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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amongaroo Aug 10. 2022

내 이야기를 케이크로 바꾸는 법

매력을 찾지 못한 이에게 전하는 말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내 손에 들려있던 과자 봉지를 내어준 사건이 있었다. 내 의지대로 내어준 건 맞지만 그때의 내 마음은 결코 원치 않았던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난 친절한 말투로 맛있게 먹으라는 말을 덧붙이며 채 뜯어보지도 못한 새 과자봉지를 건네었다. 아니, 다시 말해 빼앗긴 것이다. 내 과자봉지를 가져간 주인공은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었다. 당시에 내 옆에는 학년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던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 여자아이 손에도 내가 들고 있던 과자 봉지와 같은 것이 들려있었다. 그런데 남자아이들은 내 것만 탐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내가 못생겨서 내 것만 가져가는 건가. 과자봉지를 내어준 것은 결국 그 여자아이 때문이었다.      

‘난 저 아이처럼 예쁘지도 않고 인기도 없어. 그러니 조금이라도 인기를 얻으려면 과자 봉지를 주는 게 맞아.’

언제부터 뿌리 박힌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얼굴이 예쁘지 않다면 그냥 난 착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그 뒤로 나는 가장 좋아하는 것을 내어주며 다른 이의 환심을 사려고 부단히 애쓰며 살았다. 그래도 나에게 다가와 주는 사람들로 인해 고정관념 같은 이상한 신념은 조금씩 깨졌다.


외모가 아닌 내 고유의 매력을 봐주는 친구들과 나의 모든 부분을 좋아해 주고 칭찬해주던 남자 친구를 사귀면서 내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은 많은 친구들이 연락도 끊기고 남자 친구였던 사람도 지금은 내 옆에 없지만, 모두 나에게 좋은 영향력을 준 존재들이었다. 그 덕분에 예쁘진 않지만 참 매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사라진 것 같았던 이상한 신념은 그 자리에 있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던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니 마음 깊이 뿌리내리고 있던 생각이 다시 솟아올랐다. 

'넌 예쁘지 않으니, 친절하기라도 해.'


지난 4월, 낯선 모임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이 나를 초대해준 것이다. 초대해준 분이 기획한 문화 프로그램으로 평소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없는 이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자신을 정의해보는 시간을 마련하신 것이다. 당시에 나는 수술을 기다리고 있던 시기였다. 수술을 앞두고 몸과 마음이 위축되어 있었다. 한동안 집에 갇혀 살다시피 했었다. 그런 나를 집 밖으로 꺼내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셨다. 거절하려고 했으나, 챙겨주시는 마음이 감사해 나는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막상 참여자들이 모인 자리에 가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낯가림이 심한 나에겐 초면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보는 게 낯설고 아직도 어색한 일이다. 그 불편하고 어색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어깨가 한껏 쪼그라든 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자, 다음 순서로 넘어갈게요. 여러분이 살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떠올려보고 5가지 정도만 적어보는 시간을 가질게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꼭 중요한 일이 아니어도 되고요. 다 적은 뒤엔 서로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게요. 그리고 ‘오늘의 에피소드 왕’을 선정해 케이크를 선물로 드릴 테니 모두 진지하게 임하세요.”      


한참을 집중해서 지난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기억에 남는 일들을 떠올려보니 난 조금 엉뚱했던 아이였던 것 같다. 엉뚱한 아이였음을 뒷받침할 에피소드는 넘쳐났다. 그중 5가지를 골라서 적어보았다. 그리고 각자 발표해보기로 했다. 순서가 돌고 돌아 내 차례까지 도달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네 번째 에피소드까지 이야기를 발표한 뒤 마지막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려 운을 띄웠다.

      

"이 이야기는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사건이고 이 사건을 바라보는 저는 제 자신을 순발력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데, 여러분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럼 마지막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초등학교 5학년이던 때, 일요일 밤이었다. 그때 당시에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기 위해서 개그콘서트를 꼭 봐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개그콘서트에서 나온 유행어 또한 놓칠 수 없는 대목이었다. 저녁을 먹은 뒤 거실에 깔아 둔 카펫 위에 남동생과 나란히 앉아 개그콘서트를 시청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오줌이 마려워지기 시작했다. 개그콘서트도 봐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하는데 몸은 한 개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오줌을 계속 참아보기로 했다. 무릎까지 꿇어가며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오줌을 막아보았다. 

      

"누나, 이게 뭐야? 뭐가 흐르는데."    


참고 있던 오줌보가 터졌다. 오줌은 카펫을 타고 거실 바닥을 흥건하게 했다. 남동생에게 창피한 것도 있었지만, 지금 상황을 모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주방 가스 위에 놓인 주전자 속 보리차였다. 당시에 보리차를 끓여먹던 때라 오줌을 보리차로 둔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남동생에게 큰소리쳤다.  ‘야, 보리차를 마시다가 엎지른 거야.’     

말과는 다르게 내 손에는 물 컵이 들려있지 않았다. 그리고 남동생이 어리다는 이유로 이 거짓말 같은 변명도 믿어줄 거라 믿었다. 남동생은 아직도 오줌을 보리차라고 거짓말했던 날의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에피소드 발표가 끝나자마자 참여자 모두가 크게 웃었다. 나는 쑥스러웠지만, 이 에피소드를 끝내고 난 뒤에 참여자들의 반응에 이유모를 기쁨이 느껴졌다. 그리고 모든 참여자의 선택으로 ‘오늘의 에피소드 왕’이 되었다. 케이크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케이크를 한참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는 나에 대해 엄청난 오해를 하며 살았던 건 아닐까. 나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건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가진 이야기가 아닐까. 누구도 흉내 낼 수도 베낄 수도 없는 나만의 이야기. 그게 나의 최대의 매력이자 장점인 건 아닐까. 내 이야기로 케이크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누군가가 한다면, 나는 예스라고 할 것 같다.   


이제는 알게 되었다. 외부에서 자신의 매력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더욱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집중할 것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우리 모두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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