 숫자에 불가능하다지만, 나이가 무서운 것은 내가 성취한 것들이 많아지고 그에 비례하게 잃을 것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점이다. 기회비용을 고려하게 되기 때문에, 웬만큼 확신과 열정이 있거나, 혹은 내가 하려는 분야가 유망한 경우를 제외하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다. 또한 경험과 나이가 많아지면서 What Next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패션, 인테리어, 건축, 미술 모두 재미있지만 이후를 생각했을 때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돈은 벌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또 고생길이 훤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길은, 내가 가진 것을 활용할 수 있고, 그것을 레벨업 할 수 있으며, 이후에 대한 고민도 최소화할 수 있는 해외 MBA였다. 해외 MBA 중에서도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고, 얻는 것을 극대화하는 길을 고민했다. 그래서 1년 안에 끝낼 수 있고, 공립이라 학비도 저렴한 유럽 석사를 선택했고, 그 와중에 스페인어(Castellano)를 더 익힐 수 있는 스페인 마드리드로 선택하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해보려 한다.


P.S. 

1년 이상 오랜 기간 고민 끝에,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겪은 끝에 심사숙고하여 퇴사 결정을 내렸기 때문인지, 그 타이밍이 정말 완벽했다.


회사에서 나를 가장 필요로 할 때, 가장 인정받을 때 퇴사를 하였고 내가 퇴사한 이후 회사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그에 대한 반증으로 내가 퇴사 통보를 한 직후 옆 세일즈 팀의 한 분과, 인사이드 세일즈 한 분, 그리고 프로덕트 쪽 한 분, 그리고 어제는 우리 팀의 한분까지 퇴사 통보를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2월 말에 연봉 동결을 발표한 이후 3월 2일에 바로 퇴사 의향을 밝혔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나의 개인적 성장/발전을 위한 퇴사였기만 회사에는 은연중에 나를 더 인정해주지 않은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비추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웠다.


나는 손뼉 칠 때 떠났고, 더러운 꼴을 보이기 전에 아름다움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어제 우리 팀 분과 통화를 했는데 내가 퇴사한 지 한 달 넘는 기간이 지났음에도 좋은 일에 나의 이름이 회자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회사를 떠났지만 좋게 기억된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소식이다. 앞으로 내 앞길에 필요한 추천서를 생각했을 때도 긍정적인 마무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창대한 시작보다는 깔끔한 마무리가 중요하고, 결국 사람들은 마지막 기억으로 그 사람을 떠올린다. 99% 완성하느니 아예 안 하는 것이 낫다는 말까지 있는 만큼, 특히 사람 관계와 업무에 있어서는 항상 좋은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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