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평가 계획을 세우는 중입니다.
처음엔 막막했다. 다시 노트북을 열고 카페에 앉으니 이런 저런 다양한 정보에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몇 년의 연륜이라고 시작만 성대하지 어설프게 종료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타인의 지적재산권을 조금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차단하기로 하고 시작을 하니 그나마 좀 괜찮았다. 맥북과 윈도우라는 호환이 잘 되지 않는 상황도 나의 새학기 준비를 힘겹게 한다. 판을 조성하는 데에만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든단 말이지. 그리고 정작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또 막상 하려고 해도 희한하게 쌓인 경험에서는 날아오르려는 이상이 너무 멀리 가지 않게 잡아주는 연의 ‘줄’이 나와 예전의 앗 뜨겁다! 이거 해야겠다! 하고 저돌적으로 날아가는 속도의 타이핑 소리를 만들어 내진 못한다.
잠깐 머리를 식힌다.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 삶을 구경하기. 즉, 인스타그램. 아무의 삶이나 보진 않는다. 난 주로 마케터, 사업가, 행동가의 인스타그램을 보는데 그러고 나면 희한한 힘이 난다. 교사로서의 삶에 대한 아쉬움이나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의 파도가 일지만 그것도 잠시, 떠오르는 수행평가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고 평가기준을 정리하다 보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몰입을 한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며 그 몰입도 짙은 호흡을 끊은 나는 메타 인지가 발휘 되어 이런 내가 신기하고 기특하다. 스스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사업도 하고 싶고, 카페도 하고 싶고, 공간도 만들고 싶고, 물건도 만들고 싶고,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지만 정작 아무것도 추진하고 있지 못하는 나를 돌아보면 이젠 그만 다 접고 한 두개에만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교사라는 본업을 소홀히 하고 다른 곳에 한 눈 팔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이 본업에 무엇보다 진심이다. 방학이라는 시간은 내가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아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고 사실 모든 게 본업과 연결이 되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의 본질은 무언가 변화를 만드는 일이다. 가치관을 전하고 생각을 나누고 함께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알고 느끼게'하는 것에 열의를 보인다. 그것이 교사의 업으로 발현될 수도 있고 장녀의 부지런함으로 발현될 수도 있고, 기타 등등 나의 다양한 정체성으로 발현될 수 있다.
새학기를 앞둔 지금, 나는 또 어느 때보다 설렌다.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만드는 판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 생각을 하니 그 판을 만드는 지금부터 설렌다고 하는 게 맞다. 그래서 더 책임감이 막중하고 어깨가 무겁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되고 더 나은 것은 없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스갯소리로 받은 만큼만 일하라는 핀잔도 듣는다. 그 말이 서운하고 이런 내가 바보 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치만 지금은 그냥 내 취향껏, 내 성향껏, 거창한 사명감은 아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것을 함께 해나간다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낀다. 아이들의 생각의 길을 터주는 일, 나와의 만남으로 그들의 인생에 생길 작은 이야기, 그리고 반대로 아이들이 어떤 그림을 만들어 낼지 기대가 된다. 항상 기대 이상, 상상 이상으로 결과물을 내는 아이들. 그만큼 내 상상력과 기대는 고작 경험에 준한 것이라 아이들의 생각을 못 따라간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수업에 대한 준비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다. 아! 쓰다보니 뭔가 거창한 것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진 않다. 사회인 뺨치게 바쁜 요즘 청소년들의 성장기와 정서적 안정을 위해 나는 힘든 과제를 내주는 편은 아니다. (맞겠지...?) 아이들이 쓸 글에 대한 주제를 결정하고 생각을 풀어낼 수 있는 계단을 쌓고 자료를 만들고 어떻게 보면 PD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 같은 지금의 시간들. 그래서 더 배우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지금의 시간이 나는 참 좋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