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네요."
'절대 울지 말자.'
상담실을 들어서기 전 되뇐다. 그 다짐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주먹을 꼭 쥔 채 다짐하고 다짐한다. 한참을 그렇게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다 상담시간에 맞춰 문을 열고 상담실로 들어선다. 선생님은 이미 상담실에 놓인 의자에 앉아계셨다.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뒤 상담 예약일 전까지의 일상들을 묻고 안부를 챙긴다. 그럼 나는 곧 상담실의 낯선 공기에 적응하게 된다. 낯선 공기를 한 껏 마신 뒤 한 껏 뱉어낸다. 한 김 뱉어내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눈물이 고인 뒤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선생님은 마스크 너머로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계셨다.
"너무 자연스러운 반응일 거예요. 요즘 저는 내담자님과의 시간을 기다리게 돼요. 처음에 방문하셨을 때보다 제 앞에서 솔직해지실 준비가 되신 것 같아요. 제가 조금 편해지신 것 같아서 저는 너무 좋은데요."
내 눈물에 이런 반응을 보인 사람은 상담사 선생님이 처음이라며 나는 울면서 화통하게 웃어 보였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며 이런 말을 했다.
"지금도 우시면서 웃고 계시네요. 우시면서 웃어 보이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의 감정 그대로 보여주셔도 되세요. 제 앞에서는 편히 있으셔도 돼요. 혹시 이렇게 마음껏 울어보신 경험이 없으신가요?"
나는 마음껏 울어본 기억과 경험이 없다고 대답했다. 오래된 기억 속에 눈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떠올려보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눈물이 많은 아이 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툭하면 울었을 정도다.
그러던 중 나는 엄마에게서 한글을 배웠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나는 6살이었다. 엄마는 안데르센 동화책 시리즈 중 한 권을 내 앞에 두었다. 그리고 엄마가 선창 해서 읽으면 내가 그 뒤를 따라 읽어 내려갔다. 한 문단을 자신을 따라 읽게 한 뒤 혼자 읽어보게 했다. 나는 버벅거렸다. 한 문장을 완성해서 읽지 못했다. 엄마는 문장을 짚어주었고 나는 엄마의 짚어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엄마는 화를 내며 집 밖으로 나갔다. 나갔다 돌아온 엄마의 손에는 얇은 나무 가지가 들려있었다. 나는 엄마의 화내는 소리에 이미 펑펑 울고 있었다. 회초리를 보자 어디론가 도망가려고 뛰어다니며 울었다. 엄마는 뭘 잘했다고 우냐고 했다. 그리고 뚝 그치지 못하냐고 했다. 그런 말에도 눈물을 그칠 수 없었다. 엄마는 더 커지는 울음소리에 화가 더 났던 것 같다. 방금 꺾어온 얇은 나뭇가지를 내 입에 대곤 이렇게 말했다.
"입 다물지 못해. 어딜 잘했다고 그렇게 울어. 입 안 다물면 맞을 줄 알아."
그 말에 나는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울었다. 그러다 입 밖으로 꺼이꺼이 하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엄마는 그치지 않는 나의 눈물을 멈추게 하기 위해 꺾어온 나무 가지로 내 종아리를 내리쳤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흘린 눈물이 부정당했던 최초의 기억.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눈물을 흘렸지만, 숨어서 울었다. 힘든 일이 생기면 나는 눈물이 자주 흘렀다. 누군가는 이겨낸다는데 나는 눈물이 한없이 흘러나와 자주 무너지곤 했다.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나의 억울함을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 화장실에서 울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어야 했다. 삭히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어떤 이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었고 위로받을 수도 없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을 찾아다니며 울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건네는 위로가 나에겐 너무 어색한 일이 되었다. 지난 기억을 이야기하다 보니 그 기억 속에서 홀로 울고 있는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눈물이 솟구쳐 흘렀다. 그런 모습에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었다.
"눈물은 방귀 하고 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막아요. 그리고 눈물은 잘못한 게 없어요. 우리의 감정은 모두 괜찮은 거예요. 내담자님의 눈물도 잘못은 없어요. 지금 흐르는 눈물은 그동안 다른 사람 앞에서 흘리지 못한 눈물이기도 할 거예요. 괜찮아요. 저는 오히려 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드리고 싶은데요. "
처음이었다. 나에겐 눈물은 늘 참아야 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누군가 앞에서 우는 건 더욱 바보 같은 일이라고 여겼다. 웬만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했다.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물은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물을 흘려도 괜찮다는 누군가의 말에 낯섦을 느끼다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난생처음 보는 상담사 선생님 앞에서 한참을 꺼이꺼이 울었다. 현재 7회 차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다. 처음 상담실을 찾아갔을 때와 현재의 나는 많이 달라져있다. 누군가 앞에서 내 살갗을 드러내는 일과 같은 일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그리고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던 내가 이해가 되고 있다. 요즘 나는 조금씩 천천히 변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변화를 스스로를 조금씩 알아채고 있는 것 같다. 다들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달라지기 위해선 울어도 될 것 같다. 울어도 괜찮다. 울면 좀 어때.
상담실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우리가 기대하는 큰 변화는 사소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