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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amongaroo Aug 11. 2022

세상의 모든 꽁다리와 끄트머리

야채를 다듬다 남은 꽁다리  

요즘 야채를 의도적으로 챙겨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내 생의 마지막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조금 더 건강하게 내 생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고 싶어서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야채에는 꽁다리가 존재한다. 오이, 파프리카, 애호박 등등 


아침을 챙겨 먹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오이 반 개와 미니 파프리카 두 개가 있었다. 냉장고에서 꺼내 싱크대에 올려두고 냉동해둔 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서 해동한다. 그리고 다시 싱크대로 돌아와 도마와 칼을 꺼내 오이 반 개와 파프리카 두 개를 먹기 좋게 손질한다. 

먼저 오이의 윗부분에 달린 꽁다리를 제거하고 오이 반 개를 다시 두 동강을 낸다. 두 동강을 낸 오이를 다시 반으로 가르고 네 등분으로 자르면 딱 손에 쥐고 먹기 좋은 크기가 된다. 고깃집에 가면 간혹 나오는 오이 조각처럼 말이다.

그다음은 미니 파프리카 두 개를 손질한다. 먼저 파프리카의 머리 부분에 달린 꽁다리를 모두 잘라낸다. 그리고 다시 반으로 가른 뒤 안에 박혀 있던 씨를 빼낸다. 씨를 제거한 뒤 다시 세로로 여러 등분을 하여 자른다. 역시 손에 쥐고 먹기 좋은 크기가 된다. 손질된 오이와  파프리카를 넓적한 식기에 고루 담아주면 당장이라도 된장에 콕 찍어서 먹고 싶을 만큼 색이 너무 예뻐 보였다. 


싱크대에는 버려진 오이와 파프리카 끄트머리만 남아있었다. 마음 같아선 끄트머리도 모조리 먹으면 좋겠지만, 영 식감도 안 좋을뿐더러 턱이 아플 정도로 씹어서 삼켜야 겨우 소화가 될 것 같아 오늘도 버리기로 한다. 참 이상한 것 같다. 김밥 꽁다리는 맛있다며 일부러 꽁다리만 찾아서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데, 야채 꽁다리만 버려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그랬다. 요즘 별거 아닌 것에 내 마음을 투영시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서 인지 오늘도 야채 꽁다리가 마음에 걸렸다. 야채 꽁다리를 버리기 전에 이걸로 무언가를 하고 버리자 싶어 무작정 베란다로 가져왔다. 


언뜻 보기엔 꽁다리가 모자처럼 보였다. 베란다 난간에 올려두니 영략 없는 모자였다. 혼자 낄낄거리면서 좋아했다. 그러다 빈 여백의 난간에 눈과 코, 입을 그려보면 어떨까 싶어 유성매직을 찾아보았다. 유성매직으로 대강 그려보니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귀여웠다. 또 혼자 낄낄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버려지는 야채 꽁다리가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이야.'

무미건조한 아침을 야채 끄트머리 덕분에 한 번 웃고 시작하는 하루가 되었다. 



가끔 내가 세상 끄트머리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난 정말 쓸모없어라고 생각될 때가 있었다. 

계속 제 자리인 것만 같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세상에서 버려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생각들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혼자 쓰러지고 또 무너져 내렸었다. 물론 요즘도 가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러나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나를 보며 너무 고마운 존재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존재만으로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쓸모없어 보이는 야채 꽁다리도 사람을 웃게 한다. 비록 사람들이 좋아하고 찾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이 꽁다리도 오이였고, 파프리카 꽁다리도 파프리카였다. 세상 끄트머리에 서 있는 것 같은 당신도, 사회로부터 버려진 것 같은 당신과 나도 우리는 모두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의 이웃이고 친구니까. 힘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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