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인 당신이 과거시제를 꼭 배워야 하는 이유
지난 9월에 써둔 글을 다시 읽다보니 과거시제의 힘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시제가 주는 그 오묘함과 애매함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봤으리라. 그 고민의 끝에서 각자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그 일을 겪어내며 또 한 번 '성장'하고 '성숙'했다. 그 땐 정말 펑펑 울었는데, 울었던 장면과 기분은 생생하지만 사실 왜 울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아이러니. 다음에 또 어떤 기류를 만나 소나기를 겪게 된다면 '과거시제'가 생각이 나 우는 시간이 더 짧아지겠구나 싶다.
여름. 바깥 공기와 닿자마자 오늘 한차례 쏟아 붓겠구나 싶은 날이 있다. 어쩌면 너무나도 무거운 공기에 나도 모르게 한바탕 쏟아졌으면 싶은 바람이 담긴 예측일지도 모른다. 큰 비가 오고 나면 공기가 한층 상쾌해지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요며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날씨에 가을이 왔음을 느꼈다. 시간의 속도가 무섭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계절의 모습에 출근길이 설레던 며칠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공기가 달랐다. 무거웠고 8월의 어느 날과 같은 습함이었다. 자연스레 한차례 쏟아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오후에 급하게 어두워지더니 기다렸던 비가 쏟아졌다. 아주 거세게. 빗소리가 시원했다. 수업 중 들리는 빗소리에 아이들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교사 패치로 가득찬 그 때의 나는 진도 나가기가 바빠 아이들의 빗소리 감상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게 오늘 가장 큰 후회 거리다. 잠시 수업을 멈추고, 창밖의 늦여름 혹은 초가을의 비를 같이 즐길걸.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같이 들었으면 어땠을까, 옛날 사람이라고 아이들이 주는 핀잔도 나쁘지 않았을 듯 하다.
오후에 세차게 내린 소나기가 비단 학교에만 내린 것은 아니었다. 며칠 동안 꿉꿉하고 지진한 공기와 싫은 공기들로 가득한 내 마음에도 내렸다. 한바탕 쏟아내고 나니 가벼워진 공기처럼 마음이 너무 가벼웠다. 내 소나기를 함께 맞아주신 친구가 있어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영어에서 조동사의 과거형은 보다 예의 있거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쓰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즉, 시제를 멀리하면 보다 거리가 있는 예의가 담긴 말이 된다. 영어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재밌는 것이 이런 부분이다. 그냥 ‘make’의 과거 시제는 ‘made’야 라고 달달 외우며 시작한 공부일지라도 살아가면서 사용해가면서 친숙해져가면서 이 언어가 주는 뉘앙스나 직관에 조금씩 젖어들수록 참 재밌다. 꼭 영어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말도 ‘감사했다'와 ‘감사하다'가 주는 뉘앙스나 그 밀도가 다르듯이 말이다. 어떤 어려운 일이나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나면 나는 시제를 멀리해서 본다. 10년의 내가 오늘의 나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오늘의 이 현장감을 과거로 돌려 다시 풀어본다. 그러고 나면 곧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뭐가 그렇게 서운하고 속상했을까, 그리고 스스로를 가볍게 토닥토닥해준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씩 웃어본다. 시제(tense)의 힘은 참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