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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네 Feb 26. 2022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일

촬영과 모니터링


왜 그렇게 많은 연예인들이 마음의 병을 얻었을까. 어쩌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까. 이전에도 이미 아름다웠는데 왜 그렇게 다이어트와 성형을 계속해야 했을까. 연기 학원에서 촬영과 모니터링을 하면서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직업에 대해 말이다.

  


카메라 신경 쓰기


대본도 다 외웠고 동선도 다 연습했으니 이제 촬영을 해볼 차례였다. 촬영은 거치대에 휴대폰을 설치한 후 2인 1조로 한 명씩 번갈아가며 진행했다. 상대방을 바꿔서 촬영해보기도 했다. 제대로 된 촬영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카메라에서 잡히는 영역과 잡히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디까지 카메라에 잡히고 잡히지 않는지를 연기를 하면서도 신경 써야 했다.


생각해보니 살면서 카메라 위치를 신경 쓰며 살았던 적이 별로 없었다. 웨딩촬영 때도, 프로필 촬영 때도 포토그래퍼가 알아서 나를 찍어줬다. 학원에서 촬영할 때도 카메라는 거치대에 고정되어있고 나는 여기 서 있으니 알아서 찍히겠지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촬영이 익숙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각도로 카메라 앞에 서야 더 매력적으로 나오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모습도 어떤 각도에서 가장 잘 나오는지 알 필요가 있어 보였다. 촬영과 모니터링을 반복하면 노하우가 생길까 싶었다.



동공 지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배우들의 대체로 눈동자는 필요할 때 아니면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 스타 강사들의 녹화영상을 봐도, 아니 유튜버들만 봐도 그렇다. 눈동자가 조금만 흔들려도 카메라 상으로 그 움직임이 다 보인다. 물론 이번 씬은 당황스럽고 초조한 감정을 표현하려고 눈을 많이 깜빡이고 흔들었는데 이렇게 많이 흔들고 있었는 줄은 몰랐다. 위를 봤다, 옆을 봤다, 촬영물을 보는 내가 다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예전에 면접 준비할 때도 시선이 많이 왔다 갔다 한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는데 연기할 때도 그랬다. 클로즈업이 아니었는데도 매우 잘 보였다. 시선을 좀 더 고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카메라로 보는 나의 모습


연기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나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자로 재는 것 같았다. 말 끝을 흐리지는 않았는지, 좀 더 감정을 실었어야 했는지 등등 계속 나를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봐야 했다. 연기뿐만 아니라 외모도 계속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거울도 대충 보고 살던 내가 카메라로 자꾸 내 모습을 보니 안보이던 것들이 눈에 보였다.


카메라를 통해서 보는 내가 이렇게 통통할 수가 없었다. 동공 지진에 이어 또 한 번 내 모습에 놀라는 순간이었다. 그냥 거울로 볼 때는 그렇게 통통해 보이지 않는데 확실히 카메라를 통해서 보니 더 부어 보였다. 이래서 배우나 모델들이 앙상해질 때까지 살을 빼는구나 싶었다. 살을 극단적으로 뺄 생각은 없지만 다이어트를 할 계획이었긴 했으니 겸사겸사 살을 좀 빼야겠다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건설적인 자기비판이었다. 하지만 촬영과 모니터링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레 자꾸만 나의 외모에 시선이 갔다. 눈, 턱, 피부 등 여러 가지 외적인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왜 눈을 이렇게 뜨는 걸까, 눈이 왜 처져 있을까, 다크서클이 심한가, 턱은 좀 비대칭인가' 하면서 말이다. 


과연 배우는 자기비판적이어야 더 나은 연기를 할 수 있는 걸까.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아주 높아야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것일까. 배우든 다른 직업이든, 카메라와 대중 앞에 자주 서는 사람들은 꾸준히 자기 자신을 사랑해주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힘이 있어야 억척스럽게 따라붙는 악플과 냉담한 타인의 평가를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의도한 대로


휴대폰으로 촬영한 모습을 다시 보려니 머쓱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렇게 진지하다니. 내가 이렇게 화를 내고 있다니. 내가 이렇게 평소에 쓰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니.' 여러모로 희한했다. 


모니터를 하면서 확인해볼 사항은 '내가 의도한 것이 카메라에 담겼는가'였다. 확인해보니, 웃지 않아도 될 상황에 웃고 있기도 했고, 더 억울해도 될 상황에서 덜 억울해했다. 어쩌면 평소 내 모습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웃지 않을 상황에도 괜히 머쓱함에 웃고, 화가 나는 상황에도 화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내 표정은, 내 감정은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강도로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어 왔을까. 늘 웃으며 참다가 엉뚱한 곳에서 감정을 터뜨리지는 않았는지. 화내야 할 곳에서 울어버리고 울어야 할 곳에서 웃지는 않았는지. 어긋난 표정과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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